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 불분명한 진화복에 곰팡이 핀 헬멧
산불재난 대응시스템 전방위적 개선 시급
산불 진화작업 중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발생한 두 건의 사고 모두 산불 진화용 헬기의 기령(기체 나이)이 30년을 넘긴 것으로 파악되면서 헬기 노후화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화에 투입되는 대원들에겐 방염 성능이 떨어지는 원단의 진화복이나 녹슬고 곰팡이가 핀 헬멧이 보급된 것으로 나타나 장비 개선을 포함해 산불 재난 대응 시스템의 전면적인 검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8일 산림청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산불을 끄던 헬기가 추락한 사고는 올해만 두 건 발생했다. 6일 오후 3시 41분쯤 대구 북구 서변동 야산에서 난 산불을 진화하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정모(74)씨가 숨졌다.
추락한 헬기는 지난해 10월 대구 동구청이 임차한 소형 헬기 ‘벨(BELL) 206L’ 모델로, 기령이 44년 된 기종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달 26일 오후 12시 34분쯤 의성 산불 진화에 투입됐던 강원도 임차 헬기(S-76)가 추락해 조종사 박현우(73) 기장이 숨졌다. 이 헬기도 1995년 7월 생산돼 30년 가깝게 운행된 노후 기종이다.
두 사건의 구체적인 추락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장에선 임차 헬기를 활용한 재난 대응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산불 진화 체계로 정부·지방자치단체 보유 헬기와 민간 임차 헬기를 혼합 운영 중인 가운데, 실제로 지난 10년간 지자체 임차 헬기에서 추락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
2023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산림보호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2013~2023년 산불 진화 중 헬기 추락 사고는 10건으로, 이 중 지자체가 임차한 헬기 사고는 7건에 달했다.
관련 예산 규모가 작은 지자체에선 연한이 오래된 헬기를 조달청을 통해 최저가로 입찰하다 보니 안전 관리나 부품 교체·정비 등이 미흡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과)는 “산불 진화 헬기는 내구연한을 10~20년으로 보고 있는데 국내에는 일반적으로 30년 이상 된 노후 기종이 상당히 많아 성능이나 안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비용이 워낙 비싸다보니까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강풍에 강하고 담수량 많은 고정익 수송기를 도입하는 등 지원을 늘릴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산림청 소속 산불재난특수진화대(특수진화대)와 예방진화대가 현장에서 받는 장비들도 노후화된 경우가 다반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 입사한 특수진화대원 A씨는 “현재 보급받고 있는 진화복의 제조사가 불분명해 사비로 특수 방호복을 사서 입고 있다”며 “이번에 내구연한이 지나 녹이 슬고 곰팡이가 핀 헬멧을 쓰고 산불 진화 현장에 다녀왔다. 산림청에 교체를 요구하고 있지만 전혀 바꿔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원 B씨도 “지급받은 신발 사이즈가 10단위(10㎝)씩으로밖에 제작되지 않아 작거나 헐렁한 신발을 신고 산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라며 “거의 모든 대원들이 개인 돈으로 등산화나 전술화, 기동화 같은 걸 구매해 사용하고 있고, 고글이나 장갑 등도 사비로 산 게 많다”고 말했다.
정지성 대원은 “진화는 해야겠고 내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며 “대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살아있는 게 참 신기한 일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사고가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발생한 결과라며 장비 지급 일원화와 헬기 정비 기준 강화, 기종 교체 로드맵 마련 등 전방위적인 대응 체계 개선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대형 산불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산불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며 “제도를 개선해 진화대원들의 희생과 헌신을 지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 교수는 “진화대원의 근무 조건 등을 개선하고 진화 장비도 최신 장비로 공급하는 등 산불 진화에 부족함이 없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