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치 용어 가운데 ‘프랑사프리크’(Francafrique)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France)와 프랑스어로 아프리카를 뜻하는 ‘아프리크’(Afrique)를 합쳐 만든 일종의 신조어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아프리카 대륙의 상당한 영역을 식민지로 거느렸던 프랑스가 옛 피지배 국가들이 독립한 뒤에도 정치적·경제적 간섭과 개입을 일삼으며 여전히 주인 노릇을 하려 드는 것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옛 프랑스 식민지 출신 국가들에는 최근까지도 프랑스군 기지가 존재했다. 프랑스는 이들 기지에 주둔하는 군대를 앞세워 오랫동안 테러 집단 토벌 작전을 벌여왔다. 하지만 프랑스군의 존재는 반(反)정부 세력에게 ‘우리가 독립한 것이 언제인데 아직도 프랑스가 지배자 행세를 하느냐’는 선동의 빌미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2022∼2023년 옛 프랑스 식민지였던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에서 차례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모두 프랑스와 방위 협정을 맺고 프랑스군의 주둔을 허용했던 나라들이다. 기존 문민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정권을 잡은 군부 지도자들은 반프랑스 정책을 표방했다. 프랑스군의 존재를 ‘제국주의의 잔재’로 규정하며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했다. 프랑스 정부는 “쿠데타 세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경제 원조 중단 카드로 맞대응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해당 국가들의 군사 정권은 이미 프랑스 대신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배’를 잡은 뒤였다.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에 있던 프랑스군은 마치 패잔병처럼 철수했고 그들이 사용한 기지는 폐쇄됐다.
최근 들어선 그간 상대적으로 친(親)프랑스 정책을 펴온 국가들마저 프랑스와의 관계 유지에 회의를 드러내는 모습이다. 프랑스 식민지 경험이 있는 차드와 세네갈이 대표적이다. 차드 정부는 지난달 “우리 시대의 정치적·지정학적 현실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며 프랑스와의 방위 협정 종료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차드에 주둔 중인 프랑스군의 철수를 촉구했다. 이에 프랑스군은 지난 20일부터 수송기를 동원해 장병들을 본국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역시 프랑스군 기지가 자국 내에 있는 세네갈 또한 차드와 비슷한 입장을 피력했다. ‘아프리카는 프랑스가 지배한다’는 뜻을 내포한 프랑사프리크는 이제 완전히 옛말이 된 셈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일 지부티를 전격 방문했다. 아프리카 북서부에 있는 지부티는 에리트리아,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다. 19세기 후반 프랑스가 점령해 1977년까지 식민지로 지배했다. 프랑스에 대한 국민 감정이 안 좋을 법도 하지만 의외로 독립 이후에 줄곧 프랑스와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지부티의 프랑스군 기지는 약 1500명의 대규모 병력이 주둔하고 있어 프랑스 최대의 해외 군사 거점으로 꼽힌다. 마크롱은 “지부티에 프랑스군이 주둔하는 것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인도태평양 무역로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랑스가 일방적으로 자국 이익만 좇는다면 언제가 지부티도 프랑스에 등을 돌릴지 모를 일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