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교육 담당 기자들이 총출동한 자리가 있습니다. 문재인정부의 교육 밑그림을 담당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새 시대 새 교육을 그려본다’를 주제로 강연회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한 입시업체 관계자로부터 이 같은 소식을 듣고 후배와 함께 서울글로벌센터를 가봤습니다.
제 딴엔 여러가지 궁금한 게 많았습니다. 당장은 세간에 떠도는 김상곤 교육부 장관 내정설을 묻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제1호 진보 성향 교육감’에 대한 팬심이었습니다. 주변에서 들었던 칭송 혹은 비난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향후 5년 간 유의미한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 가늠하고 싶은 어줍잖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대단했습니다. 2009년부터 약 6년 간 경기 교육을 이끌었던 선출직 교육감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날 강연은 김 전 교육감의 약 1시간 강연과 질의응답을 합쳐 1시간반 동안 진행이 됐습니다. 문재인정부의 교육정책 기조와 로드맵, 재원조달 방안에 대해 구체적 수치까지 언급하며 열강을 했습니다.
2014년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 김상곤의 저력도 엿봤습니다. 김상곤 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장은 정확히 강연 시작 5분 전 등장해 강연장 맨 앞석에 있던 청중과 일일이 악수를 했습니다. 그의 강연을 들었던 200여명의 청중이 앞다퉈 인사를 하고, 손을 잡고, 책을 건네고, 함께 셀카를 찍는 모습도 장관이었습니다.
차기 교육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김 전 교육감의 역량과 품격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원고 없이 1시간 동안 문재인정부의 출범 의미와 유·초·중·고교 및 대학 등 학교급별 개혁 방안들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 교육계 안팎의 ‘빅마우스’들의 떠보기나 ‘행복사회’ ‘젊은세대의 버릇없음’, 차기 교육권력에 대한 민원성 질문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더군요.
솔직히 말해 강연 내내 문재인정부의 교육공약들을 모두 입안했다는 그의 소신과 철학, 추진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68∼69%의 대학진학률, 19%의 공교육비, 1500만원의 1인당 학생예산, 3500개 정도의 대입 전형, 명실상부한 대학 반값등록금을 위한 1조5000억∼2조원의 추가투자 등을 말했습니다. 절로 ‘잘 준비된 교육 대통령’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심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경기교육감 시절 추진한 무상급식과 학생 조례, 혁신학교 등이 우리네 교육지형에 끼친 변화는 물론 인정합니다. 그런데 고교 학점제나 자사고·특목고 폐지, 대입전형 간소화, 공공형 대학통합네트워크 구축안 등은 과연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현실화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단적으로 “입시예비고로 전락한 외고·국제고는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한 그의 발언은 여러 상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명연설을 기억하는 입장에서 특목고 폐지가 과연 ‘공평한 출발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보면 공평한 기회 제공이라는 화두가 제각기 다른 능력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이런 우려가 기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교육 시장에서 그래도 진보적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는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교육평가연구소장이나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장은 공교롭게도 19일 보도자료와 페이스북을 통해 “수월성 교육 부재 등 취지와 다른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이 과연 안정돼 있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어찌 보면 교육담당 기자인 저를 포함해 ‘한국 교육 병폐’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푸념으로 치부할 수 있겠습니다. 김 전 교육감이 이 나라 교육을 제대로 세워보겠다고 하는 데 지금의 교육현실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자들이 괜히 딴죽을 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제기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텐데 능력상 그게 안돼 답답한 오늘(19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선 ‘이번엔 정말 뭔가 바뀔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느낀 어제였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간 김상곤 전 교육감의 강연에서 순간순간 가슴에 꽂힌 몇가지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아직도 기억나는 한 대목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한국교육은 국제적으로도 의미 있게 비춰질 뿐 아니라 우리 내부적으로도 업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내부 혁신이나 개혁이 정체된 측면도 있다. 이런 병폐 때문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 질곡으로 작용하는 면도 없잖아 크다. 저는 이런 것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미래를 뭐라고 예단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교육감을 시작했다.”
“2012년 2월 대학교육에 대한 혁신방안을 제안할 때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내걸었다. ‘최고의 교육복지는 대학교육 혁신을 통한 초중등교육 정상화다.’ 초중등교육이라는 게 대학의 종속변수 같이 돼 있다. 대학이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사실 초중등교육이 정상화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김 전 교육감은 또 문재인정부 교육 슬로건을 두 가지로 제시했습니다.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다.’ ‘교육은 국가가 책임진다.’ 이러한 슬로건대로 문재인 대통령 집권 5년이 △입시 중심 경쟁교육 △관료적인 국가통제 △점차 심화하는 교육·사회 양극화이라는 한국 교육·사회 주요 병폐가 조금 해소되는 시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이번 강연회에 대한 리뷰를 마칩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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