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그간의 논란을 요약하면 유씨 출입국 기록은 중국 측 전산 시스템 부실로 1차 오류가 생겼고, 이 왜곡된 자료가 2차로 수정돼 검찰 손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우리 측이 개입해 문서를 조작했다면 2차 수정 단계에서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문서 위조 파문의 ‘시발점’인 중국 선양 주재 한국총영사관과 이 자료를 검찰에 넘겨주기까지 ‘중간 다리’ 역할을 한 국가정보원에 의혹이 쏠리는 이유다.
17일 검찰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따르면 서울시공무원간첩사건 증거 위조 논란에 등장하는 총 5개의 문건 중 문제가 된 서류는 검찰과 유씨 변호인이 각각 확보한 유씨의 ‘북한 출입국기록’이다.
검찰과 변호인 측 자료의 발급 주체는 각각 중국 화룡시 공안국과 연변조선족자치주 공안국이다. 두 문서의 유일한 차이는 유씨의 2006년 5월27일 행적 하나뿐이다.
우선 검찰 자료를 보면 유씨는 이날 오전 10시24분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왔고 50여분 뒤인 11시16분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 문서는 유씨의 이날 동선을 ‘북한→중국→북한’으로 기록했다.
반면 변호인 자료를 보면 유씨는 이날 오전 10시24분 북한에서 중국으로 일단 건너왔고, 같은 날 오전 11시16분 북한에서 중국으로 한 차례 더 건너왔다. 공식적으로 북한을 이미 빠져나와 중국에 머물던 유씨가 ‘유령’처럼 북한에 잠입했다가 50여분 뒤 중국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다.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출입국 서류인 셈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유씨 변호인 측 문서가 합법적이라는 입장이다. 중국 측이 설명하는 이유는 단순한 ‘전산 오류’다. 비록 공문서엔 유씨가 그날 ‘북한→중국’ 입국 절차를 2번 밟았다고 적혀 있지만 유씨의 북한 통행증은 1회용이기 때문에 같은 날 두 번 입국하는 행위가 실제론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1회용 통행증으로 같은 날 ‘북한→중국→북한’을 오갔다는 검찰 설명이 틀렸다는 것이다.
◆영사관·국정원 직원 개입 의혹
이 같은 정황을 종합하면 유씨의 출입국기록은 중국 측 전산 착오로 1차 오류가 발생했고, 이런 잘못된 정보를 진짜라고 믿고 한 차례 더 조작한 2차 가공 자료가 검찰 측에 전해진 걸로 추정된다. 따라서 서류 위조가 사실이라면 이 같은 정보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게 가장 합리적 의심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이 문서를 중국 측에서 가장 먼저 건네 받은 선양 주재 한국총영사관과 문서를 받아 검찰에 건네 준 국정원이 ‘의심 1순위’다. 특히 한국총영사관과 화룡시 공안국은 이 같은 문서를 팩스로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서류를 요구한 발신자와 문서를 받은 수신자에 시선이 집중되는 형국이다.
문제의 팩스를 주고받은 발신자와 수신자는 ‘이’씨 성을 쓰는 동일인으로 확인된 상태이다. 국정원 ‘IO(정보관)’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법조계 일각에선 중국이 국정원의 자국 내 비선 활동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파문이 불거졌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실제 검찰은 외교부 등 공식 라인을 통해 중국 측에 유씨 출입국기록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국정원을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자료 확보 경로를 대놓고 밝힐 수 없어 이번 파문에 침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모 기자 jm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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