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전국에서 수해가 발생한 가운데 여야가 11일 이틀째 책임 공방을 이어갔다.
이명박(MB) 정부를 상징하는 '4대강 사업'과 현 정부가 추진하는 '태양광 사업'이 중심에 놓였다. 야권에선 친이명박계 인사들이, 여당에선 차기 당대표 후보들이 가세했다.
미래통합당은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 발전 사업 '난개발'을 주장하고 있다. 피해가 더 커지지 않은 것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덕분이라는 주장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급기야 MB계 인사들은 "자신있으면 지금 즉시 4대강 보(洑)를 파괴하라"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4대강 사업으로 생긴 보가 물 흐름을 방해해 둑이 터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댐 관리와 4대강 보의 영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과 함께 깊이 있는 조사와 평가를 당부한다"고 말해, 이를 정치권 의제로 소환했다.
논쟁의 핵심은 4대강 사업으로 생긴 보가 빗물을 효과적으로 가둬 홍수 피해를 줄였는지, 아니면 저수 기능 부족으로 오히려 피해를 늘렸는지 여부다.
민주당에서는 대권주자인 이낙연 당대표 후보가 4대강 사업을 작심 비판했다. 그는 이날 오전 충북 음성 수해복구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과거 4대강 보를 설치한 것이 잘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를 지금 논쟁 중이지만 적어도 일의 순서가 잘못됐음이 틀림없다"고 했다.
4대강 사업 전체에 대한 평가는 실증적 연구 결과가 나온 뒤로 미루더라도, 소하천 범람을 개선하는 정비가 먼저 이뤄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풀이된다. 그는 "계단을 물청소하면 아래부터 물청소하며 올라가는 것처럼, 소하천을 두고 밑(본류)에만 (정비를) 했다"며 "위에서부터 해야 했는데 이걸 못했고, (그러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전국의 소하천이나 소천은 논바닥보다 높아서 비만 오면 하천에 물이 넘어간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형 뉴딜' 정책에 소하천 정비 사업을 넣어야 한다면서 "연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도 했다.
김부겸 당대표 후보는 입장문에서 "제발 때와 장소를 좀 가리자"며 재난 한가운데 벌어진 여야의 정쟁을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통합당의 주장은 사실도 아니다. 섬진강뿐 아니라 4대강 사업을 하고 보를 설치한 영산강과 낙동강에서도 제방이 터졌다"고 지적했다.
태양광 사업 책임론에 대해서는 "지금 산사태로 인명 피해가 난 곳에 가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냐"며 "처참한 현장을 보고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밖에 안 나느냐"고 비판했다. 산지 태양광 발전시설 가운데 산사태 피해가 발생한 지역이 전체 산사태 피해의 1.1%에 그쳤다는 산림청 통계를 인용하며 "침소봉대하더라도 좀 상식선에서 하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홍수 피해가 한창인 와중에 과거 책임론을 벗어나기 위해 이런 식의 4대강 논쟁을 벌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4대강 사업의 폐해는 이미 온갖 자료와 연구로 증명됐다"고 지적했다.
범여권인 열린민주당의 김진애 원내대표도 "이번에 영산강에서 가장 (홍수 예방) 효과를 본 것은 저류지"라며 "물이 갑자기 많이 올 때 담아두는 효과가 있는 저류지를 만들어야지, 보를 통해 물의 흐름을 막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에 통합당이 4대강 사업의 효용성을 다시 들고나온 것은 통합당의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꼬집었다.
야권에서는 친이계 인사들이 4대강 사업의 효용성을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다.
권성동 무소속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께서 4대강 보와 홍수의 상관관계를 조사하라면서 은근히 4대강 사업을 디스했다"며 "애매모호하게 홍수의 원인이 4대강 보에 있는 것처럼 호도하지 말고 가뭄과 홍수 예방에 자신 있으면 지금 즉시 4대강 보를 파괴하시라"고 적었다.
이재오 전 의원도 페이스북에 "4대강 보는 물흐름을 방해하는 기능이 아니라 물이 많이 흐르면 저절로 수문이 열려 물을 흘려보내는 자동 조절 기능을 갖추고 있다"며 "부동산 정책 실패를 4대강으로 호도하지 말라"고 적었다.
태양광 사업에 대한 비판과 국정조사 요구도 이어졌다. 야권은 이번 수해 가운데 산사태와 관련해 '태양광 난개발'을 주장하며 국조 추진의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태양광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태양광을 산기슭 같은 데 아무 데나 설치하니까"라며 "비가 많이 쏟아질 때 무너지고, 산사태가 더 나는 등 어려운 상황을 겹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전날 비대위 회의에서도 "홍수가 지나가고 산사태에 대한 전반적인 검증을 해보면, 태양광 발전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판명이 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 집중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다 태양광과 연관이 돼 있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관련 사례들이 꽤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과관계를 감사를 해보자는 이야기고 만약에 태양광 시설 때문에 산사태가 벌어졌다면 이건 명백하게 인재의 성격이 강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여야는 이번 집중호우 사태를 복구하기 위한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12일 오전 긴급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추경 편성 여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후보는 "(재난)지원금 지급은 옛날 것이 유지되고 있다. '침수 100만원' 이런 것은 고쳐야 한다"며 "만약 우리가 저런 기준을 상향하면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지자체가 돈을 다 써버린 상황에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어려움도 지속할 것"이라며 "추경에 대해 재정전문가들이 많은 비판을 하는 상황이지만 수해를 위한 피해지원이 필요하면 추경도 반대하지는 않겠다"라고 했다.
다만 "추경을 한다고 해도 그동안 (재정) 운영에 잘못은 검토해 봐야 한다"며 "민주당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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