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된 지 하루 만에 폐기돼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무자격자 대리수술 근절과 의료사고 은폐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CCTV 설치법이 필요하다는 환자단체 입장과 의료인의 진료행위를 위축시킨다는 의사들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술실 CCTV 설치 논란은 과거부터 있었는데요. 19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대에 부딪혀 번번히 입법에 실패했습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발의 하루만에 폐기
환자들이 처음 수술실 CCTV 설치를 요구하며 나선 것은 2016년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 중 과다출혈로 권모 씨가 사망하면서부터입니다.
유족들이 수술실 CCTV 장면을 확인한 결과, 당시 의사는 권씨를 수술하던 중간에 수술실을 나가버렸는데요.
권씨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환자를 동시에 수술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것이 유족들의 주장입니다.
유족에 따르면 권씨는 지혈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간호조무사에게 장시간 방치됐는데요.
이 간호조무사가 수술실에서 휴대전화를 만지고 눈 화장을 한 장면이 확인되면서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수술실에서 무자격자가 대리수술을 한 사건과 의료사고 은폐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CCTV 설치 요구가 재점화했습니다.
지난해 5월 부산에 있는 정형외과에서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이 대리수술을 하다 환자가 뇌사에 빠지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최근에는 분당의 한 병원에서 의사 2명이 의료사고를 은폐하려 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이들은 제왕절개 수술 중 신생아를 바닥에 떨어뜨리고도 이를 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환자단체 "입법테러, 다시 법안 발의해야" vs 의사단체 "의료진과 환자 신뢰 무너질 우려"
이런 가운데 지난 14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술실 CCTV 설치법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15일) 법안 발의에 이름을 올린 10명 가운데 5명이 공동발의를 철회, 법안이 폐기됐습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법안 심의가 이뤄지지도 않은 채 법안이 폐기된 것은 '입법테러'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법안을 발의해줄 것을 국회에 촉구했는데요.
앞서 환자단체는 CCTV 설치 법제화를 촉구,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100일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수술실 CCTV 설치를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할 경우 의료인의 진료가 위축돼 환자를 위한 적극적인 의료행위에 방해가 된다는 게 의협 주장입니다.
환자 개인과 간호사 등 의료 관계자의 사생활과 그 비밀이 현저히 침해되고, 의료진과 환자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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