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1만원 파는 게 평소에 10만원 파는 거랑 같아. 여기 주변 장사꾼들 보면 일수대출 받는 사람들도 많다고. 나도 한 달 이자 12∼13% 주고 돈 빌려. 여기 사람들이 뭐라 하는지 알아? 이 상태가 지속하면 조만간 다들 강도가 될 거래. 당장 쌀도 못 사고 가스도 못 사는데….”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신발 장사를 하는 60대 A씨는 최근 상황을 이야기하며 ‘너무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다’는 말을 반복했다. 연체가 있고 신용이 나쁜 그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자영업자·소상공인 정책금융지원은 그림의 떡이다. 그는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 사채를 쓸 수밖에 없다”며 “하루라도 장사를 안 하면 부도가 날 것”이라고 좌절했다.
코로나19가 실물경제를 덮치자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 중 하나인 취약 서민계층과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위기에 처했다. 임대료 등을 내려고 돈 빌릴 곳을 찾지만 저신용 연체자들을 반기는 곳은 사실상 없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코로나19 관련 지원대책의 하나로 저신용 취약계층을 위해 연 1.5% 금리로 1000만원을 대출해주지만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원리금 연체가 없어야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신용등급 8등급 이하인 사람이 247만명으로 이 중 185만명(75%)이 연체 중이거나 연체기록이 있다. 원리금 연체가 있는 저신용 취약계층은 정부와 대부업체 어디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 1금융권, 2금융권은 꿈도 못 꾸기에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려 보지만 법정 최고금리가 27.9%에서 24%로 인하된 이후 심사를 강화해 이들을 쉬이 받아주지 않는다.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8년 말 17조3000억원이던 대부업 대출잔액은 지난해 6월 16조7000억원으로 감소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대출심사가 깐깐해져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경제가 대충격을 받은 만큼, 대부업체의 심사가 더욱 촘촘해져 대부업 대출잔액이 15조원 대로 쪼그라들 것으로 추정된다.
제도권 내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의 외면을 받은 이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단 하나, 불법 사금융 시장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에서 대출을 거절당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원과 빌린 액수는 최대 13만명, 2조3000억원이다. 올해는 불법 사금융에 더 많이 손을 내밀 게 뻔하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는 “대출 승인 심사 시 일률적 기준을 내세우면 (저신용 취약계층이) 혜택을 보기 어렵다는 문제가 생긴다”며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는 악성 인원은 제외해야겠지만 연체가 있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이 나빠진 이들에게는 대출을 해주는 게 좋다”고 밝혔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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