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으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피고인들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과거 검찰의 위법 수사 여부, 검찰에 의해 감춰진 무죄 증거 등이 쟁점으로 제기됐다.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 측 신청에 따라 당시 이들의 자백을 받아낸 검사와 검찰 수사관이 향후 증인으로 소환될 예정이다.
광주고법 형사2부(고법판사 이의영)는 3일 살인과 존속살인 혐의로 각각 기소된 A(74)씨와 딸 B(40)씨에 대한 재심 첫 공판 기일을 열었다.
이번 재판은 항소심 재판에 대한 재심인 만큼 두 피고인이 살인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1심에 대해 검사가 항소 상황에서 다시 시작됐다.
검찰은 “피고인들의 자백뿐만 아니라, 기타 정황에 비춰볼 때 (살인죄) 공소 혐의는 인정됨에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며 항소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피고인 측 박준영 변호사는 검사의 항소 기각, 즉 무죄를 재차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우선 검찰 수사 과정에서 경계성 지능 장애인인 피고인들을 상대로 변호인이나 신뢰관계자 없이 진술받아 절차적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검사와 수사관은 가설의 시나리오를 주입해 제멋대로 조서를 작성했고,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인 피고인들은 조서 열람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두 번째로는 살인죄를 자백받는 신문 방법이 위법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강압과 기만으로 신문을 진행하고, 신문 조서도 왜곡과 과장을 담아 피고인들을 범인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검찰이 피고인들의 무죄를 입증하는 중요 증거를 감췄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막걸리 구입 경로의 CC(폐쇄회로)TV상에 A씨 차량이 찍혀 있지 않아 이를 숨겼고, 청산가리가 오이 농사에 사용하지 않는 농부들 진술도 감췄다고 봤다.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넣는 데 사용했다는 플라스틱 숟가락에서 청산가리가 검출되지 않은 국과수 증거도 감췄고, 청산가리 추정량도 잘못 추정해 진술을 꿰맞춘 정황도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는 변호인은 “피고인들이 부인했음에도 시나리오대로 진술을 주입하거나, 압박해 수동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부녀간에 성적으로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음을 범행 동기로 꾸몄다”고 밝혔다.
이번 재심은 사건 관련자들이 증인으로 출석해 사건 당시 상황을 다시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검찰은 자백을 토대로 한 기소의 정당을 입증하기 위해 당시 검사, 수사관 등 3~5명을 증인 신청했다.
변호인 측은 반대로 허위 자백을 받았다며 검사·수사관과 함께 경찰, 막걸리 구매 식당 주인, 농부, 교수 2인 등 13명을 증인 신청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고문 등 물리적 강압과 달리 이 사건은 경계성 장애인이라는 피고인들의 취약성을 악용해 수사와 재판이 이뤄진 사례다”며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선고돼야 하고, 무죄가 선고되는 과정도 정의롭게 이뤄져 피고인들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억울함도 풀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이 끝난 이후에는 피고인들이 무죄면 진범이 누구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 변호사는 “2009년 발생해 살인죄에 대해 공소시효가 없는 사건이기에 이 부분은 수사기관의 과제다”고 말했다.
한편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은 2009년 7월 6일 오전 전남 순천시 자택에서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마신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친 사건이다.
사망자 중 1명의 남편과 딸이 범인으로 기소돼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나왔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남편 A씨에게 무기징역, 딸 B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이 판결은 2012년 3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러나 A씨 부녀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지 10년 만인 2022년 1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재심 개시를 결정해 이번 재판이 열리게 됐다.
이날 형집행정지로 교도소에서 임시 출소해 재판받은 A씨와 B씨는 취재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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