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도 여러 가지 종류와 여러 가지 어프로치(접근)가 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접근이 따로 있고, 다른 회사의 접근도 각각 다르다”
“이제는 반도체 회사로 똑같이 보고 '누가 더 잘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4일 ‘SK AI 서밋 2024’ 포럼에서 삼성전자와 SK의 AI 전략 비교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답변이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삼성은 SK보다 훨씬 많은 기술과 많은 자원을 갖고 있다”며 삼성전자의 향후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최대 경쟁사인 SK그룹과 삼성전자의 동향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AI 시장은 그간 삼성전자가 ‘갤럭시 AI’를 중심으로 독주하는 듯했지만, 최근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 메모리(HBM)에서 앞서 나가면서 두 그룹 간 치열한 경쟁 구도가 생겨서다.
두 그룹은 같은 기간 AI 포럼을 열며 이 경쟁구도를 더욱 공고히 했다. 4일과 5일 열린 ‘삼성 AI 포럼 2024’와 ‘SK AI 서밋 2024’ 얘기다. 두 회사는 이 AI와 관련한 행사를 비슷한 시기에 치러왔다. 삼성전자는 2017년부터 8회째, SK는 9회째다. 그런데 올해 분위기는 좀 다르다. 삼성전자는 공개적으로 열어왔던 행사를 올해는 비공개로, SK는 그간 ‘테크 서밋’으로 열어왔던 SK텔레콤 차원의 행사를 ‘AI 서밋’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사 행사로 확대해 규모를 키웠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SK하이닉스는 AI메모리 칩을 만들고 SK텔레콤 같은 경우는 여러 가지 AI 서비스, 기술 부문 개발을 하고 있어서 SK 그룹 차원의 AI 기술력과 역량을 총집합해서 보여준다는 의미로 한층 업그레이드돼서 행사가 진행됐다”며 “다른 AI 관련된 파트너사와의 협력을 더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올해 AI를 더 강조하게 됐다. 최태원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SK는 행사에서 최 회장이 직접 기조연설을 하며 행사에 힘을 줬다. 특히 세계 최고의 AI 기업 중 하나인 엔비디아, 세계적인 파운드리 회사인 TSMC와의 서로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며 굳건한 '3각 동맹'을 과시했다.
특히 최 회장은 세계 최초로 HBM4 개발을 공개적으로 밝혔으며,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도 16단 HBM3E 제품의 출시를 공식화하는 등의 깜짝 발표를 해 업계 관심을 끌었다.
삼성전자도 올해 AI 포럼에 요수아 벤지오를 비롯해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등에서 세계적인 AI 석학들과 AMD, 메타 등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AI 전문가들을 초청하는 등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참석자들을 초청했지만 비공개에 그치면서 정기 행사 이미지에 그쳤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사실 두 회사의 올해 희비는 실적 면에서도 크게 엇갈린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분기 7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이 무려 40%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은 3조9000억원에 그쳤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로 대표되는 메모리 칩이 AI 산업에 필수로 꼽히면서, 큰 수요처로 꼽히는 엔비디아에 공급이 한발 앞섰던 SK하이닉스가 그야말로 폭풍 성장 중인 것이다.
박문필 SK하이닉스 HBM PE(프로덕트 엔지니어링)담당 부사장은 이번 행사에서 'HBM 1등 공급자'로써 경쟁사와의 차이점과 관련해 “세계 최초로 대량양산 시스템을 이뤄낸 점”을 꼽았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지난 3월 HBM 5세대인 HBM3E 8단을 업계 최초로 납품하기 시작한 데 이어 지난달 HBM3E 12단 제품을 세계 최초로 양산을 시작해 4분기 출하를 앞두고 있다. 이후 내년 상반기 중 HBM3E 16단 제품을 공급하고, HBM4 12단 제품도 내년 하반기 중 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가도 엇갈린 두 회사의 행보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한 달 동안에만 11% 뛰었다. 앞서 외국계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9월 '반도체 겨울론'을 주장한 이후 SK하이닉스도 주가가 크게 밀리는 듯했지만 곧바로 반등에 성공하면서 연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 한 달간 5% 하락한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주가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반도체 전문가인 신창환 서울시립대학교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반 엔비디아 연합군이 구축되고 있으나, 현재 SK하이닉스-엔비디아-TSMC가 AI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갑자기 상황이 바뀐다거나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마치 삼성 갤럭시가 비싸도 퀄컴쓰는 상황과 같이 성능이 좋지 않으면 가격이 싸도 쓸 수 없다. 엔비디아 제품을 많이 사기만 하면 AI 인공지능 모델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도적인 흐름이 쉽사리 바뀌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신 교수는 다만 "현재 SK하이닉스가 2주마다 엔비디아와 가격 협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주마다 가격을 올린단 얘기"라며 "언젠가 비용 이슈 때문에 엔비디아 제품을 사용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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