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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다 오르는데 쌀값만 폭락… 35년 농사 인생 포기해야 하나”

입력 : 2022-09-10 12:30:29 수정 : 2022-09-10 22: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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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 “인건비 감당하기 힘든데 태풍까지”
“정부의 미온적 대처가 폭락 부추겨”
쌀값 대책 마련·농업예산 확충 촉구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에서 농민 이준경(61)씨가 수확하기 전 촬영한 벼 전경. 이씨는 올해 풍년이라면서도 30% 이상 매출 폭락을 예상했다. 이씨 제공

 

“배추는 한 포기에 2만원까지 올랐는데, 쌀값은 작년에 비해 반 토막이 났어요. 포대(40㎏)당 2~3만원이 떨어졌어요. 지난해에는 8만원대에 매매했는데 올해 추석 직전에는 5만원 초반까지 떨어집디다. 35년 넘게 쌀로 밥 벌어먹고 살면서 이렇게까지 손에 남는 게 없는 적은 처음이에요. 빚만 늘어서 이제 그만 포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어요.”

 

전례 없는 쌀값 폭락에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져만 가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에 인건비 폭등과 각종 농자재값 인상, 부채 이자율까지 늘자 이중, 삼중고를 토로하며 농사를 그만 둘 생각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 농민들은 이 추세라면 수확기 이후 농자재 구매 비용과 부채 상환 시기가 도래했을 때 수많은 이들이 빚더미에 나앉아 생존권을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토로했다. 농민들은 정부의 미온적 대처가 이 같은 사태를 키웠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에서 30년 넘게 벼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준경(61)씨는 올해 풍년이 예상되는데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전했다. 이씨는 “수확기가 되면 원래 쌀값이 올라가기 마련인데, 반대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추석 전에 상차림용으로 많이 출하되는 조생종 햅쌀의 경우 공급량이 적다 보니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데 30% 넘게 폭락한 가격에 판매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렇게 되면 추석 이후 본격화되는 중만생종 벼 판매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농민들 다수가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사상 최대치 폭락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쌀값만 떨어지고 다른 물가는 모두 올라 더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비료값, 농약값 등은 배로 올랐고, 인건비는 말할 것도 없다”면서 “가뜩이나 일할 사람도 없는데 일당 10만원을 15만원 이상 올려도 사람이 안 오니 계속 올려 부를 수밖에 없다. 아주 죽겠다”고 했다.

 

이씨는 “인건비까지 주고 나면 정말 손에 남는 게 없고 마이너스가 예상된다”며 “몇 십 년 지은 농사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주요 농민 단체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인근에서 농가 경영 불안 해소 대책 마련 촉구 농민 총궐기를 마치고 정부 대책에 항의하며 길가에 쌀을 버리고 있다. 뉴시스

 

최근 태풍 힌남노 피해까지 더해져 농민들 시름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전남 신안군에서 수도작을 하는 최영철(59)씨는 태풍 예보 전 7만평 규모의 벼를 지키려 애썼지만 도복 피해를 피해갈 수 없었다. 최씨는 “추수를 한 달 앞두고 다 영글어가던 자식 같은 놈들이었는데, 10% 이상 못 쓰게 돼버렸다”며 “태풍이 지나가고 햇빛이 나니 바람 맞은 부분이 잘 보인다. 벼가 상처 입고, 알곡들이 하얗게 바래버렸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 일단 육안으로 보이는 게 10% 정도지 실제 수확량은 더 안 좋고, 가공했을 때는 등급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씨 외에도 많은 농민이 수확을 앞두고 태풍 피해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힌남노로 전남 지역 농작물 피해는 도복 522㏊, 낙과 578㏊, 침수 24㏊로 집계됐다.

 

국내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 하락 폭을 기록하고 있는데 비해 지난달 말 기준 쌀 재고량은 48만6000t으로 지난해 28만t에 비해 70%가량 늘어났다.

 

농민들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파산할 지경이라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그간 세 차례에 걸쳐 쌀 37만t을 시장 격리 조치했는데, 시기를 놓치고 최저가 입찰과 역공매라는 잘못된 방식으로 오히려 가격 폭락만 가져왔다고 농민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생계를 제쳐두고 서울역으로 상경해 농민 총궐기 대회를 열고 “중장기적 쌀 산업 안정을 위한 특단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삼각지역 방면으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항의하는 의미로 트럭에 실린 볍씨를 거리에 뿌리기도 했다.

 

참가자 9000여명은 “3차례 시장격리 조치에도 8월15일자 산지 쌀값은 20㎏에 4만2522원으로 작년 대비 23.6% 폭락했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필수 농기자재를 지원하고 쌀 시장격리 대책을 신속히 수립해 농가경영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쌀값 보장과 양곡관리법 개정, 구곡 전량 시장격리, 농업예산 확충, 농산물 수입 즉각 중단 등을 요구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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