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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하학적 추상의 시발점이 된 이승조 20주기전

입력 : 2010-06-21 13:18:41 수정 : 2010-06-21 13: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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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0년 49세의 나이로 타계한 이승조 작가. 그는 유난히 캔버스 앞에만 서면 어린아이 같이 즐거워했다. 놀이터에서 한창 모래 놀이에 빠진 아이들의 모습이 아마도 그럴게다. 진정 작업 자체를 즐긴 작가였다.

그런 그였기에 간경화로 지상의 삶을 마감할 때까지 20여 년을 일관되게 기하학적 추상이라는 분야에만 매달리며 한국 근현대 회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었다. 앞선 세대가 앵포르멜 식의 추상표현주의를 고양했다면 그는 이에 정면으로 도전해 반 표현주의적 미술을 지향했다. 196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앵포르멜이 초기의 신선함을 잃고 점차 형식화 되어간다는 비판이 거세짐에 따라 그는 1963년 ‘오리진’그룹 결성에 참여해 본질적 조형요소에 충실한 미술을 추구했다.

◇기하학적 추상의 천작을 통해 한국 근현대 회화사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이승조 작가. 그는 생전에 나름의 조형성에 확신을 갖고 작품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작가였다.
원로작가 박서보는 이승조만의 독특한 성향으로 ‘시각적 일루전의 추구’와 매커닉한 요소로 인한 ‘비정한 시각적 문법’을 꼽았을 정도다.

이승조는 평생을 평면의 2차원성과 씨름하면서 색면대비, 형태의 규칙성을 통해 기하학적 구조를 천착했다. 그는 1969년부터 본격적으로 특유의 원통형 구조를 드러내며 기하학적 추상의 한국적 모델을 알렸다. 그가 ‘파이프’ 작가로 알려지게 된 이유다.

이승조는 작업과정에서도 치열한 장인정신을 보여주었다. 캔버스 위에 일정한 칸을 설정한 다음 칸을 중심으로 기초색을 칠해갔다. 칸과 칸 사이에 생긴 공백엔 흰색을 발랐다. 이러한 일차 작업이 끝나면 일단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화면 전체를 사포질로 균질하게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 전과 동일한 수법으로 물감을 칠했다. 그러다 보면 기초색과 흰색이 서로를 수용함으로써 그 중간색 층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원통형의 입체감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10번 이상 반복했다. 요즘 화두인 3D화면의 자연스런 구현이라 할 수 있다.

두 곳에서 열리고 있는 이승조 20주기 추모전은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다. 서울 반포의 샘터화랑에선 7월15일까지 이승조의 블랙계열 작품 20여 점을 볼 수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말기에 이르는 작업들은 초중기 작업의 구성적 다채로움과 다색적인 경향에서 벗어난 단색 처리가 특징이다. 회화의 기본요소인 색을 단순화시키고, 선에 대한 개념조차 분명치 않은 화면으로 물리적 율동미를 돋보이게 한다. 그림 자체가 지닌 감수성의 심화와 내면으로의 이행으로 평가되는 지점이다.

고인의 아내인 고정자씨는 생전의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 “캔버스에 마지막 점을 찍으면서 ‘미래를 위한’ 작업이라 했어요. 하나의 갠버스에 갇히지 않는 미래로 열려 있는 작업임을 암시했지요.”

7월9일까지 일주 & 선화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승조 오마주’전은 그의 말대로 후배작가들이 이를 보여주는 전시다. 김병호, 김성훈, 김태은, 뮌(김민선 최문선), 한승구, 태싯그룹(장재호 가재발) 등 미디어아티스트들이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주제로 2차원 평면을 넘어 3차원 가상공간의 환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승조의 초기부터 말기까지 3D환영을 추구했던 실험적인 작품 18점과 함께 어우러짐은 또 하나의 볼거리다. (02)514-5122, 2002-7777 

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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