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주류라 할 수 있는 ‘박서보 사단’에도, ‘서세옥 사단’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예술가로의 삶은 더욱 외롭고 고달팠다. 그럼에도 속은 매우 따듯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 |
생전에 작업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이동엽 작가. 자신만의 예술을 위해 그는 고독한 검객처럼 살았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
전업작가로 여유롭지 못했던 이동엽은 생전엔 인사동 나들이도 가물에 콩나듯 했다. 통인가게 김완규 대표가 주도하는 인사모(인사동을 사랑하는 모임)에 가끔씩 얼굴을 내밀었던 것. 특히 그는 통인가게의 이조백자를 좋아했다. 자신의 작품은 조선백자의 깊은 백색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했다. 백자의 백색에서 무한대의 우주적 공간, 초월적 명상의 공간을 마주한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서울 상도동 달동네에 살았던 이동엽은 어느날 비가 갠 산허리에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가는 노인을 보게 된다. 넓은 풍경 속에 하얀 움직임은 그에게 신성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흰색이 가슴에 꽂히는 순간이었다.
![]() |
어떠한 형상도 그려져 있지 않은 이동엽의 ‘사이(間)―명상(캔버스에 아크릴)’. 희미한 붓자국만이 화면 전체에 흰색과 회색 물감이 도포되어 있음을 유추케 해준다. 동양화를 그릴 때 쓰는 넓은 평필로 흰색 바탕 위에 또다시 흰색과 회색 선을 정교하게 닦아 나가듯 붓질을 반복했다. 행위와 행위의 무수한 중첩에서 생성되는 자연스러운 겹침과 스며듦은 마음을 비우게 하는 명상으로 다가온다. |
한국 골동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던 야마모토 대표는 한국미술의 근원이 조선백자에 있다고 봤다. 이동엽의 작품을 두고 조선의 백자를 보는 듯하다고 했다. 1975년 도쿄화랑에서 ‘한국 5인의 작가―다섯 가지의 흰색’전이 열렸다. 이동엽이 허황, 서승원, 권영우, 박서보와 함께한 전시다.
이동엽은 흰색을 그리기 위해 붓질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를 그리는 것을 넘어서 단순히 순수 평면주의로 가야 한다는 서구모더니즘의 추종에는 반기를 들었다. 서구적 평면성의 개념이 아닌 직관적 공간을 생각한 것이다. 동양적인 것, 한국적인 것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여백에 대한 사유인 것이다. 바로 명상이자 힐링이라 할 수 있다. 한국단색화의 특색인 정신적 공간의 창출이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다. 넉넉한 백자 달항아리 모습이다. 8월23일까지 학고재갤러리에서 이동엽 개인전이 열린다. (02)720-1524∼6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