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트릭 아트로 꾸민 고백익산아트센터 젊은 연인들에 인기/익산근대역사관·나바위성당·원불교 익산성지엔 근대문화 가득
도시는 태어나고 번창하고 쇠퇴한다. 마치 사람의 생과 비슷하다. 전북 익산시 중앙동도 그런 곳 중 하나. 1912년 3월 이리역(익산역)이 개통하고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상전벽해를 이뤘다. 특히 중앙동은 하루에 수만명이 오가는 ‘작은 명동’으로 한때 번영을 누렸지만 신도시 개발로 상인들이 떠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다행히 젊은 예술가들이 낡고 버려진 상점을 공방으로 꾸미고 예쁜 카페들도 들어서면서 중앙동은 ‘익산문화예술의 거리’로 변신했다. 근대와 현대 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 익산으로 떠난다.
◆사랑 고백 핫플레이스 익산아트센터
익산역에서 길 하나를 건너 중앙동 문화예술거리로 들어서면 5분 만에 익산 여행의 ‘핫플레이스’ 고백익산아트센터가 등장한다. 이름처럼 트릭 아트를 활용해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에 자신 없어도 포토그래퍼로 만들어 준다는 입소문이 나 요즘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1층은 선물의 방, 프러포즈, 시간을 초월한 사랑, 사랑의 등기소, D-DAY 인증, 하트 동굴, 몽환의 숲, 기묘한 데이트, 고해성사, 달콤한 기분, 사랑의 감옥, 설렘, 사랑의 시작 등 다양한 테마로 꾸며져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
왜 ‘고백’일까. 익산은 여러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동요로 유명한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 신라 석가탑을 만든 백제의 석공 아사달과 아내 아사녀, 조선 최고 기생 황진이와 문신 소세양의 러브 스토리가 바로 익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다. 덕분에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이 고백익산아트센터를 찾아 무왕과 선화공주처럼 달달하고 러블리한 사진을 찍으며 사랑을 고백한다.
거리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서양의 고전적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익산근대역사관도 만난다. 안으로 들어서자 1920년 이리·익산의 역사가 한눈에 펼쳐진다. 호남선 개통과 함께 도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모습,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수탈, 3·10 만세운동 등 뜨거운 항일운동의 흔적,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를 낳은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 등 역동적인 익산의 역사를 빼곡하게 전한다.
익산근대역사관은 1922년에 건립된 옛 삼산의원(등록문화재 180호)으로 원래 인근에 있었으나 103개로 해체해 현 위치로 옮긴 뒤 다시 조립해 원래 모습대로 복원했다. 총면적 289.26㎡의 2층 건물로 당시로서는 꽤 규모가 컸다. 특히 지금 봐도 건축 양식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이국적인 포치로 꾸민 출입문, 아치형 창문, 그리스 신전처럼 수평의 띠 모양으로 돌출된 화려한 코니스 장식 등으로 꽤 파격적인 건물이었다. 역사관 안에는 삼산의원 건축 때 사용한 천장 마감재와 벽돌, 창문을 볼 수 있다. 특히 녹슬고 벗겨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금고 문짝을 그대로 옮겨와 전시해 놓고 있다.
역사관 2층은 통합 익산시대로 나아가는 1950년 이후의 모습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뿌리가 된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전북대학교 모체 이리농림학교 등 익산의 발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의사 김병수가 의원의 주인이다. 그는 군산과 서울 등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삼산의원을 개원해 열악한 의료 환경에 놓인 가난한 자들을 치료했고 한국전쟁 때는 부산에서 군의관으로 활약했다. 또 광희여숙을 설립해 여성 교육에도 힘쓴 인물이다. 건물 뒤쪽에 복원 이전의 형태가 일부 남아 있다.
◆원불교 익산성지와 나바위 성당에 깃든 근대 역사
원광대학교 맞은편에는 50만평 규모의 원불교 익산성지가 자리 잡고 있다. 원불교는 단군이 교조인 대종교, 최제우가 세운 천도교, 강일순이 세운 증산도와 함께 우리나라의 4대 민족 종교로 꼽힌다. 원불교 창시자인 박중빈 대종사가 건설했으며 이곳에서 18년간 교화를 펴다가 열반에 들었다. 대각전, 본원실, 공회당, 종법실, 금강원, 정신원, 구정원과 소태산 대종사 성탑, 성비, 정산종사 성탑, 영모전 등 각종 사적과 유물, 사료 등이 있고 대종사의 유품 등이 소태산 기념관과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옛 건물들과 고즈넉하고 예쁜 정원을 천천히 산책하며 한 해를 구상하기 좋은 곳이다.
망성면 나바위성당도 익산 근대문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한옥과 서양 건물이 어우러지는 건축미가 빼어나다. 성당은 1906년 순수 한옥 목조 건물로 지어졌고 1916년까지 증축을 거듭하면서 한옥과 서양 건축 양식이 섞이게 됐다. 성당 앞면은 고딕 양식의 3층 수직종탑과 아치형 출입구로 꾸며졌고 지붕과 벽면은 전통 목조 한옥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기와 지붕 아래에는 ‘팔괘’를 상징하는 팔각 채광창이 사방으로 나 있고, 처마 위마다 십자가를 세웠다. 한옥 목조 건물에 기와를 얹었고 회랑도 갖춰 한국적인 건축미가 돋보이는 성당으로 평가된다. 독특한 건축 양식 때문에 1987년 7월에 국가문화재 사적 제318호로 지정됐다.
나바위성당은 조선 현종 11년(1845년) 우리나라 최초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김대건 신부가 처음으로 전도한 곳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성지다. 망성면에는 ‘화산(華山)’으로 불리는 나지막한 산이 있는데 우암 송시열 선생이 너무나 아름다운 산세에 흠뻑 취해 이런 이름을 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아름다운 산 중턱에 나바위성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화산 산줄기 끝자락에 광장처럼 너른 바위가 있어 나바위성당이란 이름을 얻었다.
성당 뒤편으로 화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는다. 정상에 오르면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비를 만난다. 화강석 축대 위에 설치된 순교 기념비는 높이가 4m50㎝로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에 첫발을 내디딘 곳임을 알리기 위해 김 신부가 타고 왔던 ‘라파엘호’와 똑같은 크기로 지어졌다. 순교 기념비 뒤쪽의 망금정에 오르면 금강 황산포가 한눈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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