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산림 해법은
반세기 ‘벌채는 곧 환경파괴’ 인식
녹화에만 치중해 목재활용은 뒷전
韓 나무수확량 0.5%, 자급률 16%
나무를 쓰는 것이 ‘숲 순환’의 첫걸음
加·日 등 산림 선진국 목재자급률 높아
산림보호·활용 공존하는 관리 돋보여
산림청, 2021년 노령화 숲 세대교체 추진
환경단체 “산림파괴 정책” 비판 목소리
1년생∼100년된 나무 공존하는 숲 조성
지난달 27일 강원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의 경제림 육성단지.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나무를 다 베어버려 휑하게 빈 구역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드론이 고도를 높이자 이내 푸릇푸릇 자라고 있는 어린나무 구역, 무성히 자라 벌채를 앞두고 있는 큰 나무 구역 등 각기 다른 구역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영월 국유림관리소 관계자는 “지금은 나무를 베어내 비어 있는 저 땅에 내년이면 새로운 나무가 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빈 땅은 불량 활엽수들을 베어낸 조림예정지역으로 적합한 수종을 선정해 식재할 예정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산림 문제는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드론이 낮게, 높게 각각 전송한 영상처럼 전혀 다르게 보인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나무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산림 전략은 황폐한 산을 푸르게 만드는 데 치중해 왔다. 하지만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드론이 높은 하늘에서 전송한 영상처럼 더 넓은 시각에서 장기적으로 산림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과거에는 녹화에만 치중하느라 목재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나무들도 심고 보호하는 데 힘썼지만, 탄소중립 시대에는 숲의 탄소흡수 능력을 높이고 친환경 소재인 목재를 사용하기 위해 우리의 산림을 순환시켜야 한다. 나이가 들어 병충해와 재난에 취약해지고 탄소흡수량이 떨어진 나무는 베고, 이용 가치가 높은 새 나무를 심어 탄소흡수 효율을 높여야 하며, 동시에 베어낸 나무를 건축·생활·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 낭비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산림 경영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산림 무조건 보호 정답 아냐… “벌채 늘리되, 관리 체계화”
세계일보가 ‘탄소중립 시대, 나무를 다시 생각한다’ 시리즈를 통해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두 달에 걸쳐 돌아본 오스트리아, 캐나다, 일본처럼 여러 산림 선진국은 나무를 보호하는 동시에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는 데 산림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나무는 베어져 목재로 사용될 때도 탄소를 품고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 철근, 콘크리트 등을 사용할 때보다 ‘친환경적’이라고 이들 국가에서 만난 산림 관련 공무원, 산업 관계자,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말했다. 오스트리아 연방 농림지역수자원부 파울 에가르트너는 수도 빈의 녹화 사업을 소개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24층 목조 빌딩인 호호비엔나의 경우 탄소가 건물에 저장된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는 수도 빈에 작은 산림을 조성한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에가르트너는 “이 건물은 약 75% 정도가 나무로 이뤄져 있는데,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했다면 약 2800t의 이산화탄소를 더 배출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역시 산림 경영은 곧 환경 파괴라는 패러다임을 벗어나 나무를 심고 가꾸면서도, 동시에 자원으로서 적절히 개발하는 선진국형 산림 경영 관리체계 도입을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지만 발걸음은 더디다. 지난해 초 산림청은 산림부문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하고 2050년까지 3400만t 탄소흡수 목표를 공개했다. 노령화한 산림 연령을 낮추고 30억그루 나무를 새로 심겠다는 내용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많은 환경·시민 단체가 이에 대해 탄소중립을 빙자한 벌목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탄소흡수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30년 이상 된 노령목들을 모두 베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결국 산림을 파괴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후 산림청은 전문가 그룹이 산림분야 탄소흡수량 등을 과학적으로 검증해 내놓은 보고서를 바탕으로 환경단체들과 공론화를 거쳐 합의를 이뤄냈고 지난해 10월 탄소중립 수정안을 발표했다. 산림 순환 경영의 골격은 유지하면서 벌채를 최소화하고 산림 보전과 복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산림 연령대가 특정 수령에 몰려 있다는 문제와 일정 부분 벌채를 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고, 1년생 나무부터 100년 이상 된 나무까지 고르게 자라는 건강한 숲을 만들기로 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환경계의 지적을 받아들여 벌채량을 한꺼번에 늘리기보다 간벌목(다른 나무의 성장을 돕기 위해 베어내는 나무), 피해목(병충해, 산불 등 피해가 발생한 나무)을 우선 수집해 활용하고 이후 목재 공급량을 조금씩 늘려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장 적극적으로 산림 연령을 낮출 수는 없지만, 탄소중립에 보탬이 되면서 생태계도 지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한 것만으로도 노후 산림 개선을 위한 일보 전진을 한 셈이다.
현재 한국 산림의 3분의 1가량이 경제림으로 분류돼 있는데, 이곳에서 산림 순환 경영이 이뤄지고, 보호해야 할 숲은 철저히 가꾸고 보호한다.
경제림의 나무라고 모두 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국은 계곡 주변이나 야생동물 서식지역 등 생태 환경을 보존할 필요성이 있는 곳에 일정 규모 이상의 나무를 잔존시켜 놓는 ‘친환경 벌채’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공론화 당시 ‘산림부문탄소중립민관협의회’에 환경단체 소속으로 참여했던 생명의숲 유영민 사무처장은 “합의 내용이나 목표치 자체는 문제라고 할 수 없지만 세부 실행 계획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목표치를 각 지역 시·군·구 지방자치단체에 분배하고 모니터링이 되어야 하는데 이 지자체들이 실질적인 탄소흡수량 등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내놓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유 사무처장은 특히 사유림의 경우 관리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지자체 의지와 전문가 양성, 민간 인식 전환 필요
나무를 베는 것만큼 중요한 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다. 일본처럼 공공건축물에 국산 목재 이용을 의무화하는 등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법률이나 조례를 제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강석구 충남대 환경소재공학과 교수는 “벌채 허가를 내고 도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모두 지자체의 몫이기 때문에 정부 산림청은 물론, 지자체가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또 목재를 적절히 활용하는 법, 가공하는 법, 남김없이 쓰는 법 등에 대한 대학과 민간 차원의 연구개발(R&D)도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CLT(구조용 접성판)와 매스체임버(콘크리트와 강철을 대체해 대형 목구조 건물을 만드는 시스템) 등 선진 목재 건축 기법에 대한 교육과 관련 기술 개발, 목재 주택 건설을 위한 전문가 양성 등도 빠질 수 없는 과제다. 국산 목재로 건물이나 집을 지으려 해도 목조 건축을 잘 아는 건축사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산림청의 한 관계자는 “일전에 평창올림픽 경기장 일부를 국산 목재를 사용해 짓자는 의견이 나와 추진한 적이 있는데 결국은 무산됐다”면서 “표면적 이유는 경제성이었지만, 실은 그만한 목재를 다루고 안전하게 설계·건축할 수 있는 전문가가 국내에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 및 홍보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소비자가 산림 순환과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해 이해하면 목재친화적 분위기에 거부감이나 죄책감을 갖지 않을 수 있고, 국산 목재 이용도 늘릴 수 있다.
일본 미야자키대학의 후지모토 요시야스 교육학부 교수는 “일본에도 벌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뿌리 깊이 있었고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이런 인식은 어릴 적부터 자리 잡는 것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목재·산림 순환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어린이를 교육하는 교사들을 위한 교육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전 국민이 ‘우리 강산 푸르게’를 실천해온 터라 급작스러운 인식의 전환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숲을 가꾸고 보호만 할 것인지, 나무를 자원으로 활용하고 순환시킬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만 제공돼도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탄소중립 시대, 나무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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