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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간이 녹아내리듯…애달프게 전통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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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16 10:00:00 수정 : 2017-06-15 15:5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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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 덕산 양조장·종박물관 ‘데엥∼∼∼’

우리가 아는 종소리는 여운이 오래 남는다.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소리지만, 다른 나라의 종은 우리 종만큼 심금을 울리지 않는다. 이런 종소리를 실제 다시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끄억∼∼∼’

우리 술 막걸리의 맛은 다양하다. 동네마다 있던 양조장이 각기 다른 특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양조장은 하나둘 사라지고 전통을 고수하는 양조장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전통은 양면성이 있다. 지켜야 할 존재이지만, 고루해보이기도 한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수십년 외길을 걷는 것만큼 고달픈 일도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외길을 걷는다고 꼭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요즘같이 변화가 빠른 세상에선 이런 모습이 별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오감으로 느끼는 오랜 전통

“간이 녹아내리지.”

쇠를 녹여서 각종 기물을 만드는 장인인 주철장(중요무형문화재 112호)으로 지정된 원광식(75) 선생은 섭씨 1000도가 넘는 쇳물을 틀에 부어 넣는 순간의 긴장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형 종은 주물 등을 제작하는 데만 1년 가까이 시간이 걸린다. 이후 완성된 틀에 쇳물을 부어 종을 완성하는데, 쇳물을 끊김 없이 부어야한다. 또 틀 내부와 쇳물 온도차가 심하면 기포가 생성된다. 20분 정도 걸리는 이 순간이 잘못되면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철장(중요무형문화재 112호) 원광식 선생이 직접 제작한 종의 울림을 듣기 위해 타종하고 있다.

원 선생은 17세 때부터 8촌형이 운영하던 충북 진천 성종사에서 철과의 인연을 맺었다. 당시엔 세숫대야 등 생활집기와 불상, 작은 종 등을 제작했다. 28세 때 뜨거운 쇳물이 그의 오른쪽 눈에 튀어 실명했고, 그는 일을 손에서 놓았다. 종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 그는 1973년 성종사 대표가 된 후 본격적으로 종 제작에 뛰어들었다. 대학교수와 학회를 만들어 종에 대해 연구했고, 1985년 서울 보신각종을 시작으로 대형 종 제작에 나섰다. 이후 1993년 대전엑스포대종, 1999년 충북천년대종, 1999년 임진각 평화의종, 2005년 광주 민주의종 등을 제작, 복원했다. 특히 2년의 시간이 걸린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복원은 그동안 그가 쌓은 기술의 집약이었다. 지난해 성덕대왕신종의 크기와 소리, 문양까지 재현해 ‘신라대종’으로 불리는 종은 경주에 있다.
진천 종박물관 전경.
종박물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실물 크기로 재현한 성덕대왕신종을 만날 수 있다. 실제 종은 아니다. 쇳물 주조 과정을 마친 후 거푸집을 떼어내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종박물관은 앞마당에 직접 타종할 수 있는 범종이 있다. 입장하기 전 타종하며 종의 맥놀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그가 제작한 종의 울림은 진천 종박물관에서 느낄 수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직접 타종할 수 있는 범종이 있다. 입장하기 전 타종하며 종의 맥놀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실물 크기로 재현한 성덕대왕신종을 만날 수 있다. 실제 종은 아니다. 쇳물 주조 과정을 마친 후 거푸집을 떼어내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1 전시실은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대표하는 다양한 범종들이 전시돼 있다. 그가 제작해 기증한 작품이다. 시대별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신라시대 종소리가 가장 익숙할 듯싶다. 2층에서는 밀랍 주조 공법, 사형 주조 기법 등 종을 만드는 과정이 알기 쉽게 전시돼 있고, 전 세계의 다양한 종들도 볼 수 있다.

눈과 귀로 우리의 전통을 느꼈다면, 입과 코로 경험할 수 있는 전통도 있다.

진천 용몽리는 진천에서 가장 넓은 평야가 있는 곳으로, ‘생거진천(生居鎭川)’이란 말처럼 질 좋은 쌀로 유명하다. 마을 입구에 있는 거무스름한 나무벽으로 지어진 건물에서 이 쌀로 술을 빚는다. 덕산양조장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허름하게 생긴 이 건물은 1930년 지어져 지금도 술을 빚고 있다. 양조장에 들어서면 막걸리를 빚을 때 나는 특유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3대에 걸쳐 전통을 지키며 술을 빚어온 덕산양조장은 2015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 이방희 대표가 운영 중이다. 건물 외부를 덮고 있는 검은 나무들은 일제강점기 때 백두산 전나무와 삼나무를 이용해 지은 것으로, 보기에도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내부에 들어서 천장을 보면 상량문에 ‘소화 5년’이라는 건립 시기가 적혀 있다.
충북 진천 용몽리 마을 입구의 덕산양조장은 거무스름한 나무 벽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 건물은 1930년 지어져 지금도 술을 빚고 있다. 양조장에 들어서면 막걸리를 빚을 때 나는 특유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덕산양조장 이방희 대표가 항아리에 담긴 효모를 휘젓고 있다.
덕산양조장 내부 전시실에는 커다란 술독이 눈길을 끈다. 흰색 페인트로 쓴 ‘탁사 제3호 370L 1963.9’라는 글씨가 항아리에 적혀 있다. 밀주 단속을 위해 당시 세관에서 술독에 표시한 것이다.
덕산양조장 내부 전시실의 앞자리가 두 자리인 옛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하얀 플라스틱 말통.
양조장 전시실엔 깔때기, 간이증류기, 술찌꺼기를 거르는 체 등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술과 관련된 옛 도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발효중인 막걸리.
내부 전시실에는 커다란 술독이 여행객의 눈길을 끈다. 흰색 페인트로 쓴 ‘탁사 제3호 370L 1963.9’라는 글씨가 항아리에 적혀 있다. 밀주 단속을 위해 당시 세관에서 술독에 표시한 것이다. 또 앞자리가 두 자리인 옛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하얀 플라스틱 말통과 깔때기, 간이증류기, 술찌꺼기를 거르는 체 등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술과 관련된 옛 도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건물보다도 중요한 것은 막걸리를 발효할 때 사용하는 효모다. 발효실의 효모들은 양조장이 생긴 이후 그대로 이어 오고 있다. 양조장이 잠시 어려움을 겪게 됐을 때도 이 효모만은 따로 보관해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양조장을 찾는 여행객들은 막걸리를 시음할 수 있다. 대형 공장에서 만든 시큼한 막걸리의 맛이 아니다. 목을 타고 넘어가며 코를 자극하는 달달한 풍미에 웃음을 짓게 된다.

◆새로운 전통이 될 사찰

오래된 것은 전통이 되지만, 새로운 것은 전통의 시작이 된다. 절이라면 오래된 사찰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진천 연곡리 보탑사는 창건한 지 20년이 안 되는 신식 사찰이다. 1996년 비구니 스님인 지광·묘순·능현 스님이 창건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터를 정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진천 연곡리 보탑사의 3층 목탑은 높이 42.73m로 아파트 14층 규모다. 공식 명칭은 ‘보련산 보탑사 통일대탑’이다. 다른 절에서 보는 단순한 탑이 아니라 내부에서 계단으로 3층까지 오를 수 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떠 쌓은 것이다.

소박함을 앞세운 사찰이 아니다. 현대에 지어져 화려하다. 무엇보다 사찰 가운데 있는 3층 목탑의 규모에 입이 쩍 벌어진다. 높이 42.73m로 아파트 14층 규모다. 공식 명칭은 ‘보련산 보탑사 통일대탑’이다. 다른 절에서 보는 단순한 탑이 아니라 내부에서 계단으로 3층까지 오를 수 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떠 쌓은 것으로, 삼국시대 이후 단절된 ‘오를 수 있는 탑’을 재현했다고 한다.
통일대탑 옆 적조전에는 와불이 있는데, 금으로 도색돼 화려함을 자랑한다.
통일대탑 1층 약사여래불 앞에는 사월초파일 수박을 올리는데, 동짓날 이 수박을 나눠 먹는다고 한다. 반년 이상 있어도 수박이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통일대탑 2층 법보전에는 윤장대가 설치돼 있지만, 돌릴 순 없다.
보탑사에 들어서서 왼편에는 연곡리 석비가 서있다. 글자가 하나도 없어 백비로 불린다.
통일대탑 1층은 대웅전, 2층은 법보전, 3층은 미륵전이다. 대웅전엔 찰주(불탑의 중심기둥)를 중심으로 사방에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여래불,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특히 약사여래불 앞에는 사월초파일 수박을 올리는데, 동짓날 이 수박을 나눠 먹는다고 한다. 반년 이상 있어도 수박이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보전에는 윤장대가 설치돼 있지만, 돌릴 순 없다. 3층엔 금으로 칠한 미륵삼존불을 모셨다. 통일대탑 옆 적조전에는 와불이 있는데, 이 역시도 금을 도색돼 화려함을 자랑한다.

보탑사에 들어서서 왼편에는 연곡리 석비가 서있다. 글자가 하나도 없어 백비로 불린다. 보탑사와는 직접 관련이 없고, 고려 때 이 부근이 절터였음을 알 수 있는 증표다.

진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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