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8살 딸을 살해하고 엄마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고생이 아토피로 인한 고통을 못 이겨 가려움증 완화제 일주일치를 한꺼번에 복용하고 목숨을 끊었다.아토피 피부염이 개인 문제라며 방치하는 동안 어느새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사이버공간에는 아토피 때문에 죽고 싶다는 글이 넘쳐난다. 이들은 “아토피 때문에 연애도, 취업도 못한다. 희망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리고 외친다. “저 좀 살려주세요!” 세계일보는 2일 아토피 환자 두 명을 만나 심층인터뷰를 했다.
저는 재작년에 자살 시도를 했어요. 그때 새로운 치료를 시작했는데, 머릿속부터 발끝까지 진물이 안 나는 데가 없을 정도로 심해졌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외모에 관심이 많았는데, 얼굴이 가장 심했죠.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목을 맨 끈이 끊어진 채 의식을 잃은 것을 친구의 신고로 경찰이 찾아내면서 실패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토피가 시작됐는데, 가리는 음식이 많아서 그런지 늘 몸집이 작았어요. 맨 앞자리에 앉아 긁어대니까 선생님이 어느 날 “너 때문에 집중이 안 되니까 뒤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자살을 시도한 뒤에도 저는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엄마가 항암치료를 받느라 한참 힘들었을 때는 같이 죽자고도 했어요. 부모님이 제가 어렸을 때 신경을 써줬으면 이렇게 안 됐을 것 같아요. 부모님이 맞벌이였는데, 그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이것저것 많이 사먹었거든요.
요즘 같이 미세먼지와 황사가 심한 환절기에는 제가 굉장히 날카로워져요. 제 얼굴이 어두우면 집 안은 쥐 죽은 듯 긴장이 흐르죠. 저는 앞으로 직장을 다닐 생각은 없어요. 제가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겠어요. 엄마는 시골에 내려가는 게 어떠냐고 하는데, 가서 좋아지면 뭐해요. 다시 오면 심해질 텐데.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해도 귀에 안 들어와요. 가족들이 저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건 알아요. 그래서 그나마 버티고 있는 거예요.
◆29살 남자 B
저는 늘 왕따였어요. 온몸에서 진물이 나면 여름에 특히 냄새가 고약하죠. 누가 냄새 나고 얼굴에서 피가 나고 목은 쭈글쭈글하고 교복에 하얗게 각질이 내려앉는 애를 좋아하겠어요.
집에 오면 옷을 다 벗어던져요. 그러고는 젓가락 같은 길쭉한 것을 찾아다니죠. 긁는 걸로 모자라 후벼 팠어요. 저는 치료제 부작용까지 겹쳐 망막박리에 소아백내장이 와서 실명 위기도 겪었어요.
아기였을 때부터 아토피가 있었다고 해요. 밤새 잠을 설치면서 긁어주고 짜증을 받아줘야 했던 부모님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일하고 와서 쉬지도 못한 채 피고름 묻은 빨래를 하고 청소도 두 배로 해야 했으니까요.
고등학교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친구들이 아토피가 남에게 옮기는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조금씩 다가왔거든요. 늘 긴소매만 입었는데 친구들이 반소매도 입으라고 했어요. 학교에 있는 시간이 조금씩 재미있어지면서 성격도 바뀌더라고요.
지금은 학원에 다니면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공부하다 몰래 학원 화장실에 가서 긁곤 해요. 그래도 저는 지금이 진짜 행복해요. 여전히 피 나고 진물 나고 각질이 떨어져도 그전보다는 좋아졌거든요. 청소년 아토피 환자들에게 “지금은 하루하루 사는 게 고문이지만 관리를 잘하면서 그 시기를 넘기면 좋아진다고 믿으라”고 꼭 말해주고 싶어요.
심한 아토피 피부염으로 학창시절 따돌림을 받았던 B(29)씨가 집 근처에서 책을 읽고 있다. 실명의 위기를 겪으며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지금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아토피가 환경병이냐 유전병이냐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이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아토피가 환경병이면 사회가 함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만 유전병이면 그 역할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환경보건 전문가들은 생태계의 파괴와 각종 유해물질에의 노출이 종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토피를 극복하려면 깨끗한 자연환경과 함께 의식주 전반에 걸친 친환경적인 생활이 답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힘을 받은 데에는 아토피의 원인에 변변한 답을 주지 못하는 의학계의 무기력함이 작용했다. 여기에 대표적인 치료제인 스테로이드제에 환자들은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아직 환경문제와 아토피와의 관련성이 명백하게 입증되지는 않고 있다. 원인에 대해 논란만 계속되다 보니 온갖 치료법이 횡행한다.
최근에는 1차적으로는 유전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지만 환경문제가 직간접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삼성서울병원 아토피 환경보건센터의 안강모 센터장은 “일부 유전자 자체의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90% 이상은 적절한 관리로 ‘낫는’ 병”이라면서 “그러나 취약계층은 관리가 안 될 경우 유전적인 게 아닌데도 아토피가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윤지희 기자 phh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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