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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관의 애환과 고통 ‘집행자’

입력 : 2009-11-05 22:17:46 수정 : 2009-11-05 22: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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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사형제에 대한 근원적 질문 던져 사형제를 소재 혹은 주제로 한 작품이라면 반드시 두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국가권력이 한 생명을 빼앗을 만큼의 권한은 없다’는 식의 인권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천인공노할 살인자를 응징하는 가장 신속하고 확실하며 합법적이기까지 한 ‘정의 구현’의 방식으로 묘사할 것인가. 두 입장이 워낙 확고하고 격정적인 까닭에 중간 논리는 존재하기 힘든 상황에서 5일 개봉한 ‘집행자’(감독 최진호)는 그 중간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전하는 영화다.

‘집행자’의 이러한 자세는 직업상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교도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에 가능했다. 세 명의 교도관이 12년 만에 부활한 사형집행관으로 선택된다.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최고참 김 교위(박인환)는 수십년간 동고동락한 사형수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쓰레기는 꽉꽉 눌러줘야 돼’란 소신이 있는 10년차 종호(조재현)는 ‘짐승’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위해 자원했고, 신입 교도관 재경(윤계상)은 제비뽑기로 선택돼 사형을 집행하게 됐다.

영화는 각기 다른 이유로 교수대에 오른 세 교도관처럼 사형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우발적 살인에 대한 형벌로 사형수가 된 뒤 지난 20년을 불안과 참회로 보내온 ‘2367번’(김재건)이 있는가 하면, 죽는 순간까지 “이제 난 못 죽이지만 니들은 계속 더 죽이겠지?”라며 섬뜩하게 웃는 연쇄살인범 장용두(조성하)가 있다. 또 “너 같은 거 죽일 수만 있다면 몇 번이라도 죽이고 싶어. 하지만 너하고 똑같은 짓 하는 건 죽기보다 싫어”라는 피해자 가족(전미선)의 오열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영화는 직업 때문에 사람을 죽여야 하는 교도관들의 애환과 고통에 주목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웃던 사형수의 목숨을 제 손으로 직접 끊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두려운 김 교위와 그의 아픔을 위로하기엔 사형집행관으로서 지난날의 상처가 너무 깊은 옛 동료, 사형집행수당 7만원으로 소주잔을 기울며 “결국 우린 망나니였네”라고 탄식하는 교도관들, “쓰레기 죽였는데 왜들 지랄이냐고요?”라는 재경의 악다구니가 가슴 먹먹하게 와 닿는다.

사형 집행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후반 장면은 충격적이고, 장용두의 연쇄살인에 대한 비판여론이 들끓자 사형 집행을 전격 결정하는 관계 당국의 모습은 사형제도에 깔린 정치적 함의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치밀하다. 하지만 종호가 사형 집행 이후 환청과 환시에 시달린다는 설정은 다소 생뚱맞고, 재경 여자친구(차수연)의 낙태를 사형과 연결짓는 것은 작위적이다. 처벌의 목표와 악의 불변성, 생명의 우선순위, 국가권력의 권한 등 사형제에 얽힌 숱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집행자’는 적절한 수준의 대중성까지 갖춘 괜찮은 영화지만 지나치게 많은 시선이 등장하는 탓에 정작 이야기의 힘에서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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