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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정치권의 ‘헌법재판소 흔들기’ 자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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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2-24 23:12:32 수정 : 2024-12-24 23: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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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사법화 심해지면서 사법의 정치화도 가속
헌재 올바른 판단 방해해 국가 미래 악영향 우려

요즘 ‘헌법의 시간’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미 정치적 논쟁의 영역을 넘어서 헌법적 판단에 따른 법적 처리가 필요한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시작된 것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지만, 그밖에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을 둘러싼 논란, 각종 정치적 쟁점들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논란 등과 관련하여서도 헌법의 시간이라 말하곤 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그런데 헌법의 시간에 과연 헌법재판소가 주도적인 위치에서 헌법적 쟁점들을 정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헌법재판소에 가하는 압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현시점에 가장 큰 정치적 외압을 받는 것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일 것이지만, 헌법재판소에 대한 압력도 그에 못지않다. 향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진행됨에 따라 압력의 강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여야 정치권에서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계속 말을 바꾸면서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의 헌법재판관 충원에 대해 갈등을 보이는 것도 헌법재판소를 흔드는 것이며, 상설특검이나 법률안거부권 행사 등 각종 정치적 쟁점들에 대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겠다는 것도 헌법재판소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의 정치화라는 반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었다. 그런데 최근 여야 간의 정치적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면서 정치의 사법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사법의 정치화 우려 또한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검사 탄핵 등 탄핵소추를 남발하면서 헌법재판소의 기능 마비를 아랑곳하지 않는 채, 헌법재판관 충원을 합리적 사유 없이 지연하였던 태도를 바꾸어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문제 되면서 헌법재판관 충원을 서두르는 것도 원칙 없는 태도로 비판되지만, 이를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헌법재판관 충원에 반대하는 것도 궁색한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른바 사법부 코드인사가 심해지면서 헌법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립적 성향의 재판관보다 특정한 정치적 성향의 재판관이 많아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느 한쪽의 재판관이 6명 이상일 경우에는 모든 정치적 사건에서 편향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것이고, 4대 5 정도로 팽팽할 경우에는 어느 쪽도 탄핵심판과 헌법소원심판에서 인용 결정을 내리기 어렵고,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도 매우 어려워진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상황이 바람직한 것인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은 재판관 8대 0의 만장일치로 결론이 나왔다. 재판관들이 각기 보수진영 또는 진보진영에 의해 선임되었는지가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2025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도 그럴 수 있을까? 만일, 재판관들의 의견이 갈라져서 6대 3으로 가결되거나 5대 4로 부결되었을 경우에는 또 어떤 후폭풍이 있을까?

여야 정치권에서 헌법재판소를 계속 흔드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려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이 자칫 헌법재판소의 올바른 판단을 저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의 장래를 어둡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은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헌법재판소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정치권의 영향으로 인하여 왜곡된 결정을 내린 것으로 국민에게 인식될 경우에는 선거부정에 대한 루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쩌면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이를 회복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당장 눈앞의 확실치도 않은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의 장래를 망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정의롭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진정으로 정의를 원한다면, 내가 정의를 향해 다가가야 하는 것이지, 정의를 나에게 끌어당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정의를 향해 다가가는 길이 가시밭길이어도 그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 나를 위한 정의, 우리 편을 위한 정의를 만들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미 진정한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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