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멋진 순간' 배경 마을 프로방스 루베롱에서 빚는 청정와인 마레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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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개봉한 러셀 크로 주연의 <어느 멋진 순간> 포스터 |
주식시장을 쥐고 흔들정도로 시장 조작에 능한 잘나가는 영국 런던의 증권맨 맥스 스키너(러셀 크로우 분). 그는 어느날 부모 없는 자신을 키워준 삼촌의 부음과 함께 유산으로 와이너리를 물려받게됩니다. 그는 와이너리를 빨리 처분해 돈만 챙길 요량으로 프랑스의 한 시골마을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는 와이너리 곳곳에서 어린 시절 와인을 가르쳐주던 삼촌과의 추억을 만나게 되지요. 그리고 운명처럼 다가온 여인 페니 샤넬(마리옹 꼬띠아르 분)과 사랑에 빠집니다. 결국 맥스는 돈만 쫒는 증권맨의 삶을 포기하고 포도밭을 되살리며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아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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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멋진 순간 주연 배우 러셀 크로와 마리옹 꼬띠아르 |
푸른 하늘과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 위로 쏟아지는 투명한 햇살, 바람결에 묻어오는 라벤더의 향기, 넉넉한 이웃의 따뜻한 미소, 그리고 여유로운 저녁식사와 한 잔의 와인. 많은 도시인들이 꿈꾸는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이 영화는 2006년 개봉된 ‘어느 멋진 순간(A Good Year)’입니다. 피터 메일(Peter Mayle)의 동명소설 토대로 만든 영화로 ‘글레디에이터(Gladiator)’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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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 멋진 순간>에서 남자 주인공이 프러포즈 하는 장면 |
영화 막바지에 맥스가"당신같은 와인을 마시며 서로의 술잔을 채워줄 사람과 보낼 삶을 원해" 라며 페니에게 프로포즈 하는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명장면이랍니다. 영화 제목 A Good Year는 맥스가 새로운 인생을 찾게된 해를 뜻하지만 와이너리에서는 포도 농사가 잘돼 최고의 빈티지 와인이 탄생한 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맥스는 페니의 아름다움을 최고의 빈티지에 빚어진 와인으로 묘사한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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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루베롱 풍경 출처=홈페이지 |
영화를 보다보면 당장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풍광에 푹 빠지게 되는데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 프로방스의 루베롱(Luberon)입니다. 프랑스 유명 와인산지 론 지역 인근이지요. 서쪽의 까바이용(Cavaillon)부터 동쪽 마노소끄(Manosque)까지 이어지는 루베롱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휴양지랍니다. 유네스코(UNESCO)는 평지에 동서로 커다란 바위 암석산 펼쳐진 루베롱의 일부 지역을 생물권 보전지역(Biosphere Reserve) 지정했을 정도로 천혜의 자연 환경이 잘 보존돼 있답니다. 루베롱은 돈은 많은데 조용히 살고 싶은 이들이 선호하는 곳으로 TV 스타나 영화배우, 유명 기업 오너들이 많이 거주한고 하네요. 루베롱은 신규 건축은 허가되지 않고 인테리어만 할 수있을 정도로 개발을 억제해 고풍스러운 주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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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을 제한하는 프로방스 루베롱의 고픙스러운 주택들 출처=홈페이지 |
루베롱은 이처럼 아름다움 경관과 풍족한 라이프 스타일, 라벤더가 지천에 핀 허브의 천국, 프랑스 최고급 블랙 트러플 생산지로 잘 알려져 있는데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와인입니다. 해발고도 200∼500m에서 자라는 포도는 큰 일교차때문에 느리지만 완벽하게 숙성돼 풍부한 과일향과 균형감, 우아함을 지닌 와인이 빚어집니다. 특히 1년 중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 320일이나 돼 와인의 아로마를 풍부하게 만들지요. 영화속 풍광이 아름다울 수 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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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농 포도밭 풍경 출처=홈페이지 |
이런 루베롱의 보존지역에서 포도생산자 1200여명이 모여 ‘청정 와인’을 생산하는 조합 와이너리가 마레농(Marrenon)입니다. 1965년에 설립된 마레농은 축구장 1만5000개를 연결한 크기인 7600ha의 드넓은 포도밭과 9개 양조장에서 매년 프랑스 전체 와인생산량의 1% 가량인 5800만병을 생산합니다. 프랑스 와인을 얘기할때 루베롱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루베롱만 놓고 보면 와인 생산량의 85%를 차지하며 인근 로제와인으로 유명한 벙투(Ventoux)에서도 와인 생산량의 20%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마레농은 생산량의 50%가 로제 와인이며 레드 와인은 30%, 화이트 와인 비중 20%입니다. 마레농은 론 지역 대표 품종인 시라, 그르나슈를 많이 사용하는데 최고급 로제는 시라로, 일반 로제는 그르나슈로 만듭니다. 화이트 와인은 샤토네프뒤빠쁘 블랑에 사용하는 품종 베르멘티노를 중심으로 그르냐슈 블랑, 루산느, 마르산느를 블렌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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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농 플래그십 와인 가르다렘 |
마레농 와인의 장점은 중개상들의 개입 없이 조합원 스스로 생산한 와인을 직접 판매하기 때문에 가성비가 매우 좋다는 점입니다. 소비자에게 최고 퀄리티의 와인을 가장 낮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 이들의 와인철학이라고 하네요. 루베롱은 론 지역 위성지역이라 사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와인산지입니다. 단지 값싸고 맛있는 와인을 생산하는 곳 정도로만 여겨졌지만 최근 마레농이 가르다렘(Gardarem) 같은 고급 와인을 내놓으며 활발한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시라 품종으로 만든 가르다렘 2012는 2015년 세계시라와인경진대회(World Syrah Wine Competition)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남프랑스의 ‘피노누아’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품질을 자랑합니다. 가르다렘은 ‘우리는 지킨다’는 뜻을 지닌 프로방스 방언으로 루베롱의 뛰어난 자연 환경과 와인의 품질을 잘 보존하겠다는 의지도 담고 있답니다.
철저한 포도밭 관리도 품질의 비결입니다. 어느 구역 포도밭의 포도로 어떤 와인을 만드는지 미리 정하고 포도밭을 구획별로 등록해 관리를 합니다. 9개 양조장별 와인메이커를 따로 두고 총괄와인메이커까지 10명이 세심하게 양조를 합니다. 좋은 포도를 생산할 수록 수매단가를 높여주기 때문에 생산자들이 품질 좋은 포도 생산에 총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시스템도 구축해놓았습니다.
마레농 와인의 품질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유명 네고시앙들이 마레농 와인을 공급받는다는 점에서도 알수있답니다. 마레농은 전체 생산량의 35%만 자가 브랜드로 판매하고 나머지 65%는 프랑스 론지역 대형 네고시앙에 판매합니다. 그것도 병입한 완제품 상태로 공급합니다. 네고시앙들은 이 와인에 자사 레이블을 붙여 훨씬 비싼 값에 소비자들에게 내놓는다고 하네요. 이기갈(E. Guigal)이 소유한 비달 플뢰리(Vidla Fleury), 엠샤푸티에(M Chapoutier), 폴 자볼레 애네(Paul Jaboulet Aine), 들라스(Delas),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 카스텔 그룹(Castel Group) 등이 바로 마레농 와인을 사용하는 네고시앙들입니다. 네고시앙은 보통 포도를 매입해서 와인을 빚는 곳을 말하는데 요즘은 포도밭을 직접 소유한 네고시앙도 많이 등장했습니다. 네고시앙들이 보통 최상급 자기 밭 포도를 사용해 빚는 와인의 비중은 10~20% 정도이고 나머지는 매입한 포도를 사용합니다.
■마레농 와인 테이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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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농 수출담당 이사 로베르트 오스트릭 |
한국을 찾은 마레농 수출담당 이사 로베르트 오스트릭(Robert Oustric)씨와 마레농 대표 와인 4종을 테이스팅했다. 그는 씨마레농이 설립된 해에 태어나 마레농과 나이가 같다며 마레농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은 운명이라고 했다. 1997년부터 마레농과 인연을 맺고 전세계를 돌며 마레농 와인을 홍보하고 있다. 마레농 와인은 현재 나라셀라에 단독 수입하는데 나라셀라가 설립된 해도 1965년으로 마레농과 같은해여서 특별한 인연이라 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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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농 대표 와인들 |
그랑 마레농 블랑 2014(Grand Marrenon Blanc 2014)는 베르멘티노(Vermentino) 60%, 그르나슈 블랑(GrenacheBlanc) 30%, 루싼느, 마르싼느 끌레렛(Clairette)를 블렌딩했다. 영할때는 한 샤토네프 뒤빠쁘 블랑처럼 느껴지고 숙성되면 부르고뉴 샤샤뉴 몽라셰 스타일 처럼 느껴진다. 60%는 새오크배럴에서 나머지 40%는 스틸탱크에서 발효한 뒤 나중에 블렌딩 한다. 마치 아카시아, 백합 등 흰꽃다발을 코에 가까이한 듯 복합적인 향과 꿀향 등이 느껴지는 매우 아로마틱한 와인으로 오크에서 얻어진 약간의 바닐라 향도 느껴진다. 산뜻한 산미가 돋보이고 균형이 잘 잡혀있다. 트러플 오일 들어간 모든 음식과 궁합이 잘맞는다. 8∼10개월 숙성하는데 숙성될수록 부르고뉴 와인처럼 변해간다. 2012 빈티지는 앞으로 4~6년 정도 더 지나면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화이트 와인이지만 너무 차지 않게 13~14도 정도로 마시는 것이 좋다. 간단한 디캔팅을 하면 더욱 풍부한 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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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마레농 블랑 2014 |
그랑 마레농 루즈 2014(Grand Marrenon Rouge 2014)는 시라 70%, 그르나슈 30%를 섞었다. 이 와인은 최소 30년 이상 수령의 포도를 사용하는데 소출량이 1ha당 4.5t에 불과할 정도다. 보르도 1등급의 경우 소출량은 ha당 5t이다. 이는 그만큼 포도의 응축력이 보르도 1등급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소출량이 적다는 것은 포도나무 한그루의 포도송이를 제한했다는 뜻으로 농축미가 뛰어난 포도를 얻게된다. 오크 풍미를 최대한 절제하기 위해 1년 사용한 오크와 2년 사용한 오크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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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마레농 루즈 2014 |
대체로 드라이 와인이라도 잔당은 3~4g 정도다. 그러나 마레농 와인은 2g 불과한 매우 드라이한 와인인데도 포도가 잘 익어서 풍성하게 느껴진다. 로베르씨는 “좋은 와인은 드라이해야하지요. 달고 산도 낮은 와인은 코카콜라나 다를바 없어요. 잔당이 많으면 와인이 아니라 잔당을 느끼게 된답니다”라고 설명했다.
과일 잼과 같은 농익은 향이 매력적이며 스파이시, 담배향, 가죽향 등이 느껴지고 풍부하지만 거칠지 않은 탄닌과 올리브, 체리향이 긴 여운을 남긴다. 2014 빈티지는 아직 영한 상태라 오크향이 상대적으로 강한데 1~3년 지나면 과일과 오크향이 잘 어우려져 생산자가 의도한 와인의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마레농은 모던한 스타일과 소프트한 탄닌을 지닌 와인을 추구한다. 양고기, 매콤한 육류, 돼지 불고기 등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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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 벙투 2015 |
오르카 벙투 2015(Orca Ventoux 2015)는 80∼110년 수령의 올드바인 그르나슈 98%와 시라를 섞었다. 올드바인에서는 농축미가 뛰어난 아주 작은 포도가 나온다. 소출량은 ha당 3t 미만에 불과하며 완숙도가 매우 좋다. 4~5년 사용된 오크로 15개월 숙성한다. 검은 과실향과 가죽향, 버섯향, 볶은 커피의 향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다. 블랙 초콜릿과 잘 어울린다. 달콤한 착각을 주지만 전혀 달지 않은 와인이다. 오르카는 라틴어로 고대 로마시대에 와인 저장과 운반에 사용된 도기 암포라(Amphora)를 뜻한다. 벙투 지역에서 만드는데 ‘슈퍼 벙투’ 와인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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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다렘 2012 |
가르다렘 2012(Gardarem 2012)는 시라 100%로 마레농의 플래그십 와인이다. 소출량은 보르도 1등급 와인의 절반 수준인 헥타르당 2.5t이다. 해발 500m의 포도밭 2곳의 포도를 사용하는데 수확량을 줄여 응축된 포도를 만들기 위해 포도가 익기전에 솎아내는 그린하베스트를 한다. 일반적인 프랑스 오크보다 가격이 두배나 비싼 최고급 ‘셀렉션 콜베르’ 오크통에 2년간 숙성한다. 가르다렘은 마레농 조합이 단지 매출을 올리기 위한 와이너리가 아니라 최고급 와인을 만드는 조합이라는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만든 와인이다. 생산량이 매우 적어 마레농 와인중 유일하게 배당제로 판매한다. 2009년 3000병, 2010년 6000병, 2011년 9000병, 2012년 1만2000병을 생산했고 2013년에는 다시 6000병으로 줄었다. 2014년에는 기후 좋지않아 아예 안만들었다. 한국에는 240병만 공급된다. 저온에서의 긴 발효, 4주간의 긴 침용 기간 덕분에 벨벳처럼 부드럽고 풍부한 질감을 지녔다. 알콜에 절인 체리에 후추향을 쌀짝 뿌린 맛이 느껴진다. 갓 내린 에스프레소 같은 긴 여운을 보여준다. 20년가량 장기숙성이 가능한 와인이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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