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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기밀·산업기술 유출 막자는데… 野 뜬금없이 “악용 우려” [간첩법 철회한 野]

입력 : 2024-12-03 18:48:43 수정 : 2024-12-04 00: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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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으로 국한된 간첩죄 적용 범위
‘외국’으로 처벌 대상 확대가 요지

野 법안소위 통과되자 입장 번복
“권력기관 힘 싣는 꼴” 우려 제기

21대서도 4건 발의됐지만 좌초
시대변화에도 70년간 개정 안 돼

더불어민주당은 4개월 전만 해도 야당의 비협조로 21대 국회에서 형법 98조(간첩법) 개정이 불발됐단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지적에 당의 공식 논평을 통해 “거짓말”,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며 외려 “국민 앞에 사과하고 민주당의 법 개정에 협조하라”고 했다. 그런데 간첩법 개정안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를 통과하자 태도가 바뀌었다. 야권에선 “검찰과 대치 중인 상황인데 수사기관에 힘을 실어주는 법안을 처리하는 데 대한 우려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간첩법 개정 또 물건너가나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가운데)이 지난 8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현행 간첩법제의 문제점과 혁신방안’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여당은 3일 간첩죄 처벌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국회가 간첩죄 확대를 무산시킨다면 이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상현 의원 페이스북 캡처

◆“권력기관 힘 실릴 수 있어”

 

3일 야권에 따르면 민주당 내부에선 “간첩죄 개정 시 자칫 권력기관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야권 인사들을 겨냥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데 간첩법 처벌 대상을 확대할 경우 이를 구실로 더 많은 야권 인사들에게 사법적 불이익을 가할 수 있는 것 아니냔 것이다.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여태까지 간첩법 논의가 원내에서 논의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21대 국회 때 법 개정이 불발된 데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자 대외적으로는 거센 반발을 하면서도 내부적으론 의제로 삼은 적이 없었단 것으로 해석됐다.

 

‘간첩 양산’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한 현역 의원은 “과거 억울하게 형사처벌 받은 사례들이 많았다”며 “간첩죄 개정을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법 남용 우려에 대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했다. 이러한 기류 속 민주당은 법사위 차원에서 공청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한 야권 인사는 “사실상 (법 개정을 미루려) 시간을 끌겠다는 말을 완곡하게 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 안보 전문가는 “간첩 행위는 수사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간첩죄 적용도 매우 엄격하다”며 “현재 국회 계류된 개정안들은 간첩 행위의 범위를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남용될 소지가 오히려 적어진다”고 말했다.

 

◆왜 개정해야 하나

 

간첩법 개정의 핵심은 ‘적국’은 물론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처벌하잔 것이다. 현행 규정은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대로면 적국인 북한 외 어느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해도 간첩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처벌 범위를 ‘적국 간첩’에서 ‘외국 간첩’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현행법은 일본의 전시 형법을 모방해 1953년 제정한 이후 70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수정된 적이 없다. 평시에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을 뿐 아니라 지금의 다변화한 국제정세를 반영하지 못한 구시대적 법안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올해 들어 발생한 군 정보 요원 신상 유출 사태는 우리 측 군무원이 중국 측 인사에게 정보사령부 소속 흑색요원들의 신상 정보를 넘기면서 불거졌다. 현행법대로면 중국은 적국이 아니기 때문에 군무원을 간첩죄로 처벌하기 쉽지 않다. 간첩죄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북한과의 연계성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 법원에서 간첩죄가 인정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野 “국보법 폐지해야”

 

지금의 법망 미비를 보완하려는 정치권의 노력은 2004년부터 이어졌지만 번번이 정쟁에 묻혀 좌절됐다. 21대 국회에선 간첩법 개정안이 총 4건 발의됐다. 김영주 전 국회부의장을 시작으로 민주당 홍익표 전 의원과 이상헌 전 의원이, 국민의힘에선 조수진 전 의원이 발의했다. 당시 김 전 부의장은 국민의힘으로 옮기기 전이었기 때문에 4건 중 3건이 민주당 법안이었는데 국회 통과가 불발됐다. 22대 들어선 여야 통틀어 18건이 발의됐다.

 

민주당이 간첩법 개정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야권에선 국가보안법(국보법)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조직적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국보법 폐지 22대 국회의원 모임’엔 범야권 현역 의원 15명이 가입했는데, 이 중 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전날 국회에서 국보법 폐지 세미나를 열었다.

 

국보법은 반국가단체를 위한 행위를 처벌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반국가단체는 북한을 의미한다. 헌법상 북한이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이기 때문에 ‘외국 및 외국에 준하는 단체’를 위한 간첩 행위를 처벌토록 하는 간첩법 개정안 통과 전에 국보법부터 폐지되면 북한 간첩 관련 처벌 규정이 사라지게 된단 지적이다.

 

유창준 전 국가정보원 방첩국장은 “그간 북한을 위한 이적행위를 국보법으로 처벌했는데 국보법이 폐지되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국가 지위를 놓고 다시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 의원은 이와 관련해 “노코멘트하겠다”고 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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