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발상이 교육구조 왜곡시켜 교육부 출입기자단에 ‘대학입시 보도강령’이란 것이 있었다. 기자들이 합의해 자율적으로 만든 일종의 보도지침이었다. 고등학교별·특정 기초자치단체별 대학 합격자 수, 대학의 전체·계열별 수석 합격자, 수능 수석, 수능 점수대별 지원가능 대학 예상 표, 수능 총점·영역별 점수의 등락 예상 폭 등 5가지는 보도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어길 경우 최장 1년 동안 기자실 출입을 금지하는 벌칙 조항도 뒀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서열화시키지 않겠다는 취지다. 1998년에 만들어져 7년간 잘 지켜지다가 2005년에 깨졌다. 서울대가 ‘1996∼2005학년도 합격자 배출 고등학교 현황’이란 보도자료를 돌렸고, 일부 언론이 받아쓰면서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한 고등학교 이름과 합격자 수를 상세히 공개했다.
원인 제공은 잘난 척한 서울대가 했다. 지역균형선발 전형으로 서울대에 학생을 입학시키는 고등학교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을 홍보한다며 몇몇 고등학교 이름을 영문 머리글자로 표시한 게 화근이었다. 언론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꼴이다. 후속 취재로 내용을 낱낱이 까발렸다. 고등학교 순위가 일목요연하게 표시된 표까지 실었다. 한동안 화제가 됐다. 서울대에 많이 보내는 고등학교는 어디인지,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어디 쯤에 있는지 찾아보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 후 매년 서울대 입학 실적을 중심으로 한 전국 고등학교의 대학별 진학 성적표가 언론에 앞다퉈 실리고 있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
지난해 서울대 졸업생 순수취업률은 61.3%에 그쳤다. 전체 대학으로 따져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정도다. 지난 1월 수료식을 치른 43기 사법연수원생 가운데 절반 이상은 아직 진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통계가 서울대와 사시의 명성에 큰 손상을 입히지는 못하겠지만 매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서울대와 사시에 매달리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렇게 되는 것이 교육과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그런데도 서울대·사시 얘기를 습관적·경쟁적으로 내보낸다. 서울대·사시를 향해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것 같다. 서울대와 사시가 여전히 ‘최고의 자리’라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쌍두마차 격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신입사원들 얘기까지 시시콜콜 다룰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올해 입시 전쟁이 일단락됐다. 2014학년도 4년제 대학 정시 합격자 발표가 내일 마무리된다. 전문대 전형일정은 남았다. 4년제 대학 총 모집인원은 37만9000여명이고 전문대 모집 인원은 24만6000여명이다. 2014학년도 수능 응시 인원은 65만명이다. 마음만 먹으면 수험생의 96%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이다. 그러나 대학은 여전히 좁은 문이다. 새내기로 북적거려야 할 대학 강의실 자리 곳곳이 올해도 비어 있을 것이다. 등록만 해놓고 반수·재수 핑계로 휴학한 학생들이 비워놓은 자리다. 대학생 3명 중 1명은 휴학 중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의 유별난 교육열의 어두운 이면이다.
언론이 열심히 서열을 가르는 사이 교육 현장은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육 구조는 갈수록 왜곡되고 상대적 박탈감이 깊어진다. 언론이 학교를 한 줄로 세워 집단 최면을 걸어 놓고 전염병처럼 퍼뜨린 ‘일류병’ 증상이다. 이제 그만하자.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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