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언론인 수거대상’ ‘국회봉쇄’
계엄당일 군·경 행보, 증언과 일치
일부 인사 실명 거론, 사살 표현
계엄 명분 ‘북풍공작 의혹’ 추정
‘12·3 비상계엄 사태’의 비선 핵심 인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서 ‘북풍’ 공작을 기도한 정황이 발견돼 파장이 예상된다.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선 ‘국회 봉쇄’라는 단어가 나왔고, 정치인과 언론인, 종교인 등은 ‘수거 대상’으로 지칭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살’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에 따르면 국수본은 최근 노 전 사령관의 거주지에서 확보한 자필 수첩에서 ‘NLL(북방한계선)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NLL은 사실상의 남북 간 해상 분계선으로, NLL 일대에서 북한을 자극해 북한의 무력 도발을 끌어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비상계엄 실행세력이 북한과의 군사 충돌을 일으켜 계엄 정당화를 꾀하려 했다는 의혹은 야권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해당 수첩에는 ‘국회 봉쇄’라는 표현 또한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치인과 언론인, 종교인, 노동조합, 판사, 공무원 등을 ‘수거 대상’이라고 지칭하며 ‘수용 및 처리방법’을 언급한 메모도 발견됐다. 국수본은 ‘수거’에 대해 ‘체포’의 의미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부 인사의 실명도 기재됐다고 한다. 우종수 국수본부장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사살’이라는 표현이 있었냐”는 질의에 대해 “사실에 부합한다”고 답했다.
메모의 구체적인 작성 시기에 대해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계엄 선포 당일 군경이 투입돼 국회 출입을 통제했다는 점과, “실제로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받았다”는 다수 관계자의 진술로 미뤄볼 때 해당 메모가 계엄을 사전에 모의하는 과정에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실제로 NLL에서 북한의 공격을 유도하는 행위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수첩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60∼70페이지 분량으로, 계엄과 관련된 내용이 다수 적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군부대가 배치될 목표지와 군부대 배치 계획 또한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고령과 관련된 내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국수본 관계자는 “수첩에 있는 내용은 단편적인 단어의 조각들로, 전체 맥락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서 메모 내용에 대해선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수본은 노 전 사령관을 비롯해 ‘안산 햄버거 회동’에 참석한 정보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마치고 24일 중 노 전 사령관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노 전 사령관은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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