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K팝을 비롯한 한류 열풍 등 여러 측면에서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부르는 것이 그렇게 어색하지 않은 요즈음이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산적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해외입양 문제다. 전세계 자살률 1위, 전세계 최저출산율 1위 등의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여전히 매년 수백명의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보내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한국은 226명의 아이를 해외로 입양보냈다. 콜롬비아(387명)와 우크라이나(277명)에 이은 세계 3위였다. ‘아동수출국’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가운데 1980년에 해외입양이 정점에 달했던 것의 반작용으로 40여년이 지난 현재, 성인이 된 해외입양인들이 뿌리를 찾겠다며 물밀듯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뿌리찾기에 실패해 자살하고, 홀로 버티다가 고독사하기도 하며, 정부와 친생가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선진국이라는 한국에서 왜 이런 일이 아직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해외입양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해외입양인 당사자는 물론, 변호사, 학자, 시민단체 등 다양한 차원의 노력이 진행 중이지만 호전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여러 전문가 중에서 인권단체 국경너머인권의 이경은 대표는 국제법의 전문가로서 해외입양 사안을 조망하고 있다. 해외입양이 세계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국제법학자의 시각에서 조목조목 파헤치는 셈이다. 보건복지부부터 외교부, 법무부, 법원, 경찰 등 정부의 대표 시스템이 동원되고 미국의 이민법과 난민법 등과 국내 여러 법제가 그에 맞게 정비되며 어떻게 해외입양 시스템을 지원했는지에 대해 논문을 발간하는 한편, 국제저널에 활발한 기고 활동도 이어왔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국경너머인권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 왜 해외입양을 말하는지, 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지, 앞으로 갈 길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정부 차원에서 조사에 착수한 스웨덴·칠레… 국제사회의 변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2016년부터 해외입양에 대한 기사를 써왔는데, 아직도 실마리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 같다.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각종 법제가 정비되기는 했지만, 해외입양인들이 뿌리를 찾기 힘든 현실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 사안을 국제법을 비롯한 여러 전문적인 시각에서 살펴보신 대표님과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선 뉴스인 만큼 최근 소식 먼저 여쭙겠다. 지난해 말 발간하신 저서 ‘The Global Orphan Adoption System : South Korea’s Impact on Its Origin and Development’와 관련해 최근 유럽에 북투어를 다녀오셨다. 그 이야기로 시작하면 좋겠다.
“우선 한 달 반 정도 일정으로 스웨덴과 덴마크, 네덜란드 세 곳을 오가며 북투어를 진행했다.”
―전 세계적으로 국제입양이 많이 진행된 곳이 대략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다.
“그렇다. 2차대전 직후에는 유럽의 아이들을 미국으로 보내기 위한 과정, 한국전쟁 후에는 우리나라 아이들을 미국과 유럽 전역으로 보내는 과정이 국제입양의 가장 큰 줄기라고 볼 수 있다.”
―유럽 국가 중에서도 특별히 세 나라를 대상지로 삼으신 이유가 있는지.
“스웨덴은 정부 차원에서 국제입양인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 과정이 진행 중이다. 덴마크에는 선희 엥겔스토프(한국명 : 신선희, 영화 ‘포겟 미 낫’ 제작) 감독이, 네덜란드에는 카라 보스(해외입양인 최초로 친자소송 제기)가 살고 있다는 것도 이유가 됐다. 스톡홀롬과 코펜하겐, 헤이그 이 세 도시가 나라는 다르지만, 서울 에서 경기도 오가는 것처럼 매우 가깝기도 하다.”
―스웨덴은 어떤 상황이기에 정부 차원의 조사가 진행 중인가.
“스웨덴에서는 입양인의 정신건강에 대한 보고서가 나온다.”
―저도 몇 년 전 기사를 쓸 때도 스웨덴의 관련 보고서를 인용한 적이 있다. 정신건강과 함께 약물중독, 범죄율 등 여러 항목에 대한 조사 결과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고서가 단발적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나오나보다.
“결과를 살펴보면 국제입양인의 정신건강 상황이 난민보다도 훨씬 나쁘다는 것이다. 자살률 또한 마찬가지이고.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뿐 아니라 인도, 브라질,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등 입양인들의 출신국에서 소송 등 문제 제기도 많이 했다.”
―하긴, 그러한 요구 없이 정부 차원의 보고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거기에서 더 요구가 있었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으니 공식 조사까지 이뤄진 것이겠지.”
―칠레에서도 입양인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학술 차원 등 여러 활동이 진행 중이라고 듣긴 했다.
“칠레는 칠레 정부 차원에서 국제입양인 관련 사안을 피노체트 과거사 문제 차원에서 보는 것 같다. 칠레 정부의 조사단이 스웨덴에 와서 경찰당국과 의회 등을 만나고 갔다.
입양수용국 중에서 절대적인 숫자는 미국이 압도적인 1위이지만, 비율로는 스웨덴이 1위다. 전체 인구 대비 해외입양인 비중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자국 내에서는 입양 대상 아동이 안 나오니까.”
―북유럽 쪽은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백인이라 들었는데, 스웨덴이 그렇게까지 많을 줄은 몰랐다.
“국제입양에서 수요는 항상 공급보다 크다.”
―아…. 통계상으로 실제 그렇다. 2018년까지 국가별 해외입양 송출 통계를 보니 수치상으로 미국이 11만2239명이고, 다음으로 프랑스 1만1196명, 스웨덴 9683명, 덴마크 8792명, 노르웨이 6497명, 네덜란드 4099명 등이다. 인구 비율로 보면 스웨덴이 가장 많을 것 같긴 하다.
“네덜란드 쪽 전문가들과 함께 ‘Facing the past’이라는 책 집필 작업을 마무리 중이다. 엘비라 로이블 마스트리히트대 교수, 데이비드 M 스몰린 샘포드대 교수 등 10명 내외 공저로 참여한다. 이쪽 학자들은 국제입양을 국제적인 범죄로 규정한다. 이 국제 범죄에 연루된 자들을 법적으로 처벌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제입양의 불법적으로 진행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가 등에 대한 논의가 오가고 있다.”
―대표님도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오시기도 했다.
“나는 국제입양에 대한 케이스를 건건으로 가져오지 말고, 과거와 현재의 제도 시스템을 봐야 한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고아 및 아동 시스템, orphan 시스템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제언하는 거다. 조사를 하려면 당연히 송출국과 수용국 양쪽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워낙 한국의 지분이 크니….
“스웨덴 당국자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니 표정이 싹 바뀌더라. 입양을 받은 수십개 나라를 상대로 그 과정을 모두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민간기관들이 싼 똥을 정부가 치운다는 푸념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그걸 정부들이 다 지원한 건 맞는 거니까.”
―유럽에서는 EU차원에서 조사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는 것 같다.
“전세계적으로 국제입양에 참여한 국가는 100여 개국이다. 수용국은 2차대전 끝난 뒤. 직후는 유럽 아동이 미국으로 간 거였지만, 본격적인 건 한국전쟁. 홀트가 짠 국제 시스템을 통해 대륙을 넘나드는 국제입양으로 발전했다. 초기에는 루마니아 등 동유럽에서도 많이 입양을 보냈다. 차우셰스쿠 정권 무너지던 시기다. 유럽 안에서도 그러한 일이 벌어진 거다. 1990년대 후반쯤이었는데, 동유럽 사람들이 대거 EU로 유입되면서 EU에 편입되기 위해 법적 여러 기준을 맞췄다. 차우셰스쿠 정권 붕괴할 때 미국에서 그때 발생한 고아며 입양 대상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엄청나게 갔다. 브로커들이 개입하면서 고아원에서 시골 병원을 거쳐 국제입양되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홀트를 건드리는 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유럽 내에서 그 정도인데, 한국에 대한 조사로 확대되면 하…. 한국은 아직도 헤이그협약 안 들어가고 있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 자국의 아동을 국제입양 보낼 일은 없다. ‘그런데 왜 한국의 아동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냐’, ‘국제법 원칙이 잘 지켜지는 거라면, 우리가 안 되면 너희도 안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이러한 질의를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제가 한창 해외입양 이슈 다룰 때, 중앙입양원(현 아동권리보장원) 등 정부에서 진행하는 해외입양 관련 세미나나 행사에 가보면 항상 의아했던 게 행사장 뒷편이나 구석에 백인들이 여럿 서 있었다. 자리가 없는데도 서서 끝까지 행사 진행되는 것을 살펴봤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그들이 대사관 관계자들이고 행사에서 나온 내용을 비롯한 해외입양과 관련한 한국의 동향을 면밀히 살펴 자국에 보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매년 수백명이 해외입양되는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니까.
“그게 다 정보보고가 된다. 아직도 한국의 아이가 필요하니까.”
―북투어 행사에 대한 현지 반응이 어떠했는지도 궁금하다.
“청중들이 대부분 해외입양이었는데, 국제입양에 대해 일어나는 곳, 공식적인 조사활동이 활발하게 얼어나는 곳은 이곳뿐이라는 반응이 우선 기억난다.”
―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의 조사가 문제가 아니라, 헤이그협약 비준도 못 하는데 참 요원하다.
“이거(국제입양 문제)는 과거가 아니다. 형제복지원은 지금은 없다. 그래서 지금 과거사 조사하고 마음대로 팰 수 있는 거다. 홀트는 여전히 못 건드린다. 해외에는 홀트 같은 거대 권력기관이 없다. 국내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홀트가 얼마나 파워풀한지를 모른다.”
―그렇다. 항상 연예인들 앞세워서 기부, 후원 이뤄지는 것만 생각하지 그들이 전국적으로 보유한 복지타운 등 수십년간 축적해온 게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은 것 같다. 과거에 에스코트 서비스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이 당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양심고백을 하기도 하는데, 그들도 홀트가 이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을 알까 싶다.
―최근 덴마크 출신 해외입양인들이 단체로 진실화해위원회에 인권침해 조사를 신청했다.
“그 일은 진화위가 아니라 감사원이 해야 한다고 본다. 이건 과거가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이다.
KSS(한국사회봉사회·과거 4대 입양기관으로 현재에는 국제입양 업무를 중단한 상황) 같은 곳이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쉽지 않다. 진화위가 과연 홀트를 조사하겠다고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얼마나 홀트 키즈(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된 해외입양인)들이 많나. 그럼에도 내부고발이 안 나온다.”
―덴마크나 네덜란드에서의 행사는 어떠했나.
“덴마크에서 행사를 준비하면서 덴마크어로 마련된 행사 안내문을 봤다. (내가 덴마크어를 모르니) 나에 대한 이야기인데, 내가 읽을 수가 없더라.”
―뿌리 찾겠다며 방한한 입양인들도 그런 심정이었을까.
“그랬을 것 같다. 덴마크에서 할 때는 벨기에 사람(입양인)들이 왔다. 스웨덴은 현지의 한인 입양인들만 왔고. 네덜란드와 덴마크에서는 오픈형으로 진행되고 온라인 중계도 됐다. 그래서 파키스탄 등 다른 나라 출신 입양인들도 참여했고, 질문도 했다.”
―어떠한 이야기가 오갔나.
“아담 크랩서 케이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아담 크랩서가 미국에서 추방됐기 때문에 추방 차원에서만 생각하기 쉬운데, 공소시효를 다퉈볼 수 있는 근거가 됐을 뿐이지, 사실 소송의 쟁점은 한국에서 이뤄진 국제입양의 불법성 자체를 다루는 거다. 아담 크랩서에 국한된 케이스가 아니라 한국의 국제입양 전체에 대한 공방인 거다.
해외입양인들은 각자의 사례를 매우 유니크하다고 생각한다. (도시보다 훨씬 백인 비중이 절대적인)시골 지역으로 가서 혼자 겪었고, 입양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나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글로벌한 이슈이고, 한국에서만 20만명이 나갔고, 제도적으로 어떻게 맞물렸는지를 보면 당연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스웨덴 미팅에서 한 입양인은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입양아를 죽여도 살인이 성립하지 않는 나라
―인터뷰의 도입 정도로 북투어 이야기를 꺼낸 건데, 너무 많은 이야기가 오가버렸다. 원래 드리려 했던 본 질문의 첫 꼭지는 이거였다. 제가 대표님과 알게 된 지도 몇 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저서 등을 통해 밝히시긴 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한 번 질문을 드리고 싶다. 어떻게 해외입양 사안에 처음 뛰어드시게 됐나. 한 번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사실 이 질문은 해외입양인들을 만날 때마다 거의 가장 처음 듣는 질문이다.”
―저도 사실 그렇다. 그래서 그 첫 질문에 대답을 잘해야 그다음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들에게는 그만큼 뿌리, 처음, 시작 이런 게 참 중요한 것 같다.
“자기의 정체성을 알 권리, ‘right to origin’은 유엔인권협약에 명시된 기본권이다. 하지만,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한국인들이 이걸 이해할까.”
―일반인에게야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거니까. 굳이 그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는 문제이긴 하다.
“실제로 입양인들을 만나면서 ‘나는 내 정체성을 다 알고 있나’하는 의문이 들더라. 어떻게 해외입양에 대해 연구하게 됐나 질문 다음으로 ‘어떻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왔나’ 등등 여러 질문을 받으면서 나 또한 과거에 대해 자연스럽게 반추해볼 수밖에 없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혈연, 지연에 대한 결속이 강하다. 하지만 과연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저의 본은 연안이다. 연안 김씨.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황해도에 연안이 있고, 역사적으로 기록이 남은 연안 김씨 인물들이 누구누구 있는지 정도. 하지만, 해외입양인들로부터 나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자연히 추가 의문으로 넘어간다. 연안에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남쪽으로 왔고, 나는 남원에서 태어났는데 왜 부모님은 거기에 살게 됐으며, 다른 친척들은 왜 그곳에 살고 있는지 등등. 그냥 태어났으니, 거기에서 태어난 게 확실하니 그 이상 생각해볼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나 지연을 따질 때도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냥 고향이 같고, 학교가 같으면 그걸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 더 나가봐야 누구 아느냐거나 가봤나 정도.
“선희 감독에게 미역국 끓여주면서 1주일 동안 찬물에 손 담그면 안 돼, 몸 따뜻하게 해야 하고 찬바람 쐬면 안 돼, 얼음 먹으면 안 돼, 이런 얘기 해주면 정말 열심히 받아적더라.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해줬겠나.”
―작은 정보, 사실 하나하나가 그들에겐 너무 소중한 거다.
“미국 등 외국에서는 DNA 분석하고 하면서 굉장히 이슈인데, 우리나라는 의심이 크지 않다. 한 사람의 뿌리, origin이라는 것은 그냥 부모 찾는 게 아니다. 내가 태어난 가정의 스토리, 집안의 스토리, 가족의 스토리, 문화, 혈통, 언어까지 모든 것을 더듬어가는 거다.”
―그것을 알고, 들려주면서 소통해야 하는데.
“이들은 그 하나하나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이 사람들 중에서는 한국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나 재벌 등등 그릇된 이해, 잘못된 이해, 또는 판타지가 있는 경우도 있다.”
―어린 시절 했어야 할 (고국·정체성에 대해 알아가는) 경험을 성인이 돼 하는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 세대는 여자로서 서울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큰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우선 공교육에 편입될 수 있었다. 그 결과를 거쳐 서울대를 나오고, 행정고시 패스하고. 그 당시에는 일반행정 250명 중 여자가 3명이었다. 처음 발령 난 공보처에서 보조직원 빼고는 여직원과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나랏돈으로 유학도 갔다 왔다. 이후에 공보처가 없어지면서 부처 여기저기를 다녔다. 결혼이랑 출산 다 제때하고, 미국 플레처스쿨에 있다가 2002년도에 들어왔는데 그해 말에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다. 인수위 꾸려지면서 청와대에서 일하게 됐다. 그때 한명숙 장관이 인수위의 30%를 무조건 여자로 채우라고 하면서. 캠프에서 올 사람은 정해져 있어서 못 바꾸니 공무원 중에서 여자들을 모아 보낸 상황이었다. 2006년에 홍보수석실에서 해외언론 담당 대변인 2년을 하면서 북 핵실험과 남북정상회담 등 이슈를 겪었다. 이후 미국 오바마 대통령 시절 워싱턴 스팀슨센터에서 1년간 연수를 하고 2008년 크리스마스에 귀국했다. 그러고 나서 보건복지부 발령이 났다.”
―저는 복지부에서 일하실 때 처음 봬서, 가시기 전에 그렇게까지 많은 과정을 거치신 줄은 몰랐다.
“히스토리가 길었는데, 어쨌든 미국 유학도 가고 하면서 스스로 이 정도면 선진국이고, 선진국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교육 차원의 많은 혜택을 받기도 했다. 한국은 내게 그런 것들을 해줄 수 있는 나라였다. 2012년 아동아동복지과장을 맡았는데, 어느 날 뉴스를 봤다. 강서경찰서발로 입양을 가기 위해서 위탁모가 데리고 있던 아이가 있었는데, 목욕시키다가 떨어뜨려서 죽었다더라. 담당 직원 불러서 알아보라고 했더니 홀트 직원이 들어왔다.”
―살인은 아니어도 과실치사 정도 아닐까.
“아니다. 경찰이 들어와서 조사가 진행됐다. 그러면서 과실치사가 안 되는 이유를 알게 됐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만 들어온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일상적으로 오갔다. 출생신고 된 아이들은 입양 못 가니까 그렇게 되는 게 당연했던 거다.”
―아, 출생신고가 안 돼 있으니 사망이나 과실치사가 성립이 안 되는….
“평소에는, 원래는 그냥 죽은 애 데려가서 묻으면 끝나는데, 위탁모가 당황해서 119 부르고 하다가 경찰까지 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사망한 아이들이 얼마나 되느냐 했더니 복지부에서 리포팅된 게 없다더라. 그래서 알아보라고 했더니 뭐가 오긴 왔는데 말도 안 되게 적은 숫자가 왔던 것 같다.
선진국이 문제가 아니라 문명국이 아닌 거다. 한국에서도 비판받을 일이 많긴 하지만, 이런 수준의 사안은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손을 대고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니. 등골에서 땀이 흐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태연했다. 나를 그냥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
―짐작된다. 왜 뭣 모르는 공무원이 하나 나타나서 일을 귀찮게 하나 했을 것 같다. 그들의 세상에서는 그러한 인식과, 그러한 일 처리가 당연했을 테니까.
“당시 장관님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오셔서 이 일을 처음 겪어서 그런지 나랑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랬기 때문에 법개정이 됐던 것 같다.”
―그게 입양특례법이었던 것.
“아동의 입양은 가정법원 판단으로 결정한다는 거다. 사람은 민법과 가족관계등록법에 의해 태어나면 출생신고가 당연한 것인데, 입양기관에 의해 그 과정을 거르고 입양을 보냈었으니까. 이후 입양 문제가 갑자기 출생 문제가 됐다. 법원이 판단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 허위자료를 제출할 수 없으니까. 태어나지 않은 인간에 대해 재판을 할 수 없으니까, 당연히 어떻게든 출생신고를 거치게 된 거다. 허위 신분도 안 되는 거고. 그렇게 아동의 입양이 법원의 결정에 의해 이뤄지도록 하는 법이 대한민국 법제 사상 최초로 도입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시스템은 굳건하다. 2년이 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국경이 봉쇄되고 하늘길도 막히면서 모든 나라에서 해외입양이 줄었는데, 우리나라만 오히려 늘어나면서 세계 3위에 올라섰다.
“스포트라이트 영화 보셨는지?”
―봤다.
“스포트라이트 영화의 실제 이야기가 터질 때 미국 보스턴 현지에서 봤다. 편집장이 외부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사안을 개인 신부의 일탈로 보지 말고, 시스템의 일탈로 접근하도록 했다. 그래서 바티칸도 알았고 가톨릭 시스템 차원에서 덮었다는 걸 증명했다.”
―기자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영화 중 주인공들이 술집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학대하는 데에도 마을이 하나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It takes a village to abuse one.)는 말을 한다. 신부 한 명이 아니라, 가톨릭과 교회, 언론, 사회 전체가 공모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시스템의 문제였던 거다.
“해외입양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하나의 나라 전체가 필요하다(It takes a nation)’. 홀트와 복지부 차원이 아니다. 온 나라가 다 동원된 거다. 병원 시스템과 보육원을 비롯한 아동시스템, 친생부모, 경찰 등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서울시청(지방자치단체), 대법원 법원행정처(출생등록 담당) 등 온갖 국가기관이 모두 동원된다. 정부 차원에서도 외교부에 대사관들, 복지부, 국적으로 가면 법무부도 연관이 된다.”
―베이비박스의 아이가 아동복지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데에도 서울 관악구부터 관악경찰서, 서울시, 서울시립아동병원 등등 여러 단계를 거치고 있다.
“처음에는 고아의 호적을 만드는 거기 때문에 어디에든 흔적이 남을 거라고 봤다. 서울대 법대도서관에 가면 한 해 출생등록된 통계가 있다. 거기 보면 혼인 중 출생, 혼인 외 출생, 기아(미아) 신고가 나온다.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라면 셋을 더하면 한해 전체 출생아 수와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중 우선 기아에 대해 호적 발급해준 숫자가 나온다. 그걸 수십년 걸 뒤졌다.”
―스포트라이트에서 기자들이 신부들의 인사명령 기록을 며칠 동안 뒤진 과정과 비슷했던 것이었다.
“법이 바뀌는 거에 의해 통계표가 조금씩 다르다. 그 숫자를 찾아서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숫자를 복지부에 나오는 연간 국제입양 숫자와 대조해보니 거의 일치하는 거다. 그 순간 너무 끔찍한 거다. 이 나라의 시스템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그 사람들은, 본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고나 있었을까.”
―당시에 브로커들이 입양 보낼 아이들 만들기 위해 그냥 길에 다니는 아이들 납치해서 고아원에 데려다준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걸 알겠다.
“몇 년 더 지나다 보니 기아발견신고가 어느 구에서 들어왔는지가 나온다. 대부분이 입양기관이 소재한 자치구에서 나온 거다. 강남구, 마포구, 서대문구.”
―과거 입양기관들의 기록을 뒤져보면 복지부, 당시 보건사회부였나, 정부부처는 물론 의료계 등에서 상당한 사람들을 영입한 게 나온다. 그들이 일하면서 서대문구, 마포구 등 입양기관이 소재했던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들과 어떻게 일했는지도 기록이 남아있다.
어쨌든 2017년에 나온 논문이 그 내용이었던 것이었다.
“그 논문이 서울대 법대를 통과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서울대 법대 사상 이 주제로 나온 논문은 처음이었으니까. 선행연구가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한국말로 된 것은 법무부의 회의록, 법개정할 때 법제처에서 자료, 내가 뒤진 자료들, 다음은 미국의 이민법. 구글 스칼러에서 ‘korean adoption’ 쳐보면 엄청난 양의 자료가 쏟아져나온다. 그 다음으로, 이 논문지도를 하고 심사를 하는 대한민국에서 그 훌륭하신 교수님들도 이 내용을 처음 들어보신 거다. 국제사법, 민법, 한국의 각종 법을 하신 분들이 처음 들어본 거다. 그래서 통과시키기 위해서 각주가 600개 700개가 달렸다.”
―서울대 법대가 이 논문 통과시킨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본다. 논문 심사한 교수님들이 참 고생 많으셨겠다.
“2017년에 논문 끝내고 나서 앰네스티 사무처장하면서 인터뷰하고, 강연하고 책 쓰고 해도 소용없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국 차원에서는 더이상 안 되겠다는 것. 그래서 해외에서 강연하고 책 내고, 코리아타임즈에 기고도 하고 활동 반경을 넓혔다.
이건 국제입양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과 사회적 배제의 문제다. 이 나라에 똑같이 태어난 자들에게 이 나라가 무슨 일을 했는가. 굳이 한 제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국민,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다.”
◆아동수출국 문제는 결국 최고 자살률, 최저 출생률과 연관
―저도 해외입양 문제를 추적하면서 처음에는 입양 문제, 미혼모 문제, 아동학대 문제 등의 차원에서 접근했다. 그런데 계속 알아볼수록 아동복지 전체 차원의 문제였고, 베이비박스며 최근 이슈가 된 자립준비청년(퇴소청소년), 아동복지시설 문제 등 관련된 모든 사안이 서로 얽혀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전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생률은 가장 낮은 나라다. 왜 이렇게 됐는지, 왜 이런지 그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는 거다.”
―저도 이 정도 기사를 쓰면, 그래도 좀 달라지고 할 줄 알았는데 입양기관의 입지는 여전히 너무도 굳건하다. 대표님도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해외에서까지 활약하시는 데에도 이런 상황이라는 게 참…. 하지만 해외입양인들도 방한해 목소리를 내고,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걸고, 친자확인 소송도 제기하고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진화위에 조사 요청한 것까지 변화가 참 더딘 것 같지만 그래도 뭔가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던 당시에도 그 많은 해외입양인이 시위하고, 자살하고 하면서 요구가 그만큼 누적돼 나타난 결과였다.”
―여기에서 더 하실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다고 보시나.
“그 다음 단계의 활동에 대해 요즈음 고민 중이다.”
―고민에 상당한 시간이 들 것 같기는 하다. 휴식도 좀 취하시면 좋겠다.
“책 쓰던 거랑 마무리할 건 해야지.”
―다음 활동에 대한 방향이 정해지면 다시 또 인터뷰를 요청드리겠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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