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인 김영주 목사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루터는 성직 독점주의를 타파하고 교권에 갇힌 종교를 대중에게 돌려놓는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고 강조했다. 목사는 교사 정도 역할이지, 자신만이 성직자라고 여긴다면 루터의 뜻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김영주 목사는 “한국교회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을 초대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데, 혹여 이들을 외면하는 기득권은 돼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루터는 행위가 있는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당시 제도권 교회에 도전했지요. 그런데 교권주의에 반기를 들고 나온 개신교가 또 다시 성도들에게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고 가르친다면 새로운 교권주의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김 총무는 “개신교계에서 이뤄지는 불공정한 선거, 성직매매, 교회세습, 끊임없는 분열과 무한경쟁, 불투명한 재정 사용 등의 행위는 마땅히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중세 가톨릭에서 추기경 자리를 돈으로 사고, 베드로성전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한 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사실을 상기시켰다. 당시 성전 건축 헌금만 내면 지옥 가는 일도 면해줬다는 것이다. 가톨릭 사제들의 금혼령도 교회세습 방지책의 일환으로 나왔다고 한다.
“교회는 철저히 타자를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공공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과거의 가톨릭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밖에 없습니다.”
NCCK는 루터가 ‘95개 논제’를 통해 교회의 부당한 처사를 비판하며 종교개혁을 촉발했듯이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취지로 새로운 ‘95개 선언’을 한국교회에 제시할 계획이다. 이 선언은 부활절(3월 27일) 이전에 공개될 예정이며, 1517년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며 작성한 ‘95개조 반박문’에 착안해 만들어진다.
“적잖은 논란도 예상되지만, 한국교회 안에는 변화와 개혁 의지 또한 내재돼 있으므로 그 가능성을 일깨울 것입니다.”
김 총무에 따르면 핀란드 등 유럽 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올해와 내년에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상징하는 대형 천막을 치고 예수 시대 신앙의 뿌리를 경험하는 ‘빅 텐트’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김 총무는 여기에도 동참하는 한편, 130년 역사를 가진 한국교회에도 ‘빅 텐트’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 총무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전략도 좀 더 지혜롭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북한이 수소폭탄을 만드는 마당에 확성기로 대응이 가능할까요? 정부가 북한을 계속 ‘적대적 공생관계’로 끌고 가는 것은 정치적 이용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김 총무는 남북 간에 종전을 선언하고, 한반도 분단 관련 당사국이 모여 평화협정(조약)을 체결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단의 책임이 미국에도 있는 만큼 오는 7월 휴전협정 기일에 맞춰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하며 2주 동안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10만명 서명운동’에 돌입할 계획이다.
“분단은 강대국에 의해 결정됐지만, 분단 해결은 강대국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NCCK는 지난해 한국에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2만3000명의 서명을 받아 우리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로부터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우리는 2만명만 넘으면 정부가 꼭 답변해 줘야 할 의무가 생기는 데 비해 미국은 시민 10만명의 서명이 있어야 정부가 응답할 의무를 갖는다고 한다. 따라서 NCCK는 미국 시민권자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평화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출해 미국 시민사회와 대통령의 관심을 이끌어 낼 방침이다. 이를 위해 미국 감리교와 장로교, 성공회 등에서 협조해주기로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가상 ‘평화협정문’도 만들어 놨습니다.”
김 총무는 지난 11일 서명에 동참할 수 있는 ‘외국어 누리집’을 개설했고, 내년과 내후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교회협의회(CCA) 등과 공동으로 각각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평화조약 체결 서명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전쟁은 안 된다’는 것이 NCCK의 근본 취지다.
“총으로는 남도, 북도 평화를 지킬 수 없습니다. 한국의 정서는 북한에 대해 온정이 부족한데, 교회도 그쪽으로 서야 할지는 고민해야 할 대목입니다.”
힘을 통한 평화는 세속의 논리이며, 정치인들은 북한을 비난할 수 있지만 종교인들은 좀 달라야 한다는 것이 김 총무의 지론이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돼 있기에 인류 정신문화가 발달해 왔다”고 강조한 김 총무는 “문화는 톨레랑스(관용)인데, 종교가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염원했다.
정성수 문화전문기자 tols@segye.c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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