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 5학년 김수현(10)양은 아빠와 단둘이 생활한다. 김양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그 흔한 학원도 못 다니고, 매일 아빠가 올 때까지 동네 놀이터나 공터를 배회하다 풀 죽어 귀가하곤 한다.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학업을 봐주는 사람도 없어 성적도 저조한 편이었다.
그러던중 최근 집 근처에 작은도서관이 생긴 뒤 김양은 방과 후 어디로 가야 할지 더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그는 학교를 마치고 매일 도서관으로 향한다. 처음엔 만화책을 즐겨봤지만, 요즘엔 일반도서를 읽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덕분인지 집중력도 좋아져 성적도 쑥쑥 올랐다.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으며 김양은 자신의 꿈을 시나브로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집 근처에 작은도서관이 생겨 너무 좋다"며 "새롭고 재미있는 책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면서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교육·문화 인프라, 도심지와 도서지역 격차 더 벌여져
21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교육환경시설 투자의 중요성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의 건강과 안전에 관련된 교육환경시설 투자는 1차적 목적인 학생의 건강과 안전 제고는 물론 교습 및 학습 환경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쳐 학업성과가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건물 내의 낡고 고장난 시설은 나쁜 공기를 유발해 학생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결석률 상승 및 집중력 저하 등을 야기해 학업성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소득층이 많고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의 학교 시설이 열악한 경우가 많아, 학생들과 교사들의 학습 및 교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교육인프라투자(교육여건개선 및 교육환경개선시설비) 지출은 2009년 2조4000억원에서 이듬해 1조4000억원으로 급감한 뒤 2015년까지 답보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지방으로 갈수록 지속적인 출산율 및 학생 수 감소로 인해 원도심이나 농어촌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가속화, 교육 및 문화 여건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 교육부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2011년 이후 교육부의 '적정규모 학교 육성정책'으로 통폐합된 소규모 학교는 285개로, 이 가운데 초등학교는 211개였다. 전체 학교 중 농어촌학교 비율은 전남(76.0%)을 최고로 △충남(72.4%) △강원(70.4%) △경북(64.4%) △충북(61.1%) △전북(59.1%) △경남(57.7%) △제주(50.8%) 등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체 초·중·고등학교(1만1838개)의 17.7%인 2929개가 소규모 학교로 이 가운데 초등학교가 1474개로 70.5%를 차지했다. 지방으로 갈수록 인구감소와 소규모 농어촌 학교 비중이 높아 잠재적 통폐합에 대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격차는 학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교 수업 외에도 방과 후 학습 및 여가, 문화생활 등 전반에 걸쳐 상대적으로 소외되거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특히 지금처럼 날씨가 춥고, 겨울방학 기간이 되면 도서산간이나 소외지역 아이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가까이 이용 할 수 있는 교육∙문화 시설이 더욱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관련 시설과 투자 부족에 따른 피해는 결국 학생들이 지게 돼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 학생들의 안전 및 학습 여건을 개선하고, 지방 또는 소외지역의 정보 불균형 해소를 위한 해결 방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인프라 확충을 위해서는 예산 및 부지 확보, 운영 인력, 시설 관리 방안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단기간 내에 쉽지 않은 게 현실이며,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각종 문제점을 극복하고 비교적 단기간 내에 쉽게 접근 가능한 방안 중 하나로 마을 창고나 비어있는 작은 공공시설을 활용한 소규모 도서관 설립이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실제 각 지방자치단체와 비영리단체, 기업이 함께 나서 소외지역 내 작은도서관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
◆작은도서관이 만드는 '큰 희망'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것은 조국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고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며, 하버드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은 책 읽는 습관”이라고 했다. 작은 도서관 하나가 누군가에게 책 읽는 공간 그 이상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롯데홈쇼핑과 구세군 자선냄비본부가 함께 전국의 소외지역에 작은도서관을 만들어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업계의 귀감을 사고 있다. 주변에서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학습공간이자 아이들의 놀이터, 주민들의 소통공간으로 활용되는 등 다양한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롯데홈쇼핑에 따르면 작은도서관은 인구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도서관 시설, 지역 및 경제적 여건에 따른 문화, 교육 수준 격차가 심화됨에 따라 전국의 문화 소외 지역 아동에게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선물하자는 취지로 2013년부터 처음 시작된 사업이다.
전국 지역사회와 연계해 도서 산간이나 소외지역 사회복지시설에 작은 공간을 활용해 만들고 있다. 현재 이용 안 하고 있는 빈 창고나 낡고 허름한 공간을 리모델링해 도배, 장판, 누수 공사 등 환경 개선은 물론 도서 보급 및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도 지원하고 있다.
쾌적한 학습공간 조성을 위해 친환경 자재만을 이용해 공부방 시설을 만들고, 아이들의 신체에 맞게 제작된 책걸상 및 도서 등을 지원하고 있다. 공사 전 대상 시설 현황과 지역적 특성에 따라 환경에 맞는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다. 롯데홈쇼핑 임직원들도 직접 참여해 도서 정리 및 공부방 청소 등의 봉사활동과 함께 사진촬영, 종이접기,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 등 재능 나눔 활동도 꾸준히 전개하고 있어 아이들의 호응이 높다.
이 작은도서관은 누구나 이용 가능한 열린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어 어린아이부터 중고등학생과 학부모, 어르신들까지도 자유롭게 방문하고 있다. 평소에 마주하기 어려운 아이와 어른, 저학년과 고학년, 또는 이웃 주민들간의 교감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맞벌이 가정이나 조손 및 결손 가정, 학원을 다닐 형편이 안 되는 저소득층 등 자칫 소외되기 쉬운 아이들에게는 방과 후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쉼터이자 안심대피소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실제 구세군자선냄비본부에서 작은도서관 자체 조사 결과 주 2~3회 이상이 58%, 주 1회 이상이 27%로 높은 이용률과 재방문율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구세군자선냄비본부 김필수 사령관은 "빈부 격차 및 문화시설의 도시 집중 현상에 의해 문화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이 있다"며 "이런 아이들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책과 학습공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양질의 도서를 통해 미래 주역인 아이들이 꿈을 키우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사업"이라며 "이에 롯데홈쇼핑과 뜻을 함께하며 '세상에서 가장 큰 꿈이 자라는 곳'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 방방곡곡 문화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에게 양서를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전국을 누비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2013년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작은도서관은 지난해 어느덧 50호점을 넘겼다"며 "앞으로도 전국의 작은도서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꿈을 향한 희망과 도전이 전파되길 바란다"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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