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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없는 자들의 말과 소문 … 그것이 진짜 역사 아닌가!

입력 : 2014-10-02 21:27:20 수정 : 2014-10-04 10: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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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연극 ‘무극의 삶’
국립극단 가을 무대의 주제는 ‘삼국유사’다. 고전서사를 해석하는 연극적 상상력이 과거와 현대의 간극을 뛰어넘어 동시대의 감각을 입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화두를 던진다. 연극 ‘무극의 삶’(김태형 작, 김낙형 연출·사진)은 일연 사후에 ‘삼국유사’를 펴냈다고 알려진 그의 제자 ‘무극(無極)’을 중심으로 작가의 상상과 유사의 기록이 더해져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다.


“힘 있는 자들이 기록한 역사는 진짜 역사가 아니요, 백성들의 진짜 역사는 기록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무극의 말처럼 ‘삼국유사’는 이 땅의 무명씨들 말에 문자라는 몸을 부여하고, 바람 타고 떠돌던 실체 없는 소문에 숨을 불어넣은 시도였다. 무극의 숙명은 그들의 기억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무극은 입 없는 자들의 마을인 ‘무구’에서 태어나 세상을 떠돌며 소문을 채집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극은 고려 후기 방대한 분량의 삼국유사를 만든 일연에게 조력자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일연을 도와 삼국유사를 편찬하는 제자들로, 무극을 비롯한 네 명의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출신도 가치관도 다른 무극과 해욱, 하제, 남종을 통해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입장을 그려낸다. 무극은 일연의 대변자이며 삼국유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안팎으로 불안한 정세와 흉흉한 민심으로 어지러운 시기였다. 충렬왕은 원나라의 공주와 통혼하고, 고려는 원 제국을 모시는 일개 부마국으로 전락한다. 극작가 김태형은 당대의 어지러운 사회상을 파고들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를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 풀어놓는다. 극은 현대사의 한 장면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시사성을 띠며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려후기의 난세상을 보여준다. 연출가 김낙형은 집중력과 세심함으로 이 땅의 장삼이사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작품 속에는 세 개의 시선이 공존한다. ‘삼국유사’가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을 대하는 고려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 두 가지 시선을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는 21세기 우리의 시선이다. 극은 주인공 무극이 ‘삼국유사’에 고려 당대의 이야기를 담은 ‘수소문’이라는 부분을 넣으려고 했다는 설정을 추가해 삼국유사가 나오던 때의 이야기를 빚어낸다. 또한 ‘바람’으로 등장하는 코러스 역할이 삼국유사 속 이야기들을 재연하는 등 삼국유사의 풍부한 이야기가 다양한 연극적 형식으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삼국유사’는 우리가 속한 세계이며 현재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이야기하기 위한 변화무쌍한 텍스트로 작용한다.

‘무극’에 관한 기록은 두 가지가 있다. 일연의 제자 무극이 1310년대에 ‘삼국유사’를 간행했다는 것과 일연이 무극이라는 주장이다. 일연은 보각국사(普覺國師). 속성은 김씨, 속명은 견명(見明)이며, 처음의 자는 회연(晦然), 나중에 일연(一然)으로 바꾸었다. 호는 무극(無極)·목암(睦庵), 시호는 보각(普覺), 탑호는 정조(靜照)다.

극중 삼국유사 편찬실에 왕이 방문하면서 일어나는 상황과 그 작업에 참여한 인물들은 모두 가상이다. 왕거(충렬왕)와 원성(제국대장공주), 기녀 적선래 등 역사적 인물 역시 필요에 따라 변형되었다. ‘삼국유사’ 뒷부분에 ‘수소문’이라는 고려 당대의 야담이 부록으로 실릴 뻔했다는 설정 역시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 허구다. 12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관객을 맞는다. 화∼금 오후 8시, 토·일·공휴일 오후 3시. 1688-5966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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