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맹방’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분열이 생기면 미국 정치·경제·사회를 막후에서 움직이는 미국 내 유대계 사회도 동요할 가능성이 있다. 백악관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규모 지상전 외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격퇴할 방법을 찾겠다고 했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학가 반전 시위가 거센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최대의 정치적 난제를 맞닥뜨리고 있다.
◆“하마스 ♥ 바이든” 조롱…수면위로 올라온 갈등
네타냐후 총리는 9일(현지시간) 영상 메시지를 통해 “만약 해야 한다면 우리는 손톱만 가지고도 싸울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에게는 손톱 이외에 많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CNN 인터뷰에서 라파에 대규모 군사작전을 강행하면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라파에 투하될 수 있다는 우려로 2000파운드(약 900kg) 폭탄 1800개, 500파운드(약 225kg) 폭탄 1700개의 선적을 보류했다.
전날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이스라엘 내부에선 가시돋힌 반응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우리를 파괴하려는 자들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극우 국가 안보 장관인 이타마르 벤 그비르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하마스 ♥ 바이든”이라고 적으며 바이든 대통령을 조롱했다. 아이작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동맹국이 동의하지 않을 때도 “저항을 확실히 할 방법은 있다”고 말했다. 미국산 무기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중도 성향의 이스라엘 신문 예디오트 아흐로노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나바드 에얄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 중단이 이뤄지면 이는 “1차 레바논 전쟁 이후 미국 행정부와 이스라엘 정부 사이의 가장 심각한 충돌”이라고 자신의 SNS에 썼다. 1892년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클러스터형 포탄과 무기 전달을 중단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가자 전쟁 발발 이후 수면 아래서 들끓던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의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라파에 탱크를 진입시키고 국경 검문소를 장악한 이후 휴전 협상 타결 가능성 역시 잦아들고 있다. 하마스 관리들이 카이로에서 협상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이스라엘이 라파 국경을 점령하자 떠났다고 NYT가 보도했다. 미국 측 협상 대표인 윌리엄 번스 CIA 국장, 아랍 중재국인 이집트와 카타르 관리들만 남았다.
◆민주당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양면 위기 바이든
미국은 이스라엘을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팀에게 이스라엘과 계속 협력해 하마스를 영구적으로 격퇴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전략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며 “대통령은 라파를 박살내서는 그 목적(하마스 영구 격퇴)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지상전 대신 “몇가지 대안”을 제시했다고 말했지만 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존 커비 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도 “미국은 이스라엘에서 손을 뗀 것이 아니고, 라파 문제에 대한 논의는 진행 중”이라며 “미국은 가자에 남아있는 하마스 잔당을 쫓기 위해 대규모 지상전 외에 더 나은 방안이 있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미국 내부에서도 분열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전날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무기 지원 중단 결정과 관련한 세부 사항을 설명하라고 요구한 것에 이어 민주당에서까지 반발이 터져나왔다. 민주당 지지층인 젊은 층과 아랍계가 거센 반전 시위를 하고 있는 것과 달리 민주당 원내에서는 전통적 친이스라엘 성향의 영향력이 상당한 것이다. 민주당 리치 토레스 하원의원(뉴욕)은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동맹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반발했고, 존 페터먼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 역시 “맹렬하게 반대한다. 우리의 핵심 동맹과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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