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강타한 가운데 이로 인한 경기침체 및 성장부진 등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각국 정부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정부 또한 물가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고 부문별로 공공 부문이 솔선수범하는 한편 대중교통 이용 지원 등 총력에 나섰다. 다른 한편에서는 각국 중앙은행별로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이 한창이다. ‘퍼펙트 스톰’을 막기 위한 차원이지만, 경제 취약계층이나 신흥국일수록 이러한 변화에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임금은 오르지 않는 가운데 갚을 빚(원리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투자한 자산은 하락하는 등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유류세, 법정 최고한도 37%까지 인하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모두 리터당 2100원을 넘기며 국민 부담이 가중되자 정부가 법 개정 없이 쓸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카드인 ‘유류세 법정 최대한도(37%) 인하’를 꺼내 들었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물가 인상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 공공요금 동결을 원칙으로 하되, 전기·가스 요금은 인상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경제 관련 부처들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잡고 민생 부담을 완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윤석열정부 경제부처 수장들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첫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대책들을 발표했다.
회의를 주재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유가에 따른 서민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한 조치를 긴급히 시행하고자 한다”면서 “유류세 인하 폭을 7월부터 연말까지 법상 허용된 최대한도인 37%까지 확대해 석유류 판매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휘발유·경유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 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특단의 조치로 평가된다. 이미 정부는 휘발유·경유·LPG부탄 유류세에 대해 역대 최대 수준인 30% 인하 조치를 시행 중인데, 유류세 탄력세율을 조정하는 ‘최후의 수단’까지 써 유류세 인하 폭을 더 늘린다는 것이다. 탄력세율 조정을 통한 유류세 인하 폭 37% 적용은 시행령 개정 사안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휘발유는 리터당 57원, 경유는 리터당 38원(부가가치세 포함)이 추가 인하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국제유가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이어 갈 것이라는 관측이 잇따르는 만큼 유류세 인하 효과가 금방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또 고유가에 따른 서민 부담 경감과 대중교통 이용 촉진을 위해 하반기 대중교통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현행 40%에서 80%로 높이고,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지급 기준가격은 7월부터 9월까지 리터당 1750원에서 1700원으로 50원 인하하기로 했다.
정부는 최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생산원가 부담이 높아진 전기와 가스요금에 대해선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추 부총리는 “철도·우편·상하수도 등 중앙·지방 공공요금은 하반기에 동결을 원칙으로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이라면서도 “전기·가스 요금은 뼈를 깎는 자구노력 등을 통해 인상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요금 인상에는 착수하되 인상 폭을 최대한 낮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농축수산물의 물가 안정을 위해선 가격 상승 품목 중심으로 매일 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비축물자 방출·긴급 수입 등 수급 관리와 가격 할인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추 부총리는 “앞으로도 물가 안정에 즉각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과제들은 계속해서 추가 발굴하고 신속히 집행해 민생의 어려움을 덜어드리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회의는 종전의 경제관계장관회의가 비상경제장관회의로 개편된 뒤 처음 열린 것으로, 경제장관들은 각 부처 책임 아래 소관 분야 중점 품목에 대한 가격·수급 동향을 매일 점검하고, 불안 조짐이 포착되는 즉시 대응하기로 뜻을 모았다.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개최된 비상경제장관회의에는 정부가 당장 가용할 수 있는 물가대책이 총망라돼 제시됐다. 기존의 경제장관회의를 비상경제장관회의로 개편한 정부는 휴일에 첫 회의를 열 정도로 물가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폭을 최대(37%)로 확대하고, 감자 등 비축물량을 방출키로 하는 등 유가와 농축수산물 가격을 안정화하는 데 주력키로 했다. 아울러 도로통행료 등 공공부문 요금을 동결하거나 전기요금 등의 인상은 최소화하기로 했다. 민간에 임금 인상 억제 등 고통 분담을 요구하기 전에 공공부문이 먼저 ‘솔선수범’해 물가 안정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 악재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이런 단기 대책 외에 환율 안정 및 서민 지원 방안 등 장기적으로 물가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정책도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류세 최대로 낮추고, 농축수산물은 물량 확대에 방점
1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물가를 잡기 위한 정부의 이번 대책은 유가와 농축수산물, 공공요금 부문에 집중됐다.
유류세를 법정 최대한도인 37%까지 7월부터 연말까지 인하하고, 경유 유가연동보조금을 한시적(7∼9월)으로 확대하는 방안은 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카드로 지목돼 왔다. 법 개정 없이 시행령과 고시 개정을 통해 즉각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류세 추가 인하로 정부는 ℓ당 10㎞로 하루 40㎞를 휘발유 차량으로 주행하는 사람의 경우 유류세 인하 전보다 월 3만6000원 정도, 인하 폭을 낮추기 전보다 월 7000원 정도 유류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유가연동보조금 지원 기준단가는 ℓ당 1750원에서 1700원으로 인하된다. 만약 경유가격이 ℓ당 2050원이라면 기준단가가 1750원인 현재의 경우 정부 보조금은 차액의 절반인 ℓ당 150원이다. 그런데 이번에 기준가격이 50원 더 인하됨에 따라 이 경우 보조금은 175원으로 확대된다.
대중교통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확대는 시내·시외버스 등의 이용을 촉진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총급여의 25%를 초과한 카드 사용금액에 대해 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인데, 정부는 특히 대중교통 사용분에 대한 공제율을 기존 40%에서 80%로 높였다. 가령 총급여의 25%를 초과한 신용카드 사용금액 중 대중교통에 지출한 금액이 상·하반기에 각각 80만원이라면 대중교통 소득공제액은 기존 64만원에서 96만원까지 높아진다. 이 방안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사안으로 7월부터 연말까지 적용된다. 정부는 이와 함께 유가 인상에 따른 항공료 인상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국내선 항공유에 8월부터 올해 말까지 0%의 할당관세를 적용키로 했다.
농축수산물 급등세를 낮추기 위한 대책은 물량을 늘리는 것에 방점이 찍혔다. 이달 말에 양파 1282t을 도매시장에 출하하는 한편 수입 감자 368t을 가락시장에 방출하고, 부족한 농산물의 경우 긴급 수입하는 식이다. 정부는 아울러 지난달 말 발표한 민생안정대책에 포함된 돼지고기 할당관세 물량(5만t)을 신속히 수입하고 필요할 경우 물량을 5만t 더 늘릴 방침이다. 아울러 명태 가격 안정을 위해 원료 구매 자금 융자(200억원)가 이뤄지고 생협 등 31개 판매처와 연계해 수산물 가격 할인행사가 최대 40% 범위 내에서 실시된다.
◆공공부문 요금 동결로 ‘솔선수범’… “외환시장 안정 방안 필요”
전기·가스 요금 인상폭은 최소화하되 철도·우편·상하수도 요금 동결 기조는 계속된다. 우선 전기요금을 비롯해 에너지 관련 요금과 관련해 정부는 “(공기업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 등을 통해 인상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특히 전기요금과 관련해 한국전력의 경영 효율화, 출자지분 매각 등을 가격 인상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오는 21일 전기요금 인상안이 발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앞서 한전은 지난 16일 산자부와 기재부에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신청내역을 제출하면서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을 최대 폭(3원)으로 요구한 바 있다.
정부는 아울러 도로통행료, 철도요금, 우편요금, 광역상수도 요금, 자동차검사 수수료 등은 동결하고, 상하수도 요금과 쓰레기봉투료 등을 포함한 지방 공공요금도 동결 기조 하에 관리키로 했다. 이 같은 공공요금 인상 규제는 민간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기 전에 공공이 먼저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가 안정을 위해선 임금 억제 등 민간의 참여가 필수적인 만큼 공공부문부터 솔선수범하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향후 수개월 동안 5%대 물가 상승률이 예정된 만큼 취약계층을 위한 보다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이번 대책에 취약계층을 위한 방안은 기존에 발표됐던 긴급생활지원금(227만가구, 최대 100만원), 에너지 바우처 외에 별도로 제시되진 않았다. 아울러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자이언트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등 주요국의 급속한 긴축 전환으로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 만큼 외환시장 안정화 방안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비상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하면 보여주기식 대책과 정책 의지 표명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지 않기를 기대한다”면서 “유류세 인하 등은 단기적인 조치로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노력과 통화 및 재정 정책의 공조의지 표명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담대 금리 7% 넘어서… 연말까지 8% 돌파도 기정사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가 최근 7%를 돌파한 데 이어 올해 말까지 8%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석유 파동’ 이후 40여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닥치면서 미국이 28년 만의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나서는 등 주요국 중앙은행별로 기준금리의 인상 폭이 커지고 속도도 빨라지고 있어서다. 8%대 주담대 금리가 현실화할 경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담대 혼합형(고정형) 금리는 지난 17일 기준 연 4.330∼7.140% 수준이다.
지난해 말(3.600∼4.978%)과 비교해 올해 들어 약 6개월 만에 상단이 2.161%포인트 뛰었다. 주담대 고정금리의 산출 근거가 되는 은행채 5년물(AAA·무보증) 금리가 같은 기간 2.259%에서 4.147%로 1.888%포인트 치솟았기 때문이다.
4대 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신규 코픽스 연동)는 현재 연 3.690∼5.681%다. 지난해 말(3.710∼5.070%)과 비교해 약 반년 만에 상단이 0.611%포인트 높아졌다. 신용대출은 3.771∼5.510%의 금리(1등급·1년)가 적용된다. 지난해 말(3.500∼4.720%)과 비교해 하단이 0.271%포인트, 상단이 0.790%포인트 올랐다.
물가 상방 압력이 여전한 만큼 이미 최고 7%를 넘어선 대출금리는 연말까지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 압력과 미국의 자이언트스텝 또는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대응해 연말까지 네 차례(7·8·10·11월) 연속, 총 1.00∼1.25%포인트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이 최초로 빅스텝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장금리와 대출금리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대출금리가 시장에서 전망하는 기준금리 상승 폭(1.00∼1.25%포인트)만큼만 올라도 연말 8%를 넘어선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주담대 혼합형 금리(고정금리)의 지표금리인 은행채 5년물(AAA 무보증) 금리 상승 폭이 한은 기준금리 인상 폭을 웃돌고 있다”며 “국내 은행 대출자산이 대부분 변동금리에 집중된 상태라 향후 은행이 전략적으로 혼합형 금리만 크게 낮춰 수요를 유인할 가능성도 크지 않은 만큼, 연내 8%를 돌파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는 우대금리를 적용하기 전 기준이기 때문에 실제 모든 대출자의 체감 금리가 연내 8%에 이르지는 않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올해 들어 줄어든 만큼, 은행들이 영업 확대 차원에서 가산금리 조정 등을 통해 기준금리 인상의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대출자의 채무상환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며 부실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만큼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은행들이 계속 대출 문턱을 낮출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반론도 있다.
신규 대출의 문턱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에 초저금리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빚투’(대출로 투자)에 나선 대출자들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임금 및 근로소득은 제자리인 가운데 원리금 상환 부담은 커지고, 투자했던 자산 가치는 하락하는 등 ‘엎친 데 덮친 격’ 상황이 가중되는 셈이다.
A은행이 한 코스피 상장 기업에 근무하는 K씨(신용등급 3등급)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K씨는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 2020년 6월17일 총 5억7000만원(주담대 4억7000만원·신용대출 1억원)을 대출받았다. 이 대출자에게 초기 6개월간 적용된 금리는 주담대 2.69%, 신용대출 2.70%였다. 이에 따른 연 환산 원리금 상환액은 2554만5952원(월 212만8829원)이었다. 하지만 2년 뒤 현재 주담대와 신용대출 금리는 각 3.61%, 4.41%로 높아졌다. 연 원리금 상환액은 2991만8223원으로 최초 대출 시점보다 17.1%, 월 납입액도 249만3194원으로 36만4365원 늘었다.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가 연말까지 추가로 1.0%포인트 오르고 이 상승분이 대출에 반영된다면 올해 12월에 적용되는 주담대 금리는 4.61%, 신용
대출 금리는 5.41%에 이른다. 이 경우 연·월 상환액은 3394만7544원, 282만8962원으로 2년 반 전보다 32.9%(840만1591원, 70만133원) 불어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