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따른 박근혜 정부 심판론과 지지율에서 자신을 턱 밑까지 추격했던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가 가족의 '국민 미개' 발언 파문으로 발목을 잡히면서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당선인만의 특화된 선거전략은 이번 선거를 승리를 이끈 주요 요인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박 당선인은 공식선거 운동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지난달 21일 이번 선거전을 유세차, 로고송, 율동, 확성기가 없는 이른바 '4무(無) 선거'로 치른다고 선언했고, 선거 마지막날까지 이를 지켰다.
소속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으로부터의 지원도 최소화했다. 현역 의원들이 대거 동원돼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리는 일도 사양했다.
캠프 전체를 총괄하는 팀장 2명이 있었지만 상징적이었다. 대신 사안·기능별로 팀이 구성돼 운영한다. 선대위원장이나 선대본부장 같은 굵직한 직책은 아예 없었다.
이른바 '농약급식' 논란 등 고비도 있었지만 네거티브를 최대한 지양하면서 조용하고 차분한 선거유세를 펼쳤다.
박 당선인이 전면에 내세운 것은 '배낭유세'였다.
후보가 직접 배낭을 매고 운동원과 확성기 없이 골목, 거리, 재래시장 등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시민들을 만나고 소통하겠다는 이 유세는 장안의 화제를 불러모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차분하고 조용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한 조치이기도 했지만 대규모 군중동원과 이벤트로 '고비용 저효율'이란 낙인 찍힌 기존 선거운동 방식을 탈피하자는 당선인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현장캠페인을 총괄한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번 현장캠페인의 핵심키워드는 정책공감과 시민참여"라며 "차별화된 새 선거캠페인을 통해 누가 진정으로 시민를 위하고 변화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시장인가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는 투표 결과로 증명된 셈이 됐다.
상식을 뛰어넘는 개념의 선거캠프도 당선에 일조한 일종의 전략이라는 호평도 나온다.
종로구 광장시장 인근에 자리잡은 2층짜리 캠프 건물은 2개월 뒤면 철거될 운명이다.
내외부 벽면이 군데군데 부서진 건물은 붉은색 철골을 뼈대삼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선거기간 동안 이 폐가에 가까운 건물은 박 당선인이 제시한 '재활용'이라는 컨셉트에 따라 극적인 변신을 이뤘다.
사무실은 재활용 센터에서 가져온 폐가구 등을 활용한 테이블과 의자가 놓였다. 플라스틱 술박스는 판대기 하나만 박아놓자 안락의자로 변신했다.
1층 가장 자리에 자리잡은 중앙무대는 공사장 팔레트를 쌓은 뒤 그 위에 거적을 깔아 만들어 놓았다.
건물 내부 파티션을 비닐로 했기 때문에 회의하는 소리는 누구나 들을 수 있었다. 캠프 내에서는 "수시로 도청이 가능하다"고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소통에 주안점을 둬 출입에 특별한 제한이 없다보니 취객이나 노숙인이 캠프 언저리에 주저앉아 잠을 청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할머니가 캠프 앞에서 담배를 태우며 엽전으로 운세를 보고, 그 옆에서 남편 병구완을 위해 또다른 할머니는 더덕을 깎아 팔았다. 예술가들은 깨진 항아리에 꽃을 심어 전시했다. 폐컴퓨터와 연소된 연탄은 그것 자체로 예술작품이 돼 캠프의 외벽을 채웠다.
캠프 관계자는 개소식과 함께 "기존 정치공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아직 공간 자체는 비어있지만 계속 새로운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내용을 채워가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옛 제일은행이 들어섰던 이 건물은 그 바람대로 재선 시장의 베이스캠프로써 '재활용'돼 마지막 소임을 다했다.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담아 우려를 샀던 선거벽보는 결과적으로 정 후보측의 '트집'으로 인해 역으로 박 당선인에 주목도를 높이는 재료가 됐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그 위력이 입증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한 실시간 대응능력은 한층 업그레이드 돼 박 당선인만의 강점으로 작용했다.
이민호 모노리서치 전략이사는 박 후보의 선거전략에 대해 "이번 선거는 사실 전략보다는 어떻게 보면 분위기에 좌우됐다"며 "특히 세월호 영향이 커서 어쩔 수 없이 조용한 선거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운동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런 선거전략은 현역 프리미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현역 프리미엄이 없는 상태에서 이같은 컨셉트가 가능했을까. 도전자 입장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를 대입시켜 보라"고 반문했다.
이 이사는 그러면서도 "조용하고 차분한 선거를 치른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적으로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재벌 대 서민이라는 정 후보와의 대결구도를 감안하면 이번 선거 전략과 캠프는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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