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빈티지 옥천’ 구읍에서 만나는 핑크빛 찬란한 봄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입력 : 2022-04-16 10:00:00 수정 : 2022-04-15 09:20:2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꽃도 사람도 이쁘게...봄/교동저수지∼소정리 37번 국도따라 환상적인 벚꽃터널/옥천전통문화체험관 한옥 머물며 고즈넉한 봄 즐겨/화인산림욕장 하늘로 쭉쭉 뻗은 근육질 메타세쿼이아 장관 

옥천 구읍 벚꽃길

어찌 이리 예쁠까. 서른살 넘은 굵직한 몸통에서 우아하게 기지개 켠 가지마다 흐드러진 연분홍 꽃망울. 물 위로 커다랗게 휜 나뭇가지들이 아름다운 꽃 터널 만들고 연인들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꽃비 맞으며 걷는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했나보다. 수줍게 손잡은걸 보니. 꽃도 예쁘고 사람은 더 예쁘다. ‘빈티지 옥천’에 봄 오니 물빛도 낯빛도 온통 핑크다.

구읍 벚꽃길

◆꽃비 맞으며 구읍 벚꽃길 걸어요

 

충북 옥천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겐 봄마다 떠오르는 정겨운 고향마을 벚꽃이지만 여행자들에게 구읍 벚꽃길은 아직 생소하다. 그래도 봄 되면 연인들 물어물어 찾아온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서울 여의도 윤중로나 경남 진해와는 달리 둘이 서로 손잡고 호젓하게 걷기 좋아서다.

 

옥천읍 교동저수지를 찾아가면 된다. 구읍 벚꽃길은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군북면 국원리를 지나 소정리까지 옛 37번 국도를 따라 약 8㎞가량 이어지는 금강 향수 100리길의 출발구간이기도 하다. 중간 지점부터 금강 줄기가 보여 드라이브하기에 좋다. 더구나 흩날리는 벚꽃비를 만끽할 수 있어 봄날 라이딩 코스로도 인기다.

구읍 벚꽃길

구읍 벚꽃길 입구에 섰다. 귓불을 간지럽히는 바람. 푸른하늘에서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살. 지저귀는 새 소리. 물 위로 반짝반짝 부서지는 윤슬. 나무데크길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령 30년을 훌쩍 넘은 왕벚나무들. 연인들의 속삭이는 목소리까지. 대충 카메라 셔터를 눌러도 화보가 되는 풍경이다. 방금 사랑에 빠진 것 마냥, 나도 모르게 두근두근 진자운동을 시작한 심장을 가까스로 제어하고 벛꽃길 따라 걷는다.

구읍 벚꽃길
구읍 벚꽃길

구읍 벚꽃길의 남다른 매력은 무엇보다 차도와 산책로가 구분되고 넓은 저수지까지 들러리를 섰다는 점. 더구나 신기하게 벚꽃 가지들이 대부분 물쪽으로 가지를 잔뜩 뻗어 환상적인 벚꽃터널을 만들어 놓았다.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 ‘좋아요’ 마구 눌러질 봄날 풍경이다. 다정하게 팔짱 낀 연인들, 손잡은 가족들 모두 오랜만에 만끽하는 벚꽃에 화사한 미소가 얼굴 가득 묻어난다. 벚꽃길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데크길도 연인들이 ‘사랑의 온도’를 올리며 호젓하게 걷기 좋다. 저 멀리 물빛에 비치는 벚꽃 풍경은 그냥 수채화다.

이지당
이지당

벚꽃에 흠뻑 취한 몸 이끌고 차로 10분 거리의 군북면 이백리 옥천 이지당(二止堂)으로 향한다.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 서당이다. 찾는 이 거의 없어 더 고즈넉한 벚꽃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이지당 마당에 서자 금강으로 이어지는 서화천이 굽이굽이 휘어지며 아름다운 물길을 만들었고 건너편 벚꽃이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렸다. 이토록 멋진 풍경을 놓고 과연 공부가 됐을까. 술 한잔 걸치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기기 더 좋아 보인다. 서화천 건너편으로 가면 목조 6칸의 강당과 누각으로 꾸민 이지당의 고풍스런 모습과 서화천, 벚꽃이 어우러진 근사한 풍경이 제대로 들어온다.

이지당
옥천향교

◆한옥에서 즐기는 ‘빈티지 옥천’의 봄

 

옥천 구읍은 조선시대 옥천군 관아가 있던 곳. 1917년 군청이 옥천읍 삼양리로 이전하고 경부선 옥천역을 중심으로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자연스럽게 구읍으로 불리게 됐다. 덕분에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특히 구읍 벚꽃길 주변에 정지용 생가와 지용문학관, 옥천향교, 옥주사마소, 육영수 생가 등 주요 여행지가 오밀조밀 모여 있어 천천히 걸으면서 봄꽃의 화사함과 마을의 예스러움이 어우러진 풍경을 즐기는 매력이 크다.

 

풍경이 뛰어나니 맛집도 모여 있다. 교동저수지에서 소정리마을회관까지 노포들이 즐비하며 황태구이, 염소전골, 생선국수, 곤드레나물밥, 칼국수, 민물매운탕, 백숙, 보리밥정식 등 소박하면서 담백한 옥천의 맛을 즐길 수 있다.

풍미당 물쫄면

마침 점심때라 줄 서서 먹는다는 옥천읍 중앙로 풍미당을 찾았다. 1978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44년이다. 노포의 비결은 단출한 메뉴. 이곳도 물쫄면, 비빔쫄면, 수제비, 김밥이 전부다. 인기메뉴는 7000원 짜리 물쫄면. 비빔쫄면은 먹어봤어도 물쫄면은 처음이라 호기심이 잔뜩 생긴다. 육수에 노란색 면이 담겼고 삶은 메추리알, 다진 돼지고기와 김을 고명으로 얹은 물쫄면의 비주얼이 근사하다.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자 최상급 멸치에서 우려낸 깊은 육수 맛이 짜릿하게 온몸으로 흐른다. 면맛이 끝내준다. 치자 가루를 넣어 매일 직접 만드는데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김밥 한 줄 곁들여 국물을 싹 비우니 소박한 옥천의 맛에 힘을 얻어 다시 길을 나선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하룻밤 묵으며 옥천의 풍류와 멋을 여유 있게 즐기려면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의 강소형 잠재관광지인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이 제격이다. 유구한 역사와 풍요로운 자연 환경 속에서 피어난 옥천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맥을 잇기 위해 2020년 문을 연 비교적 신상 여행지. 전통체험관, 전시시설, 숙박시설, 커뮤니티센터를 갖춰 고즈넉하면서도 쾌적하게 한옥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한복대여

사방이 한옥으로 둘러싸인 숙박동 고시산관 툇마루에 앉는다. 정갈한 한옥 창호 격자무늬와 푸른 하늘에서 작은 마당으로 쏟아지는 봄햇살은 복잡한 도시의 삶에서 찌든 머릿속을 차분하게 만들어 마음에 고요한 평화를 안긴다. 4인실과 8인실로 구성된 한옥은 가족 단위로 즐기기 좋다. 특히 규방·낙화·염색·짚풀·한지·목공예 등 다양한 공예와 예절다도, 전통음악을 배우고 전통주와 궁중·사찰·약선음식을 직접 만들어 보는 8∼12주의 정규강좌가 마련됐다. 2시간∼2시간30분짜리 일일체험도 가능하다. 옥천관 대청마루에서는 나라별 전통음식을, 보청마루에서는 이웃나라들의 전통의상과 생활문화를 체험하고 야외마당에선 고리 던지기, 투호, 윷놀이 등 다양한 전통놀이도 즐길 수 있다. 물론 예쁜 한옥도 빌려준다.

조헌 묘소
조헌 묘소 자목련
조헌 묘소 자목련

◆가슴 뻥 뚫어주는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이지당에서 잠시 스친 조헌 선생의 일생은 차로 15분 거리의 안남면 도농리 조헌 묘소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처음엔 옛사람 묘소에 뭐 볼 것 있을까 여겼지만 실제 가보니 많다. 조헌 신도비 옆 커다란 하얀 목련은 예고편에 불과하고 묘소 입구부터 운치 있는 한옥과 멋지게 휘어지며 자란 소나무가 어우러지는 풍경에 탄성이 쏟아진다.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영모재와 조헌 선생을 모신 사당 표충사로도 충분히 운치가 넘치는데 그 사이 두 그루 거대한 자목련이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려 빈티지 옥천 여행의 정점을 이룬다.

화인산림욕장 메타세쿼이아

차로 10분 거리에 ‘메타세쿼이아 천국’ 화인산림욕장이 있어 함께 묶어 여행하기 좋다. 사람이 만들었지만 인공적인 요소는 철저하게 배제한 자연 그대로의 숲이다. 입구부터 시작된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등산로를 따라 끝이 없이 등장한다. 들판에 심어진 메타세쿼이아는 전남 담양이 으뜸이라면 산속 메타세쿼이아는 화인산림욕장이 전국 최고다. 거대한 몸통은 어른이 두 팔로 감싸 안아도 모자라고 잘 다듬어진 근육질같은 줄기가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올라간 풍경이 장관이다. 잎이 아직 나지 않은 때라 세밀화 같은 잔가지가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는 풍경도 즐길 수 있다.

화인산림욕장 메타세쿼이아

한 사업가가 고향마을 임야를 사들인 뒤 주말마다 나무를 심으며 50년 넘게 가꿔 이런 멋진 풍경을 만들었다니 대단한 열정에 감사한다. 정상으로 갈수록 니끼다송, 낙엽송, 잣나무, 두충나무, 적송, 참나무, 구상나무, 편백나무, 삼나무도 만난다. 산의 곡선을 따라 4㎞ 남짓 되는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지난 가을 떨어진 갈색잎이 등산로에 카펫처럼 깔려 걷는 내내 어머니 품처럼 푹신푹신하다. 자연의 숨결이 온몸에 봄의 생명력을 불어 넣으니 내딛는 걸음마다 생기가 넘친다. 


옥천=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은 '매력적인 미소'
  • 한지은 '매력적인 미소'
  • 공효진 '공블리 미소'
  • 이하늬 '아름다운 미소'
  • 송혜교 '부드러운 카리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