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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한 그릇 2500원인 중국집에 가봤습니다" [미드나잇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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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4-13 21:00:00 수정 : 2023-06-07 15: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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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동 중국집 다래성…20년째 2500원
달달한 옛날 스타일에 끝맛 ‘매콤’ 매력
기본 짬뽕 3500원…담백·시원한 국물
“손님 만족하면 된다…가격 안 올릴 것”

짜장면.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인 입맛에 따라 진화된, ‘중식’(中食)으로 분류되지만 중국음식이라기에는 애매한, 이런 혼란스런 정체성에도 짜장면이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짜장면은 졸업식, 이삿날처럼 특별한 날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이전 세대에게 짜장면은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는 버튼이다. 그렇다고 평소에 못먹을 만큼 진입장벽이 높은 음식도 아니었다. 예전에 배달음식은 중식과 치킨밖에 없었으니 밥 하기 싫은 날은 짜장면이었다.

 

다래성의 2500원짜리 짜장면. 오이가 올려져 있고 짜장에 건더기는 거의 없다. 양이 적어 웬만한 성인은 곱배기를 시키는 것이 좋겠다. 달큰한 옛날 짜장면 맛에 매콤함이 살짝 감돈다.

그렇게나 친숙했던 짜장면이 최근 몸값이 훅 뛰어올랐다. 전국 짜장면 평균가격은 6361원으로 5년 전보다 무려 27% 올랐다. 탕수육도 안시켰는데 한 가족 식사에 3만∼4만원 가까이 나오는 가격을 볼 때면 내가 알던 그 짜장면이 아닌 것 같은 거리감을 느낀다.

 

저녁시간 TV 생활정보 프로그램을 보면 가격이 저렴한 중국집이 가끔 소개된다. 한 그릇 3000원에 맛도 좋다고 홍보한다. 찾아보면 거의 지방이다. 3000원짜리 짜장면 먹자고 왕복 3만원이 넘는 KTX를 탈 수는 없다.

 

서울에는 없을까.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착한가격업소 홈페이지(goodprice.go.kr)가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면서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는 업체를 선정한다고 소개한다.

 

서울에서 가장 짜장면이 싼 집을 찾아봤다. 한 그릇에 3000원인 가게가 몇 있다. 어디를 가볼까. 그때 눈에 띈 ’2500원’. 김밥 한줄보다 싼 가격에 짜장면이라니. 서울에서 제일 싼 짜장면 맛을 한번 보자. 도전!

 

홀에는 작은 4인용 테이블 6개가 전부다.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나름 90년대 호프집 스타일의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는 있다.

◆양은 적지만 맛은 보통 이상 ‘가성비 갑’

 

‘블랙데이’(4월14일)를 이틀 앞둔 12일 정오, 금천구 독산동 중국집 다래성으로 향했다. 시흥대로변 골목 초입에 위치한 상가 지하에 있는데 광고 풍선이 없었으면 못찾을 뻔했다.

 

입구에서부터 낡은 느낌이 난다. 90년대 호프집 스타일 작은 가게 안엔 테이블이 6개 뿐이었다. 종업원은 없고 사장님 부부 둘이 운영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인데 손님이 없다. 가격이 이렇게 싼데 손님이 없다니 불안해졌다. ‘얼마나 맛이 없으면...’이란 생각을 하며 주문했다. 

 

군만두는 4000원에 10개로 둘이 먹어도 많은 양이다. 사진은 한 개 먹어서 9개. 

짜장면 한 그릇만 먹기엔 가격 때문에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 군만두를 추가했다. 군만두는 4000원이다.

 

짜장면이 나왔다. 오이가 많이 올려진 것은 ‘취저(취향저격)’라 좋았는데 양이 적다. 보통 짜장면의 3분의 2 정도로 어린이 메뉴라고 하면 맞을듯했다. 어쩐지 내 뒤로 줄줄이 들어온 손님들이 죄다 곱빼기(3500원)나 볶음밥을 시키더라.

 

짜장소스에 양파와 고기가 드물게 보인다. 고물가 때문인지, 원래부터 이런 스타일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 비벼도 역시 양이 적다. 크게 한 입 먹었다.

 

‘어, 맛있다?’ 어릴 때 먹었던, 누구나 아는 그 맛이다. 요즘 유행하는 불맛은 없지만 기본에 충실한 달달이 짜장면이다. 전분을 적게 넣었는지 짜장 색이 진하고 점도가 적당했다. 무엇보다 느끼하지 않아서 좋았는데, 달큰한 맛 뒤에 따라오는 미세한 매콤함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고운 고춧가루가 조금 섞여 있다. 

 

몇 달 전 동네에서 시켜 먹은 짜장면의 소스가 걸쭉하고 느끼해서 불쾌감이 들었던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고물가라지만 그런 음식을 7000원을 주고 먹었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런데 겨우 2500원에 이정도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니, 이런 게 바로 ‘혜자(가격에 비해서 양과 질이 우수하다)’ 아닌가.

 

해물은 오징어뿐인 짬뽕. 생물을 직접 손질해 얼렸다가 쓰기 때문에 오징어 귀, 몸통, 다리가 다 들었다. 야채의 씹는 맛이 살아있으며 자극적이지 않고 국물이 깔끔하다. 

양이 적은 게 아쉬워 짬뽕을 또 시켰다. 그사이 주문한 걸 잊었던 군만두가 나왔다. 군만두는 전국 동네 중국집 공통의 그 군만두인데 10개나 됐다. 두 명이 나눠 먹어도 많을 양이었다.

 

빈 짜장면 그릇이 가고 짬뽕이 왔다. 국물 색이 밝고 야채는 살짝만 숨이 죽어 신선해 보였다. 해물은 오징어뿐이었는데 귀도 있고, 몸통도 있고, 다리도 있었다.

 

짬뽕에서 오징어 귀를 본 것이 얼마 만인가. 원산지 표시에 ‘냉동’이라고 적혀있었지만 갓 손질해 넣은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식감이었다. 보통 중국집 짬뽕에 들어가는 칼집 오징어와는 달랐다.

 

면을 먼저 먹어봤다. 슴슴하다. 짜장면을 먹은 뒤여서인지 자극적인 짬뽕 맛에 익숙해져서인지 면만 먹어서는 싱거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국물이 시원했다. 기름기 거의 없이 깔끔한 맛에 계속 숟가락을 들었다.

 

남은 군만두를 포장하고 현금으로 계산했다. 짜장면 2500원, 짬뽕 3500원, 군만두 4000원 총 1만원이 나왔다. 

 

대부분 혼자 온 손님이었는데 간혹 둘도 있었다. 자리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대기는 없었지만 12시부터 1시까지 여섯개의 테이블이 쉴새 없이 돌아갔다.

 

가게 한쪽 벽에 착한가격업소 인증과 메뉴판, 원산지 표시가 붙어 있다. 짜장면 2500원, 짬뽕 3500원이다.

◆가격 싼 이유…“비쌀 이유가 없으니까”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시반, 다시 가게를 찾았다. 사장님은 믹스커피를 마시며 천장에 달린 브라운관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명함을 건네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짜장면 끝맛이 살짝 매콤해서 매력있더라”고 말했더니 “아주 조금 넣었는데 어떻게 알았느냐”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30년간 장사를 했다는 사장이자 주방장 김영철(68)씨는 맛도 가격도 ‘옛날 그대로’를 고수한다.

 

“짜장면은 달아야 한다”며 짜장을 볶을 때 미원과 설탕을 1대 2 비율로 넣는다고 했다. 전분을 많이 넣은 짜장은 텁텁해진다면서 “감자전분대신 옥수수 전분을 넣어야 뭉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집을 열기 전엔 야채장사를 했다는 그는 재료의 신선도에 신경을 쓴다.

 

춘장은 매일 오전 10시쯤 그날 쓸 양만 볶는다. 야채는 미리 볶지 않고 전날 손질해 냉장고에 넣어둔 것을 주문과 동시에 요리한다. 장도 이틀에 한 번꼴로 본다. 대량 구매하지 않고, 시장이나 마트에서 필요한 양만 사 쓴다. 물론 손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오징어에 대해서도 물었다. “원산지 표시에는 ‘냉동’이라고 되어있는데 냉동 오징어 같지가 않았다”고 말하자 그는 생물 오징어를 사서 직접 손질한 뒤 소분해 냉동한 것이라고 했다. 삼선짜장이나 짬뽕에 들어가는 오징어, 새우, 소라도 직접 손질해 얼렸다가 당일 냉장고에서 해동해 쓴다.

 

“왜 이렇게 싸게 파느냐”고 물었더니 김씨는 “비싸게 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요즘 음식값은 말도 안 되게 비싸다”면서 “재룟값이 200원 올랐는데 음식값 2000원을 올리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김씨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사장이 부지런히 움직여 저렴한 가격에 좋은 재료를 구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짬뽕에 청양고추 두 개 넣어 ‘고추짬뽕’이 되면 가격이 1000원 오르고, 홍합 몇 개 넣고 ‘홍합짬뽕’이 되면 또 가격이 2000원 오른다”면서 “그럴 필요 없다. 별 재료가 없어도 맛있었던 30년 전 그 맛, 기본에 충실하면 손님들이 저렴하고 만족스럽게 한 끼를 드실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착한가격업소 홈페이지 기준) 짜장면을 파는 다래성 입구.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 골목 초입에 위치한 이곳은 한눈에 봐도 오래됐다. 

2500원에 짜장면 한 그릇을 팔면 1000원이 남는다. 가게 옆 노래방까지 함께 운영해 월 200만원 넘게 월세를 내야 하는데, 노래방은 요즘 손님이 하루 한 팀도 없을 때가 많다.

 

그런데도 20년째 2500원을 고집하는 그에게 오히려 손님들이 500원이라도 올리라고 권한다.

 

하지만 김씨는 “500원 올려서 손님 한명 덜 오는 것보다 2500원을 유지하면서 한두 명 더 받는 게 좋다”면서 “요즘 사람들은 500원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500원도 모이면 아주 큰 돈이 된다”고 말했다.

 

경북 선산이 고향인 그는 20대에 서울에 올라와 장사를 시작했고 30대 후반 이곳에 중국집을 차렸다. 당시 독산동엔 반도패션 등 굵직한 기업과 작은 회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로 회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상권도 무너졌다.

 

김씨와 가족들도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어떻게 버텼나 싶을 정도로 큰 상실의 고통도 있었다. 그래도 성실하게 살았기에 아이들이 반듯하게 자랐고 부부가 큰 병 없이 생계를 꾸릴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음식 장사하느라 바빠 정작 가족들과 모여 밥먹은 기억이 거의 없어요. 그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하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 아이들이 장성해서 각자 제 몫을 하며 살아가고 있고, 제가 이 나이에도 일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욕심 없습니다. 지금처럼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손님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앞으로도 쭉 하고 싶어요.” 


글·사진=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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