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였던 마약 범죄 대응회의 취소
탄핵안 표결 땐 이탈표 막아 버티기
국회 통과해도 헌재까지 최소 수개월
사법피해 줄이는 하야 가능성은 희박
개헌 등 카드 꺼내 野와 담판할 수도
전문가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내상”
일각에선 “추가 계엄 우려” 목소리도
비상계엄 선포·해제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4일 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에게 남은 정치적 선택의 이해득실을 따지며 마지막 승부수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새벽 비상계엄 해제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한 이후 오전 10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릴 예정이던 마약류 대응상황 점검회의를 취소했다. 당초 이 회의는 윤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준비한 행사로, 마약 범죄와 관련한 강한 메시지를 전파할 것으로 전망됐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취소하고 오전엔 용산 집무실에 나오지 않았다가 당·정·대 회동 이후 참석자들이 대통령실을 찾기 직전 집무실에 나와 이들과 논의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세 갈래 길에 선 尹 대통령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 앞에 놓인 선택지를 크게 3가지로 예상한다. ‘버티기’, ‘하야(下野)’, ‘정면돌파’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야당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 여당 의원을 대상으로 표 단속에 나서면서 탄핵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막으며 버티는 방안이다. 전날 비상계엄 해제 안에는 여당 의원도 18명이 투표했지만 막상 8명의 여권 이탈표가 필요한 탄핵안에는 여당 의원도 쉽게 동조하기 어려울 것이란 셈법이다. 설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헌법재판소 절차까지 마치려면 최소 3개월에서 6개월가량의 시간이 주어진다.
하야의 경우 탄핵으로 인한 사법적 피해를 줄이는 정치적 선택이 되고 국정 공백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다만 이날 계엄 해제를 발표하는 대국민 담화 마지막에서까지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을 언급하며 강하게 야당을 비판한 만큼 윤 대통령 성정상 이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정면돌파는 그동안 미뤄 왔던 개각을 파격성을 더해 실행하면서 임기 단축 개헌, 내각제 개헌 등 여러 정치적 카드를 함께 내놓으며 판을 흔들어 반전을 꾀하는 것이다. 한때 거론됐던 ‘박영선 총리’식으로 중도 성향 인물을 대거 발탁하고, 그동안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물려 진행되지 못했던 개헌안을 내놓으면서 정국 전환 발판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
향후 정국에 대해 전문가들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윤 대통령이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의 정치적 내상을 입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그나마 합리적 해석을 해보자면 야당이 헌법에 부여된 권한을 이용해서 국정을 마비시키면 대통령도 충격요법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정치적 테이블로 야당을 끌어온다는 정도”라고 했다. 다만 박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정치적 자살’로 보인다”며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제 윤 대통령에겐 탄핵, 하야, 임기 단축 개헌 정도의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다”며 “모두 임기가 줄어든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 부부의 지인으로도 알려진 함성득 경기대 교수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밖에 없다”며 “사임하거나 탄핵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 교수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배경과 관련해 “채 상병 문제, 김건희 여사 문제 등 자신을 조여오는 것과 의료개혁 등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많은 어젠다를 하다 저렇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합리적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제 대통령이 선택하기보다 국민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윤 실장은 “국민이 민주주의 가치 훼손이라고 느꼈다면 대통령의 행동이 제약당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시간은 대통령의 편이 아닐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인한 경제·외교 후폭풍이 나타나면 그 책임이 무거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계엄 재선포’라는 극약 처방을 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치적 수세에 몰린 윤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치적 생명을 건 도박을 한 차례 더 벌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만 여권 한 관계자는 “계엄군을 동원하고도 표결을 막지 못했는데 또다시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여론을 본 군이 이번에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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