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고유정(36)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N씨가 변호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수도 있음을 자신의 공식 블로그를 통해 13일 밝혔다.
변호사 N씨는 공지문에서 "제가 변호인으로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형사사건에 관하여 많은 국민적 관심과 비판적 여론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언론에서 지금까지 보도된 바와 달리 그 사건에는 안타까운 진실이 있다"고 했다.
이어 "저는 변호사로서 그 사명을 다하여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고 그 속에서 이 사건의 진실이 외면받지 않도록 성실히 제 직무를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만일 이런 제 업무를 방해하려는 어떤 불법적인 행위(명예훼손, 모욕,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나 시도가 있다면 법률적 대응을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고유정 변호사 "이번 사건엔 안타까운 진실이 있다"
고씨의 정식 공판이 시작되면서 고씨 측의 변론 전략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2일 제주지법 형사2부 심리로 열린 첫 정식 공판에서 고씨의 변호인은 전 남편의 변태적 성욕을 강조하며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피해자 측에 돌렸다.
전 남편이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범행임을 증명하기 위해 변호인이 내세운 전략이다.
하지만 실제로 증명할 수 없는 일방적인 진술로 고인을 욕보였다는 비판과 함께 '넘지 말아야 할 선 넘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변호인의 변론이 '불난 집에 부채질 격'으로 여론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고씨 변호인은 왜 이같은 변론 전략을 짰을까.
실제로 미국에서 이와 비슷한 변론 사례가 있었다.
남자친구를 흉기로 잔인하게 난자하고 총까지 쏴 숨지게 한 미국의 엽기 살인범 조디 아리아스(당시 27)의 재판이었다.
아리아스는 지난 2008년 6월 남자친구 트래비스 알렉산더의 집에서 이별을 통보한 알렉산더를 흉기로 27차례 찌르고 총을 쏜 뒤 목까지 베는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
당시 이 사건은 외설적인 관계, 1급 살인, 거짓말 등 온갖 선정적인 요소를 갖춘 살인사건으로 미국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특히 아리아스의 재판은 연일 방송과 신문의 주요 뉴스로 보도됐다.
수많은 사람이 이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몰려들면서 재판이 열릴 때마다 긴 줄이 형성되다보니 심지어 재판 방청권 '암표'까지 등장했다.
수사당국은 재판에서 아리아스가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귄 남자친구에 대한 분노와 질투심에 휩싸여 계획적인 살인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리아스는 알렉산더가 성관계 직후 자신을 공격해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 됐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아리아스는 알렉산더가 자신을 들어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치자 그가 총을 보관해 둔 옷장으로 뛰어가 총을 꺼내 '정당방위'로 발사했지만, 알렉산더를 찌른 기억은 없다는 이상한 주장을 펼쳤다.
이후 총을 사막에 내다버리고 의심을 피하기 위해 알리바이를 만드는 등 범죄 흔적을 지우려 노력했던 점은 인정했다.
◆증명할 수 없는 일방적 진술로 고인 욕보였다는 비난 쏟아져
'전 남편이 성폭행하려고 해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살해하게 된 것'이라며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한 고씨의 주장과 매우 비슷하다.
고씨 역시 검찰조사에서 '기억이 파편화돼 일체의 진술을 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도 전 남편을 살해한 뒤 혈흔을 청소하고, 두 차례에 걸쳐 시신을 훼손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변호인의 변론까지 매우 유사한 성격을 띤다.
아리아스의 변호인은 피해자인 알렉산더가 피고인을 성적으로 학대했음을 재판에서 주장했다.
그는 알렉산더가 피고인에게 변태적 성행위를 요구했으며 이외에도 둘 사이에 벌어진 충격적인 성관계와 피고인의 불행한 과거를 법정에서 자세하게 진술하는 등 아리아스가 학대받은 여성이라고 변론했다.
변호인이 재판에서 내세운 심리학자는 아리아스가 사건 후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과 해리성 기억상실증에 시달리고 있어 살인 당일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고씨의 변호인 역시 재판에서 전 남편의 변태적 성욕을 강조하며 피고인을 성폭행하려던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범행임을 재차 강조했다.
변호인은 재판에서 혼전 순결과 부부간 이뤄졌던 사적이고 은밀한 성관계 내용, 전 남편의 무리한 성관계 요구 등을 모두 거론하면서 순종적인 고씨와 달리 강씨는 면접교섭 당일에도 성욕을 참지 못하고 성폭행을 시도한 사람으로 매도했다.
아이에게 하나밖에 남지 않은 친엄마라는 점을 내세워 동정여론을 이끌어내려 하기도 했다.
◆아이 친엄마라는 점 내세워 동정여론 유도?
고씨과 여러모로 비슷하게 진행된 아리아스의 재판 결과는 어떠했을까.
검찰도 재판에서 심리학자를 내세워 아이아스에게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이나 기억상실증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가 학대받았다는 증거도 찾을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아리아스가 보이는 정체성 불안과 미성숙함으로 미뤄 그가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진단한 결과를 내보였다.
이밖에도 계획적 살인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여러 가지 증거를 내세웠다.
아리아스는 결국 가석방 가능성을 없앤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아리아스는 재판 선고 전까지 배심원들에게 자신이 독서클럽 활동을 시작했고, 암환자를 돕기 위한 가발만들기 사업에 머리카락을 기증했다며 사형을 면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한 미국 변호사는 "고씨의 변호인은 조디 아리아스 재판을 참고해 변론 전략을 짰던 것으로 보인다"며 "대중들이 혹할 수 있는 성적인 내용을 들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면서 동정여론을 이끌어내려 했던 전략이 두 사건의 변론 진행에 있어 매우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씨의 변호인은 다음 재판에서 평소 피해자의 변태적인 성행위 등을 주장하면서 계속해서 여론을 선동할 것으로 보인다"며 고씨 측의 주장과 우발적 살인과의 인과관계를 얼마나 허물 수 있을 지가 재판의 주요 쟁점이자 검찰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 남편 건강 챙기는 현모양처 이미지 심어주려고 했다?
고씨는 피해자 유족이 제기한 친권상실 소송에 대해서도 법원에 기각해 달라고 요구한 상태라고 뉴스1은 전했다.
계획범행의 증거인 범행 수법 및 도구 검색도 요목조목 반박했다. 특정 단어를 검색한게 아니라 연관검색어를 통해 검색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졸피뎀 검색은 '버닝썬 사건'이나 가수 승리 사건 등을 검색하면서 연관 검색어로 자연스럽게 검색한 것이지 범행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니코틴 치사량도 담배를 즐겨 피우는 현 남편 때문에 검색한 것이며 '뼈 무게'나 '뼈 강도' 등의 검색도 현 남편에게 보양식으로 감자탕을 해주려고 알아보다가 연관 검색어로 잠깐 검색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역시 검색 목적을 부인하는 동시에 현 남편의 건강을 챙기는 현모양처 이미지를 심어주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검찰이 공소사실에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서 공격 당했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피해자가 저항해 고씨가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된 논리라고 반박했다.
피해자 혈흔에서 검출된 졸피뎀을 두고도 공방이 벌어졌다.
변호인은 기존 졸피뎀이 검출된 이불에 묻은 혈흔은 피해자가 아닌 고씨의 것이라 주장했지만, 검찰은 추가 감정결과와 함께 이불 이외 담요에서도 피해자 혈흔이 검출됐다고 반박했다.
고씨가 범행 후 CCTV에 동선이 노출되는 등 허술했던 부분도 계획범행이 아니라는 방증으로 내세웠다.
이윤호 동국대 범죄학 교수는 뉴스1에 "고씨가 형량을 줄이기 위해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고 원인을 피해자로 몰아가고자 하는 전략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아이가 엄마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진술은 양육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뼈 관련 검색에 대한 진술은 계획 살해를 부인하기 위한 옹색한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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