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범행에 수면제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동부경찰서는 고씨의 차량에서 압수한 이불에 묻어 있던 전 남편 A(36)씨의 혈흔에서 수면제로 쓰이는 ‘졸피뎀’ 성분이 검출됐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약독물 검출 여부에 대해 재감정 요청한 결과, 이 같은 회신을 받았다.
앞서 경찰은 국과수에 피해자 혈흔에 대한 약독물검사를 의뢰했지만, ‘혈액이 미량이어서 아무런 반응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전달받았다. 하지만, 정밀 재감정을 통해 수면제 성분이 들어 있음을 확인했다.
경찰은 졸피뎀 성분이 들어있는 수면제는 고씨 거주지인 충북 청주시 소재 한 병원에서 처방받은 것이고, 구매처는 인근 약국이라고 밝혔다.
그 동안 키 160㎝, 몸무게 50㎏가량인 고씨가 체력과 체격에서 차이가 나는 키 180㎝, 몸무게 80㎏인 전 남편을 어떻게 혼자서 제압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됐었다.
경찰은 전 남편 혈흔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됨에 따라 고씨가 전 남편 살해 당시 구체적으로 어떤 수법을 이용했는지 확인한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또 국과수와 경찰 내 혈흔 형태 분석 전문가 6명을 투입해 범행 장소로 이용된 펜션 내에 남아있는 비산 혈흔 행태를 분석해 고씨가 전 남편 A씨를 여러 차례 흉기로 찌른 정황을 찾았다.
고씨는 경찰 조사에서 “우발적으로 한 두 차례 흉기를 휘둘렀는데, 남편이 죽어있었다”며 줄곧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하고 있다.
◆범행 후 청소도구 등 환불
고씨는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그동안 확인한 고유정의 행적을 보면 고씨는 지난달 18일 배편으로 본인의 차를 갖고 제주에 들어왔으며 22일 제주 시내 한 마트에서 흉기와 청소도구를 구매했다.
이어 지난달 25일 전 남편을 만나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 입실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고씨는 다음날 시신을 훼손·분리한 뒤 하루 지나 훼손한 시신을 종이상자와 스티로폼 상자 등에 담아 펜션에서 퇴실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씨는 같은 달 28일 오후 3시쯤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청소도구 등을 환불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이는 고씨가 같은달 22일 해당 마트에서 구입한 물품 중 일부다.
당시 고씨는 흉기 한 점과 표백제, 고무장갑, 청소도구 등을 다량 구입해 범행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은 고씨가 범행에 사용한 도구 중 남은 물품을 환불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씨가 다시 마트에 나타날 당시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으며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고씨는 같은 날 오후 8시 30분 출항하는 완도행 여객선을 타고 제주를 빠져나갔다.
경찰은 여객선 CCTV로 고씨가 해당 여객선에서 피해자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봉지를 7분간 바다에 버리는 모습을 포착했다.
고씨는 완도항에 내린 후 곧바로 경기도 김포시 소재 가족의 아파트로 향했으며, 지난달 29일 새벽 도착했다.
고씨는 이틀간 김포에서 시신을 또다시 훼손하고 유기한 뒤 31일 주거지인 충북 청주시로 이동했다.
경찰은 충북 청주시의 고씨 자택 인근에서 범행에 사용한 흉기 등을 발견했다.
경찰은 앞서 지난 5일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과 뼛조각을 확보하고, 감식을 의뢰했다.
피해자 모발 감식 결과는 1주일, 뼈 골수 유전자 검사는 3주가량 걸릴 예정이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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