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관련 “군 동원 자체가 폭동”
“의원들 출입 막았다면 탄핵 가능”
檢 내부선 검찰 직접 수사 목소리
법조계와 학계에선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 행위에 위헌·위법 소지가 다분하다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탄핵 사유이며, 내란죄나 직권남용죄에도 해당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이제 관심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맡을 헌법재판소에 쏠린다.
4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우선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서 병력으로써 군사상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라는 헌법 제77조의 계엄 선포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부터 해제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특히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 등에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데 대체로 이견이 없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계엄령 내용 자체가 위헌이고, 절차적으로도 정당화되지 않는 불법적인 계엄”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에 정통한 한 법조인도 “윤 대통령의 중대한 실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계엄사령관 포고령을 통해 신체의 자유, 언론·출판 자유, 집회·결사 자유 등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현 상황을 계엄법상 비상계엄 선포 요건에 해당한다고 봤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담화에서 “국회가 사법부와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있다”고 밝혔는데, 계엄법 제2조는 비상계엄 요건 중 하나로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못 박고 있다. 다만 이를 두고서도 “야당이 정부 예산안 등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사법 기능도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계엄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검사 출신 변호사)란 비판이 거세다. 서 교수도 “국회가 주어진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사태는 명백한 탄핵 사유가 되고, 직권남용, 나아가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의 내란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란죄란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동’이다.
익명을 요구한 헌법학자는 “형법상 국헌 문란 목적 중 하나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인데, 국회는 헌법에 의한 국가기관이고 계엄 포고령에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이 있다”면서 “계엄법에 국회 기능을 막는 규정은 없어 내란죄의 국헌 문란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정희정권 이후 계엄 포고령을 기준으로 보면,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는 국회를 정치 활동 금지 대상으로 명시한 전례가 없다. 계엄법엔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체포·구금·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 또는 단체 행동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서 교수는 “군을 동원한 것 자체가 (내란죄의) 폭동”이라면서도 “성공은 못 했기 때문에 정확히는 ‘내란 미수’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대한변호사협회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윤 대통령 내란죄 수사는 불가피하다”며 “변협이 거국 내각 준비를 돕겠다”고 밝혔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막기 위해 계엄군이 우원식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체포하려 했거나 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막았다면, 내란죄 가능성이 있고 탄핵 사유가 될 여지도 있다”면서도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니 윤 대통령이 해제해 전체적으로는 바로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고,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실제로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는 계엄 선포 후 국회에 들어가려는 의원들 출입을 저지했다.
검찰 내부에선 이번 사태를 검찰이 직접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태훈(사법연수원 30기) 서울고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계엄사령부 포고령과 그에 기한 병력 전개와 조치들은 내란죄 여부를 논하기 전,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 범죄인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밝혔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이날 검찰 구성원들에게 공직 기강 확립과 복무 관리 강화를 주문했다.
판사들 사이에선 조희대 대법원장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있다. 계엄 포고령 중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할 수 있으며, 처단한다’는 문구가 사법권 독립을 침해했다는 취지다.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법원 내부망을 통해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쿠데타 시도”라며 조 대법원장에게 “강력한 경고를 해 달라”고 촉구했다. 김도균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대법원의 소극적 대응을 꼬집으며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원의 미숙하고 잘못된 대응에 대해 반성과 관련자의 책임 추궁을 요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3명이 공석인 6인 체제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가처분 신청에 따라 헌법재판소법의 심리 정족수 7명 조항 효력을 정지해 6명만으로도 헌법재판 사건 심리가 가능해졌다. 헌법재판소법상 재판관 6명 전원이 찬성하면 탄핵이나 헌법소원 인용 결정도 할 수 있다. 헌재 관계자는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탄핵 심판은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통과돼 소추 위원인 법제사법위원장이 헌재에 소추 의결서 정본을 제출하면 개시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날 헌재에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행위는 위헌”이란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민변은 “윤 대통령 담화문에 비춰 봤을 때, 동일한 계엄 선포가 언제든 반복될 가능성이 있고, 향후 기습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국회가 해제를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신속한 위헌 확인 결정을 촉구했다. 헌법소원 사건은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되는 지정 재판부의 사전 심사를 거쳐 전원 재판부 회부 여부가 결정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