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후명(64)은 소설 이전에 시로 먼저 데뷔했을 정도로 미학적인 문장과 사유로 호가 난 작가다. 그의 대표작 ‘협궤열차’ 연작이 보여주는 쓸쓸하고 도저한 허무의 세계는 후배 작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가 소설을 발표하지 않은 지는 꽤 오래 되어 그의 깊은 문장과, 서해 갯벌을 지나가는 바람소리 같은 쓸쓸함이 그리운 독자들로서는 아쉬운 세월이 길었다. 그런데 그가 소설이 아닌 산문집을 들고 나와 갈증을 적셔준다. ‘나에게 꽃을 다오 시간이 흘린 눈물을 다오’(중앙books)라는, 제목부터 길고 시적이다. 소설보다 더 맛깔 나는 문장들이 지천이고, 이것저것 재지 않는 직설적인 ‘산문’이라는 장르여서 그의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기에 좋다.

그의 소설에 주조음으로 흐르는 도저한 허무의식이 생아버지와 양아버지의 조건이 부여한 어떤 지점에서 싹트고 있는 건 아니지 물었더니 윤후명씨는 “아무래도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하나는 무형의 아버지요, 또 하나는 직접 보고 자란 분인데, 그 분을 정말 존경하지만, 두 분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제 문학이 떠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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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후명씨. 그는 “꽃은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삶의 원초적 물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려움이기도 하다”면서 “그래서 사랑인 것”이라고 산문집 서문에 적었다. |
앞서 말했다시피 소설가 윤후명씨는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시인으로 문학의 길을 먼저 걷기 시작했다. 그가 이번 산문집에 채용한 독특하고 길고 인상적인 제목은 그의 자작시에서 비롯됐다.
“내게 황새기젓 같은 꽃을 다오/ 곤쟁이젓 같은, 꼴뚜기젓 같은/ 사랑을 다오/ 젊음은 필요 없으니/ 어둠 속의 늙은이 뼈다귀빛/ 꿈을 다오/ 그해 그대 찾아 헤맸던/ 산밑 기운 마을/ 뻐꾸기 울음 같은 길/ 다시는 마음 찢으며 가지 않으리/ 내게 다만 한 마리 황폐한/ 시간이 흘린 눈물을 다오”(‘희망’)
그는 서문에 “지난 시간이 흘린 많은 눈물을 잊어서는 안된다”면서 “꽃을 피우기 위해서였다 하더라도 그 눈물이 말라가면 남긴 얼룩이 내 삶의 무늬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꽃과 눈물 사이에 이 책을 바치며 나를 글의 제단 위에 올려놓으려 한다”고 썼다. “흘린 눈물의 양이 사람을 승화시킨다”고 믿는 윤후명씨. 그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전화를 받고 “문학은 도구가 아니고 목적이며 문학이란 삶 그 자체”라고 먼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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