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고 걷고… 행동하다보면 ‘살아있음’ 느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삶이 멈췄다. 익숙했던 일상이 정지상태에 빠져버렸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 싹 잊어버린 것처럼 느껴져서 당황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왜 살아야 하지?”
스트레스 속에서도 자기 마음과 대화하며 깨달음에 이르면 다행이지만, 이게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우울하고 불안할 때 자신과 인생에 대한 생각만 붙들고 있으면 “난 왜 행복하지 않을까? 내 삶은 왜 만족스럽지 않은 걸까?”라는 부정적 의문에서 못 벗어난다. 생각은 정서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울은 우울한 생각을 끌어당기고, 불안하면 불안한 생각에만 초점 모아지는 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반응이다.
우울증 환자에게 10분 동안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해 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후회와 자기 비난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괴로울 때 자기 마음을 분석하는 일에만 매달려서는 활기를 얻을 수 없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창립자 칼 래믈리는 이렇게 말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 보이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저 과도한 자기 성찰의 희생양 같더군요.”
뜨거운 여름, 낮에 꼼짝도 하기 싫다고 한다. 맞다. 너무 덥다. 햇빛이 아프다. 운동하라고, 움직이라고 권유하기가 조심스럽다. “우울증에는 운동이 약이에요.”라고 환자들에게 말해 왔는데 요즘 흔히 돌아오는 반응은 “마스크 때문에 덥고 답답해서 못해요.”이다. 꼰대 같은 태도일 수도 있겠지만, 신뢰가 쌓인 환자에게는 자극을 주기 위해 “저는 일 년 넘게 마스크 쓰고 계속 뛰었더니 점점 익숙해지더라고요.”라고 말해준다. 치료관계가 무르익지 않은 환자가 운동을 꺼리면 “그렇군요.” 하며 수긍하고 넘어간다.
약으로 우울증상이 좋아질 수는 있지만 쾌유가 되려면 신체적 활력이 되살아나야 한다. 몸을 쓰고 부담이 적은 활동부터 서서히 해나가야 우울증이 완치된다. 무기력에서 벗어나 생기를 되찾으려면 현실을 온 몸으로 느끼며 기쁨을 쌓아가야 한다.
삶의 의미도 생각이 아니라 느낌에서 비롯된다. 인생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행동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있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각은 모두 질병이다.”
나도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섭다. 땀이 많은 나는 더위에 유독 약하다. 네모난 진료실에서 하루 10시간씩 KF-94 마스크를 쓰고 상담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지쳐 버린 늦은 저녁에 삶의 의미 따윈 생각조차 못한다. 그렇다고 “아, 내 삶이 너무 답답해!”라고 낙담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생각은 접고 무조건 뛴다. 폭염을 피해 늦은 밤 인왕산에 올라 서울의 차가운 불빛들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이른 아침 인적 없는 대무위도와 소무위도의 바닷길을 걸을 땐 “인생이란 뭘까?”라고 사유하지 않아도 “그래, 지금 내가 살아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더위가 싫다면 갤러리에 가 보라. 우선 시원하다. 나란 사람이 이전보다 약간 더 고상해진 것 같아진다. 명화를 보면 뇌에 전기 스파크가 일고 정신이 번쩍 든다.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늘 아래를 지나는 선선한 바람을 살갗으로 느끼고, 주황색으로 물든 저녁하늘의 노을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을 사랑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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