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표준 전문가 육성 서둘러야 우리는 진정한 반도체 강국인가. 한국은 반도체 개발과 생산에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지만 반도체를 제조하는 장비재료 분야는 여전히 쫓아가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설상가상 세계 최대 반도체장비회사인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세계 3위 일본의 도쿄일렉트론의 경영 합병 작업이 거의 마무리돼 가고 있다.
그런데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세계 반도체산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본 체력의 강화방법으로 국제표준화 활동의 적극 참여가 있다. 미국 서부개척의 상징인 금문교와 디지털산업의 메카로 알려진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매년 7월이면 반도체 제조의 핵심기술인 반도체 장비재료 분야 세계 최대 ‘세미콘 웨스트 전시회’와 ‘세미 국제표준회의’가 열린다. 올해에도 지난 6일부터 11일까지 이곳에서는 전시회와 표준화 회의가 동시에 개최됐으며,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 재료 관련 1000개 업체 이상이 참여하면서 기존의 첨단 제품과 지난 1년간 새롭게 개발한 신기술을 선보였다.
표준화회의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등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300여명의 세미 표준 전문가가 모여 901개로 구성돼 있는 각종 표준을 수정하기도 하고 새롭게 제안된 내용을 검토했으며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일부는 폐기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과학기술을 응용해 우리 인류에게 필요한 제품과 시스템을 제공하는 각종 산업에는 일정 수준의 품질과 안전성을 유지하고 생산의 효율성 증대와 원가제조 비용 감소를 위해 업계 스스로 민간 표준을 제정한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초기에 표준화 개념이 없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다 보니 기업 간 과다 경쟁이 유발됐고 이는 결국 반도체 제조단가 상승으로 발전하게 됐다. 1970년대부터 반도체 제조 장비재료 분야에서 강자인 미국, 일본, 유럽 기업이 중심이 돼 세미 표준을 제정하게 됐고, 한국은 반도체소자와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은 세계 최고를 유지하면서도 고가의 핵심공정 시설은 선진 외국기술 기업에 의존하게 되면서 세미 표준 제안과 제정 활동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 901개의 세미 표준 중 4개가 한국에서 제안돼 채택됐고, 국내 활동인원도 전 세계 1000여명 중 대만보다는 적지만 40여명으로 증가됐다.
김광선 한국기술교육대 교수·기계공학 |
또한 이러한 웨이퍼의 강도나 표면조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허용오차 범위 내의 측정기준을 설명할 수 있어야 새롭거나 수정된 시험절차를 제안하고 검토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전문적인 현장경험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론으로 무장해야 하며 세계 곳곳의 엔지니어와 소통할 수 있는 영어활용 능력도 필수요소이다.
세미 국제 표준은 민간 표준이며 따라서 철저하게 산업체 현장으로부터 제안돼 관련 산업전문가들이 모여 스스로 결정하는 시장 지향적, 즉 상향식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 표준화 활동은 산업계의 수요에 의해 활성화되는 것이며, 산업기술외교관도 기업에서 육성돼야 강해지고 오래 간다. 우리가 후발주자인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정부가 육성정책은 세우되 구체적인 표준화 프로그램의 실행은 전폭적으로 기업이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관련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우리 대한민국의 산업기술외교관 또한 많이 육성돼 세계를 이끌어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해 본다.
김광선 한국기술교육대 교수·기계공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