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당 가격이 1억원 미만인 드론(무인기)이 전쟁의 핵심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군은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예전처럼 적진을 정찰하는 것 외에 내륙 지역을 공격, 상대방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비대칭 전술에도 투입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호크나 리퍼처럼 크고 비싼 무인기보다 작고 저렴한 보급형 드론의 파괴력, 신속한 제작 및 보급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같은 상황이 한반도에서도 재연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보급형 드론으로 공격을 시도한다면, 한국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한국군은 드론봇(드론+로봇)을 미래 핵심 전력으로 내세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유사시 빠르게 소모될 드론을 신속하게 보충할 방법을 사전에 마련하지 않으면, 군사작전에 지장을 받게 된다.
◆드론 위력과 한계를 함께 보여준 우크라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자 러시아는 드론을 띄워 우크라이나 내륙을 공습했다. 무인 기술을 활용한 ‘충격과 공포’ 전략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9월 하르키우주 쿠피얀스크에서 수거한 드론 잔해를 공개하며 러시아군이 이란산 자폭 드론 ‘샤헤드-136’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샤헤드-136은 수도 키이우와 미콜라이우, 자포리자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지속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이란이 지난해 개발한 샤헤드-136은 무게 200㎏의 자폭 드론이다. 폭발물은 미사일의 10분의 1 수준인 36~50㎏를 탑재한다. 독일 림바흐(Limbach)가 개발, 중국에서 만드는 MD550 엔진을 복제한 것을 사용한다.
위력은 미사일보다 낮지만 대당 가격이 2만 달러(약 2600만원)에 불과하다. 수억~수십억원에 달하는 미사일보다 훨씬 저렴하다. 최대 2500㎞를 날아가 표적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고, 크기가 작아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는다.
속도가 느리고 비행소음이 커서 격추되기 쉽지만, 여러 대를 날리거나 야간에 이륙시키면 요격이 쉽지 않다.
러시아군은 샤헤드-136으로 발전소나 상수도 시설 등 우크라이나의 사회 인프라 시설이나 민간 거주지를 공격하고 있다.
대비태세를 갖춘 군사시설이 아닌 민간 건물이나 주택 등에 명중하면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실제로 샤헤드-136 공습으로 다수의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있고, 전기나 난방공급이 끊어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샤헤드-136을 이용해 겨울 혹한기를 보낼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필수적인 에너지 및 생활 기반 시설을 파괴, 주민들이 고통을 겪게 해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의 단합을 저해하는 심리전을 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안전지대는 없다’는 경고를 발신, 공포감을 확산하는 효과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나치 독일이 영국에 V-1, V-2 미사일을 발사해 런던 시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것과 유사하다.
우크라이나군도 튀르키예에서 제작된 바이락타르 외에 저렴한 보급형 또는 민수용 드론을 정찰과 공격에 다수 투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드론에 폭탄을 장착, 러시아군 전차나 참호를 파괴하는 영상이 온라인에 거의 매일 공개되고 있다.
문제는 저가 보급형 드론의 소모율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값싼 보급형 드론이 대량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5개월간 우크라이나군이 쓴 드론의 90%가 파괴됐으며, 고정익 드론은 평균 6회, 쿼드콥터는 약 3회 정도의 비행에 그쳤다. 목표물을 찾지 못해 실패한 미션이 많았고, 러시아의 전자전이 더해지면서 작전 성공률도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RUSI는 “크고 비싼 드론 몇 대보다, 일회용에 가까운 저렴하고 단순한 보급형 드론 1000개가 필요하다는 뜻”이라며 “드론을 운영할 전문 인력을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기간 내 드론을 빠르게 소모한 것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이란에서 샤헤드-136 등의 드론 2000여대를 들여왔지만, 수개월만에 재고가 부족해졌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즈는 최근 보도에서 “러시아의 자체 무인기 생산 능력이 매우 낮은 수준이고, 이란이 보유한 무인기를 대량 지원하지 않는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인기 공격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반도서 드론 전쟁 벌어질 가능성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착된 드론의 활용은 한반도에서도 재연될 위험이 있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드론을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방송제작, 농업 등에 무인기를 활용하는 것과 더불어 군용 드론 운용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2014~2017년 경기 파주시와 인천 백령도 등에서는 북한이 보낸 무인기가 추락한 채 발견됐다.
이 가운데 2014년 3월 파주에서 발견된 무인기에서는 청와대를 찍은 사진이 나왔다. 2017년 6월 강원 인제군에서 발견된 무인기는 경북 성주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포대를 촬영한 사진이 나오기도 했다. 이를 두고 군의 경계태세와 방공망에 허점이 있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청와대와 사드 포대를 무인기로 찍을 수 있다면, 자폭 드론으로 해당 표적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것처럼 미사일로 군사시설을 공습하고, 보급형 드론으로 내륙 지역 발전소 등 사회 인프라와 민간 거주지를 공격하면 국민의 혼란과 공포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는 체계적인 전쟁 수행을 어렵게 한다.
현재 북한 드론에 전자전을 감행해 요격하는 ‘한국형 재머’ 개발 사업이 2026년 완료를 목표로 LIG 넥스원 주관 하에 진행중이다. 다른 업체들도 드론을 요격하는 장비들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지역을 방어하기는 어렵다. 신궁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이나 천마 지대공미사일 등의 방공체계는 고가의 무기로서 가성비가 낮다.
값싼 무기로 무장한 드론 대응 부대를 유사시에 만드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각 지역에 열상장비와 기관포, 픽업 트럭을 갖춘 ‘드론 사냥부대’를 만들어 운용중이다.
우크라이나에서처럼 드론이 빠르게 소모될 때, 이를 신속하게 보충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러시아는 무인기 생산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이란에 의존해야 했고, 전쟁 수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군은 북한 드론 공격을 저지하면서 자체 운용하는 드론을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평상시에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군용 드론을 제작해서 전력화할 여유가 있다. 하지만 전시에는 우크라이나처럼 민간용 드론도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외국에서 반입한 드론은 백도어(인증 받지 않고 망에 침투하는 수단)를 비롯한 보안 취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제조사의 부인에도 중국산 DJI 드론 사용을 제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보안 취약점을 회피하면서 유사시 군에 드론을 신속하게 보급하려면, 국내 무인기 관련 산업 공급망과 생산 능력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엔진을 비롯한 핵심 장비와 부품을 국내에서 조달하고, 군의 요구를 빠르게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비를 신속하게 체계 통합하는 기술도 확보해야 한다. 맥가이버처럼 임기응변 식의 개조·개발이 가능하도록 기반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옛소련 시절 무인기였던 Tu-141을 순항미사일로 개조, 러시아 내륙의 공군기지를 타격했고, 전쟁중인 상황에서도 10여 종류의 드론을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드론 가격을 낮추는 노력도 필요하다. 보급형 드론을 단기간 내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면 제작비가 저렴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이 교전 당사 모두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힌 첫 번째 전쟁으로 기록됐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드론 운용과정에서 드러난 특징은 한반도에서도 재현될 위험이 있다. 특히 저가의 드론은 남북한이 모두 활발하게 쓰면서 타격과 정찰 등에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호크처럼 고가의 대형 무인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값싼 보급형 드론을 다수 확보하는 사업도 중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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