1982년 1월, 국내의 여러 일간지에 포항종합제철 이름으로 게재된 광고 문구다. 당시 전남지역에서 인구 기준으로 구례군, 곡성군에 이어 세 번째로 작고 조용한 어촌마을이던 광양시는 포스코(제2제철소)가 들어서면서 눈부신 발전을 시작했다. 태인도와 금호도 인근의 소당도, 금당도, 비운도 등 13개 섬들을 발파한 석재로 광활한 바다를 메워 들어선 제철소에 고로가 하나둘 생기면서 인력이 계속 투입되고 거주지가 만들어지면서 도시가 확장됐다. 철강 제품들이 다른 도시나 해외로 수출되면서 도시 안팎의 기반시설이 확충됐고, 제철소 운영 등에 필요한 연관산업도 함께 성장했다.
그렇게 도시는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 됐고, 기업은 도시를 키웠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경쟁력이 확대되면서 제철소를 품은 시의 위상도 커지고 있다.
개발 전과 후 작고 조용한 어촌마을이던 광양시는 포스코 제2제철소가 들어서면서 눈부신 발전을 시작했다. 김 양식장이 즐비했던 1977년의 광양만(위)과 제철소가 들어선 후의 광양만 전경. |
1982년 59억원이던 시 재정은 2012년 말 4455억원으로 제철소 건립 전의 76배에 이른다. 매년 포스코가 광양시에 납부하는 지방세는 연평균 600억원으로 시 세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여기다 주변 상권을 제철소가 책임진다. 21년 전 낙향해 시청 인근에서 광양불고기집 ‘금정’을 운영하는 최금순(62)씨는 “포스코와 연관업체 덕분에 먹고사는 음식점이 상당수일 정도로 지역경제의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2012년 말 광양시의 재정자립도는 39.5%로, 여수시(30.2%), 순천시(20.6%), 고흥군(8.1%), 구례군(10.2%)은 물론 전남 평균(21.4%)을 웃돌면서 1위를 기록했다. 제철소가 들어오면서 길호대교, 시 커뮤니티센터, 전남테크노파크, 육교 등이 건설됐고 1000석 규모의 백운아트홀도 지어졌다. 전남드래곤즈와 어린이 유소년 축구단을 지원하고 있고, 여수수산대 발전기금, 어린이 철강캠프, 포스코 장학금 등으로 지역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광양시는 이미 포항시와 함께 포스코 없이는 설명하기 힘든 ‘포스코 중심의 생활공동체’로 거듭났다. 제철소를 건설하면서 철도·항만·공항·산업도로·산업단지·주택 등 사회간접자본이 확충됐고, 생산인력 유입으로 인구 감소를 피할 수 있었다. 포항시도 포스코 창립 당시인 1968년 7만여명의 어촌이었으나, 현재 인구 53만명의 산업도시로 울산의 자동차·조선 산업, 구미의 전자산업, 창원의 기계산업과 긴밀하게 연계되는 동남권의 산업 거점으로 변모했다. 포항시의 재정규모는 1968년 3억2000만원에서 2012년 1조3000억원으로 4000배 이상 늘었다.
포스코의 두 번째 제철소가 들어선 광양시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광양제철소 관계자는 “30여년 전 바다를 메우기 시작해 5고로까지 건설하는 데 17년이 걸렸고, 지금도 부지 확보를 위해 매립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며 “광양제철소가 매년 발전하다 보니 시에서도 주변에 관광단지나 지역축제 등을 더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광양제철소는 1982년 부지 조성에 들어가 85년 연간 270만t 조강 생산능력의 1기 설비를 착공해 87년 준공했다. 1988년 2기, 90년 3기, 92년 4기를 준공한 데 이어 99년 5고로를 준공해 지금에 이르렀다. 2012년 말 광양제철소의 연간 조강 생산량은 2145만t으로 포항제철소(1654만t)를 능가한다. 포항제철소가 국내 최초 일관 종합제철소라면, 광양제철소는 최적의 공장 배치를 갖춘 세계 최대 규모의 단위 제철소다.
광양=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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