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에서 여성 2명을 잇따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연쇄살인범’ 최신종(31)이 18일 자신의 첫 재판에서 강도·강간 혐의를 부인했다. 수사 단계에서 모든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상반된 주장이다. 최씨는 재판이 끝난 뒤 퇴정하면서는 방청석 쪽을 노려보기도 했다.
최씨의 변호인은 이날 전북 전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김유랑) 심리로 열린 이 사건 첫 공판기일에 “살인과 시신유기 혐의는 인정하지만, 강도와 강간 혐의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피고인은 강간 혐의에 대해 합의로 이뤄진 성관계이며, 금팔찌와 48만원은 차용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최씨가 자신에게 적용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 등 살인), 강도살인, 시신유기 등 혐의 일체를 인정했다고 했으나 재판에서 말을 바꾼 것이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최씨가 도박의 일종인 ‘사설 외환 차익거래’(FX마진거래)로 손실을 보게 되자 아내의 친구인 A(34·여)씨에게 돈을 빌리려고 했다”고 공소사실 설명을 시작했다. FX마진거래는 두 개 통화를 동시에 사고팔며 환차익을 노리는 거래로, 금융당국의 인가를 얻은 금융회사를 통해서만 투자할 수 있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배달대행업체를 운영한 뒤 FX마진거래에 손을 댔고, 손실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검찰은 “최씨는 직원들 수당에 이어 사업체 본사로 보낼 돈마저 잃게 되자 금품을 빼앗고 강간할 마음을 먹고서 ‘부탁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A씨를 불러냈다”며 “자신의 승용차에 A씨를 태운 뒤 완주군 이서면 한 다리 밑으로 데려가주먹으로 때린 뒤 강간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씨는 A씨가 반항하자 욕설을 하며 계좌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위협할 것처럼 행동했다”면서 “피해자 계좌에 있던 48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A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검찰은 부연했다.
최씨가 랜덤 채팅앱으로 만난 부산 실종자 B(29·여)씨를 살해한 사건은 검찰이 추가 기소할 예정이다. 이날 재판은 검찰과 피고인 측이 증거를 제출한 뒤 증인 신문 등 일정을 잡고 마무리됐다. 재판 진행 시간은 20여분에 불과했다.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최씨는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재판장의 말에 짧게 대답만 했다. 그는 재판 내내 변호인 쪽을 바라볼 뿐, 별다른 진술은 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뒤 최씨는 방청석 쪽을 노려보듯 쳐다보고는 법정을 빠져나갔다.
다음 재판은 내달 14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재판장은 “다음 기일에 추가 기소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증인 신문은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최씨는 지난 4월15일 0시쯤 아내의 친구인 A씨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운 뒤 다리 밑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하고, 금팔찌 1개와 48만원을 빼앗은 뒤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같은날 오후 6시 30분쯤 전북 임실군과 진안군의 경계가 맞닿은 한 하천 인근에 A씨의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의 실종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지난 19일 최씨를 긴급체포했다.
최씨는 지난 4월18일에는 랜덤 채팅앱으로 만난 B씨를 부산에서 전주로 유인한 뒤 살해 후 시신을 과수원에 유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B씨 역시 최씨의 차에 올랐다가 실종됐고, 이후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CC)TV에는 최씨의 차 안에서 두 사람이 다투다 최씨가 B씨의 목을 조르는 듯한 장면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를 부인하던 최씨는 두 번째 피해 여성의 시신까지 발견되자 결국 검찰에서 입을 열었다. 최씨는 A씨와 B씨 모두 “나를 무시하고 훈계하는 듯한 말투 때문에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최씨는 B씨를 살해할 당시 약물을 복용해 범행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해 검찰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1989년생인 최씨는 학창시절에는 전도유망한 씨름 선수였으나, 성인이 된 이후 강간과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질러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다. 그는 최근에는 전주에서 배달대행 업체를 운영하면서 수천만원의 도박빚(FX마진거래로 인한 손실)을 져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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