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중복 표현” vs “외국인도 이해 쉬워”
“한강의 올바른 영문 표기는 ‘Hangang River’입니다. 정확한 이름을 사용하는 데 협력해주길 당부합니다.”
지난달 19일 서울시가 이런 발표를 한 뒤 열흘이 지났지만, 이런 식의 외국어 표기법이 맞는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처럼 특정 지명을 둘러싼 논의 외에도 외국어 표기는 종종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최근 영자신문 ‘코리아 중앙 데일리’는 서울시의 당부를 따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 매체의 짐 불리 에디터는 칼럼에서 “‘Hangang River’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한강강’”이라며 “한강을 영어로 표현할 때 ‘Hangang River’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서울시가 표기 근거로 제시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가 2020년 제정한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으로, 자연 지명은 국문 명칭 전체를 음역해 로마자로 표기하고 이후 그 속성을 영어로 제시하라는 게 내용이다. 이는 국가 차원의 기준이다.
가령 한라산은 ‘Hallasan Mountain’, 설악산은 ‘Seoraksan Mountain’으로 표기해야 한다. 이런 표기는 ‘gang’이 강(river)을, ‘san’이 산(mountain)을 뜻한다는 것을 모르는 외국인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우리 고유 지명을 홍보하려는 목적도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 수요가 워낙 커지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언니’ ‘오빠’와 같은 단어가 그대로 등재되지 않았나”라며 “우리 고유 지명을 알리고 외국인의 편의도 동시에 고려한 지침”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독도는 예외적으로 ‘Dokdo’라고 하는 데, 지침이 생기기 전 영유권 분쟁에 대비해 명칭을 통일하기로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주요 영문 언론은 대부분 한강을 ‘Han River’, 한라산을 ‘Mount Halla’로 적고 있다. 어법상 어색하고 단어가 불필요하게 길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한 영자신문 기자는 “회사가 미국 AP통신에서 발간한 스타일북(사내 표기법)을 따른다. 여기에는 같은 의미를 중복해 쓰지 말라고 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강의 경우 ‘한강의 기적’이 ‘Miracle on the Han (river)’로 고유 명사화돼 있는 등 ‘Han River’가 이미 널리 알려져 ‘Hangang River’가 더 어색하게 들린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통역사들은 정부 표기 지침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현직 관광통역안내사인 이모(60)씨는 “주변 한국인은 모두 ‘한강’이라고 말하지 않나. ‘Han River’라고 하면 외국인으로선 한강이 아닌 다른 곳인 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다양한 견해가 나온다. 수도권 한 대학의 통번역대학원 교수는 “언어학적으로 올바른 표기는 ‘Han River’겠지만, 기능적으로 친절한 표기는 ‘Hangang River’”라고 말했다. 다른 통번역학 교수는 표기의 일관성을 강조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정부 지침의 일관성”이라며 “‘올바른 표기’가 수시로 바뀌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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