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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올림픽 성공 요건은 균형재정… 평창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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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12 22:00:00 수정 : 2017-05-12 2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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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이희범(68) 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은 올림픽 개최지인 강원도 평창에 숙소를 두고 있다. 서울과 평창, 강릉을 오가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지난해 8월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는 세 번이나 리우를 다녀왔다. 당일치기 일본 출장은 일도 아니다. 일이 많을 때는 숙소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다. 일반 라면이 지겨울 때는 떡라면을 만들어 먹는 날도 있다. 일생일대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위원장을 지난달 28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동계올림픽조직위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이희범 위원장은 “지난겨울 테스트 이벤트를 거치면서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확신했다”며 “일년도 남지 않은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는 공기업의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이 위원장은 공대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어머니는 수시로 “공대 졸업해서 평범하게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1967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전자공학과는 1966년 서울대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4학년이 됐지만 취업할 곳이 많지 않았다. 전자회사에 취업한 선배들도 ‘공장에 오지 말라’고 만류했다. 당시 공대를 졸업하면 취업 아니면 유학을 선택했다.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아 유학 갈 생각을 했지만 6·25전쟁 때 홀로 된 어머니를 남겨두고 외국으로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행정고시였다. 공대 출신으로 행시 합격자는 드물었다. 하지만 행시 선택과목에 공대 출신에게 유리한 통계학 등이 있어 수석으로 합격했다. 고시에 떨어졌다면 아마 전자회사에 취업해 잘나가는 CEO가 됐을지도 모른다. 차관보 때까지 굴지의 국내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 돈을 버는 것보다는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더 보람 있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이 위원장은 공직생활을 하면서 인사청탁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공직에 입문한 후 묵묵히 일만 했다. 상공자원부 수출진흥과에 근무할 때 동료들이 “이희범은 차관까지 할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상공부에서 ‘차관 적임자가 누구냐’고 여론조사를 하면 만장일치로 지목됐다. 이 위원장을 서로 데려가려고 국장들이 큰소리로 싸우는 것을 목격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여서 굳이 희망부서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주요 부서에서만 일했다. 자신의 신변과 관련해 딱 한 번 부탁했다. 서기관 때 장관을 찾아가 유학을 보내 달라고 했다. 견문을 넓히기 위해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장관은 “이희범을 일 시키려고 데려왔지 공부시키려고 데려왔나. 공부는 미리 해서 오지”라며 반대했지만 기꺼이 유학신청서에 사인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유일한 인사청탁이었다.

이 위원장은 어느 조직에서나 성실성을 인정받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판단력, 정보력, 리더십 등이 필요하지만 성실성을 갖춰야 비로소 충분조건이 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성실성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동료보다 5분 일찍 출근하고 5분 늦게 퇴근하면 된다. 이 같은 방법을 10년만 하면 조직에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금까지 이 방법으로 생활하고 있다. 대학이나 기업에서 강연요청이 있으면 꼭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성실함의 성공모델이라고 소개한다.

이 위원장은 조직생활을 할 때 염두에 둘 것이 있다고 했다. 그는 “몸이 괴로우면 마음은 편하고, 몸이 편하면 마음은 괴로운 거다. 몸 사리지 말고 일하는 것이 최선이다”고 말한다. 이 위원장은 며칠 전 대전에서 열린 강원향우회 모임에 참석해 동계올림픽을 소개했다. 행사가 오후 10시30분에 끝났다. 이 위원장은 곧바로 대전에서 출발해 다음날 오전 1시30분쯤 평창에 도착했다. 2시쯤 잠자리에 들어 4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회의를 주재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몸을 혹사할 만큼 눈코 뜰 새 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강행군으로 몸은 피곤할지 모르겠지만 일에 보람을 느끼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편안해진다고 귀띔했다.

이 위원장은 취임 이후 평창동계올림픽이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을 때 힘들었다. 그 스캔들 속에 이희범도 있을 것이라는 오해가 생길 때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만둘 생각을 했다. 검찰조사 결과 최씨가 평창동계올림픽 이권에 개입하려는 음모는 있었지만, 스캔들에 의해 계약된 것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평창올림픽 이미지는 그나마 개선됐다. 지난겨울 치른 26개의 테스트 이벤트는 평창동계올림픽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최순실 때문에 위원장에 임명됐다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스캔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물론 ‘인사청탁을 하지 않는다’는 평생 지론을 지킨 것에 큰 위안을 받았다.

테스트 이벤트는 올림픽을 치른 경험이 없는 조직위 직원 1120명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동시다발적으로 7개 경기를 치른 적도 있어 실전 같은 테스트 이벤트는 직원들에게 성공적인 올림픽을 개최할 역량이 있다는 것을 시험하는 무대였다. 국제경기연맹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경기운영과 경기장 수준이 최고였다는 칭찬을 들은 것도 큰 성과다. 흑자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26개 경기를 치르면서 애초 예상보다 수입은 31% 증가했지만 지출은 20% 줄었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성공 올림픽의 최우선 조건으로 균형재정 달성을 꼽았다. 선수들은 금메달을 많이 따 종합 4위를 할 수 있도록 경기력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평창과 강릉을 찾는 선수단과 응원단에게는 먹을거리와 볼거리, 양질의 숙소가 있어야 하며 개최도시의 유산관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올림픽 성공은 일종의 오케스트라와 같다. 어느 한 부분만 잘해서는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른 여파로 10개월도 남지 않은 동계올림픽의 열기가 가라앉았지만 새 대통령이 업무를 시작하면 관심이 증폭될 것으로 기대했다. 새 정부의 가장 큰 국제행사가 평창동계올림픽이기 때문에 정부와 손잡고 남은 과제를 추진하면 붐업 조성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공기업의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예산이 13조7000억원이지만 11조원은 제2영동고속도로와 춘천∼양양고속도로 건설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들어갔다. 조직위가 쓰는 예산은 2조8000억원이며 이 가운데 35%는 기업의 스폰서십으로 마련됐다. 28% 정도는 IOC 지원금이고 나머지는 입장권과 기념주화 발매 등으로 충당한다. 스폰서 수입이 조직위 예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위원장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이 위원장은 9400억원의 스폰서 수익을 목표로 했다. 지난해 말까지 90%를 달성할 계획이었지만 0.5% 정도 미달했다. 현재까지 약 94% 채웠고, 올림픽 개최 전에 나머지 부분을 끌어와야 한다. 이 위원장은 공기업이 나서줘야 하는데 미동도 없다고 했다. 공기업들은 동계올림픽에 후원할 경우 경영평가에 불이익이 없도록 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기획재정부는 경영평가매뉴얼을 변경해 평창동계올림픽에 후원하면 가산점을 주겠다고 밝힌 데다 국회의장까지 나서 공기업에 후원을 요청했지만 후원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공기업은 탄핵심판과 대선결과를 보고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한다.

이 위원장은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과 2014소치동계올림픽 당시 공기업이 스폰서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도 우리나라 공기업만 후원을 미루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독점적 지위에 있는 공기업이 수혜를 받는 일정 부분을 공익을 위해 환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해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국가는 참가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지만 일정 정도 수준이 돼야 참가할 수 있다. 경기력이 떨어지면 소치올림픽 때처럼 참가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는 조직위 차원에서 IOC 등을 통해 북한 참여를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사무국이 평창동계올림픽 불참을 발표한 것을 놓고, 그는 이달 중순 NHL 총재를 만나 참여를 촉구하기로 했다. 그는 “만약 NHL이 불참하면 경기를 중계하는 NBC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에 협상을 벌여 올림픽 참여를 이끌어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위원장은 방송인 송해가 광고모델로 나와 히트를 친 기업은행 광고 문안인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생긴다’를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기업은행장과 사석에서 만나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린다’는 기존 광고 문안은 충분조건이 안 된다고 조언하면서 새로운 광고 문안을 만들어줬다고 했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면 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 위원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전임 대통령들이 앞장선 것은 올림픽 개최로 경제효과는 물론 나라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동계올림픽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전체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국민의 참여가 절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열심히 노력해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국민은 하나로 뭉쳐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의 고향은 1976년 안동댐이 완공되면서 수몰됐다. 이 위원장은 “내 고향은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안동까지 가서 배를 타고 한 시간을 간 뒤 물밑으로 50m를 내려간다”고 말했다. 고향은 있는데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실향민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이 위원장은 자다가 종종 고향을 찾는 꿈을 꾼다. 안동댐의 물을 빼고 청소하는 날 유년의 추억과 꿈이 깃든 고향마을을 가는 꿈을.

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이희범은
△1949년 경북 안동 출생 △1971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72년 제12회 행정고등고시 수석 합격 △1972년 상공자원부 사무관 △198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졸업 △2001년 상공자원부 차관 △2002년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2003년 서울산업대 총장 △2003년 산업자원부 장관 △2006년 한국무역협회장 △2010년 한국경영자총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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