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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그리스·독일, 과거사 논쟁으로 시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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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05 20:12:32 수정 : 2015-04-05 20: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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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나치에 192조원 피해"… 獨 약점 잡아 빚 탕감 압박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8일(현지시간) 러시아를 방문한다. 치프라스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첫 만남이다. 국제사회, 특히 유럽연합(EU)은 둘의 만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시기나 상황이 워낙 민감해서다. 그리스에 2460억유로(약 292조4054억원)의 구제금융을 댄 유럽 채권단은 이날 마지막 분할금(72억유로)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스는 유럽 채권단과 협상 과정에서 빚을 일부 탕감받지 않으면 러시아와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특히 치프라스 총리는 최대 채권국인 독일을 상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그리스에서 벌인 전쟁범죄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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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배상금 192조원 달라”

독일을 상대로 한 그리스의 배상 요구는 1990년대부터 제기돼 왔다. 나치는 1941∼1944년 그리스를 점령해 지배했다. 나치친위대(SS)와 독일군의 만행으로 디스토모, 테르모필렌, 칼라브리타 등 그리스 전역에서 2만여명이 학살됐고 나치 치하에서 굶거나 병들어 죽은 민간인도 25만명에 달한다. 그리스 정부는 나치 점령 기간 사회간접시설 파괴 등 경제가 초토화돼 1080억유로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또 나치가 그리스중앙은행으로부터 무이자로 빌려간 4억7600만라이히스마르크(요즘 화폐가치로 약 64조원 추산)를 갚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치프라스 총리는 지난 1월 말 취임 이후 첫 일정으로 그리스 레지스탕스(저항군) 추모비를 찾았다. 이어 2월 초 의회 연설에서는 독일의 ‘강탈자금 반환과 배상금 지급’을 촉구했다. 치프라스 총리가 독일에 요구하는 배상액 1620억유로(약 192조5600억원)는 전임 우파 안도니스 사마라스 정부가 2013년 산출한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반긴축, 반EU를 공약으로 내걸어 승리한 치프라스 총리가 전후 배상금 문제를 구제금융 재협상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은 그리스 최대 채권국(560억유로)인 동시에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최대 ‘돈줄’이다.

그리스의 ‘과거사 드라이브’에 독일 정부는 전후 배상은 이미 끝난 문제라면서도 정면 대응은 자제하는 편이다. 독일은 전후 파리보상회의와 런던부채협정(1953년), ‘2+4 조약’(동·서독+영국·프랑스·미국·소련, 1990년) 등에 따라 1960년 그리스에 배상금 1억1500만마르크를 제공한 것으로 양국 간 전후 처리 문제가 완료됐다고 본다.

◆글로벌 리더십 시험대 오른 독일

하지만 독일의 전후 처리가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유력 정치인인 게지네 슈반은 “그리스의 배상 요구는 합당하며 정부는 마땅히 이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최근 잇따라 ‘나치의 그리스 대출금은 강탈된 것’ 등의 과거사 특집기사들을 쏟아내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사실 독일이 과거사 청산 근거로 댄 국제조약들은 논란의 소지가 많다. 런던부채협정의 핵심은 피해국과 개인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독일 통일 이후로 미룬 것이고, ‘2+4’ 조약은 이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독일은 국제법상 2차대전 피해국들에 배상할 의무가 없다. 종전 직후 독일이 동·서로 갈라져 배상 주체가 모호한 데다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하면 또 다른 나치 정권이 등장할지 모른다는 우려 탓에 연합국들이 배상 의무를 지우지 않았다. 독일이 그리스에 지불한 배상금 역시 지급 대상이 나치의 불법 행위 피해자들로 국한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23일 치프라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전쟁배상 요구와 관련해 “이 문제를 무시하지 않고 대화를 계속 해나가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독일은 2008년 세계 금융·재정위기를 계기로 경제·외교적 위상이 높아졌다. 하지만 독일이 지나치게 과도한 긴축조치를 요구한다는 불만과 메르켈 총리가 아돌프 히틀러에 이어 ‘제4제국’ 건설을 꿈꾼다는 견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독일과 그리스의 때늦은 과거사 논쟁이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은 물론 강대국 위주의 현행 전후 보상 기준, 유럽·세계 경제의 미래를 시험대에 올려놓은 것이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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