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부검하기 전 사인 발표
지난 4월6일 부대 내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한 윤 일병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가해자들은 응급조치를 취한 후 병원으로 이송했다. ‘현장 보존’이라는 검시의 기본원칙부터 무너졌다.
다음날인 7일 육군은 부검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윤 일병 사인을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사’로 발표했다.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하는 바람에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후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에서 실시한 부검 감정서에 따르면 윤 일병은 온 몸에 멍과 출혈이 발견되고 갈비뼈 15개가 부러졌다. 뇌에서도 멍과 부종이 발견되고 비장마저 파열됐다. 부검 후 국방부가 밝힌 사인은 똑같았다.
반면 부검감정서를 검토한 법의학자들과 윤 일병 사건이 이송된 육군 3군사령부 검찰부가 밝힌 사인은 ‘심한(지속적인) 구타로 인한 쇼크사’였다. 법의학자들은 “군법의관이 (시신의)손상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굉장히 의문스럽다”고 말한다.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던 김호철 변호사는 “군에서는 사망 경위에 대한 은폐나 왜곡이 있을 수 있어 자세한 정보 없이 부검만으로 소견을 낸 부검의에게만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 일병 부검을 담당한 군법의관은 재판에서 “부검하기 전 피해자가 당한 폭행의 정도나 구체적 상황에 대해 몰랐다”고 증언했다. 이뿐 아니라 재판부에 제출된 부검감정서 일부가 은닉 또는 폐기됐다는 의혹도 가해자측 변호인이 제기한 상태다.
훼손된 사건 현장, 법의학 전문가가 없는 현장 검안, 부검 결과만으로 소견을 내는 반쪽 검시 등 우리나라 검시제도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는 군은 특유의 폐쇄성까지 더해져 국민 불신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이 8월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국방위원회 연석회의에서 폭행으로 사망한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의 사진을 공개하며 회의에 출석한 한민구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를 질책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
1993년부터 2013년까지 21년간 군에서 사망한 장병은 총 4108명에 달한다. 한 해 평균 195.6명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에도 군에서 자살 등의 각종 사고로 117명이 숨졌다.
군 병원 냉동고에는 18구의 주검과 133구의 유골이 장기보관돼 있다. 유족들이 의문사라며 진실을 밝혀달라고 인수를 거부한 주검들이다.
군 의문사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은 수사기관과 감정기관이 모두 군 지휘체계에 종속돼 있는 데다 법의학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 객관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는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군내에서 변사 의심 사고가 발생하면 군사법경찰관이 수사하고 소속부대 일반 군의관이 시체 검안을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군 검시권을 갖고 있는 검찰관(檢察官) 지휘에 따라 국방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한다. 다만 유족이 원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다.
국방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법의군의관 3명이 연평균 100여건의 부검을 한다. 이들은 국과수 부검의사들과 마찬가지로 현장검안은 거의 못한다. 대부분 의대 6년 내내 부검 한 번 제대로 못해본 채 임관해 군 입대 후에야 국과수에서 부검 훈련을 받는다. 한 군 관계자는 “강원도 부대에서 중요한 사망사건이 터져도 서울에서 갈 수 없는 게 현실이고, 법의군의관을 사건현장으로 부르려는 검찰관도 없다”고 지적했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수사에서 감정에 이르기까지 독립성을 보장하기 힘든 군 사법체계라는 지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실은 “국방과학수사연구소가 실력이 없어서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며 “세계 최고의 전문성을 갖고 있다 해도 법의학적 소견이 아닌 (상부)지침을 받아 처리하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군에서 로스쿨 출신의 장기 군법무관을 뽑는데 큰 문제”라며 “사법고시 출신 법무관은 제한된 기간만 근무하면 됐지만, 장기 법무관들은 지휘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우려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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