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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10차선 도로에 늘어선 어린이집…매연 마시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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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22 16:23:06 수정 : 2018-04-22 21: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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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상용화한 도시의 환경 개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드러운 고무 타이어를 장착한 차량이 매끈한 노면 위를 달려 거리는 깨끗하고 오물도 없고 냄새도 없을 것이다.’

1899년 미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자동차의 등장을 반기며 이렇게 적었다. 마차가 주요 이동수단이었던 시절, 자동차는 도시 여기저기서 악취를 풍기던 말 배설물을 밀어낼 ‘친환경 신문물’이었다. 자동차 배기가스에 비하면 말똥은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탓이다.

1940년대 발생한 ‘LA 스모그’는 전 세계에 자동차 배기가스 위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사방으로 깔린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현대인의 편리한 발이 돼 준 동시에 대기오염을 확산하는 주범이다. 국내에서도 자동차는 지속가능한 환경 조성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환경보다 편리함을 앞세운 도로·차량 정책을 세울 때가 많다. 도로변 취약계층 보호나 차량 운행제한 같은 조치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인도 옆 6차로·머리 위 4차로··· 그 주변엔 아이들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돌곶이역 6번 출구. 주변 골목에는 책가방을 멘 학생들이 A초등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날 미세먼지 ‘나쁨’이 예보된 때문인지 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학생과 학부모 20여명 중 절반 정도가 미세먼지 마스크를 썼다. 그들 앞에 놓인 2차선 좁은 도로에는 출근길 차량이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학교 운동장을 끼고 돌아 후문에서 곧장 50걸음(30여m)가량 걸으니 6차선 도로인 화랑로에 닿았다. 화랑로 위로는 4차로의 북부간선도로가 뻗어 있다. 총 10차로의 지상·고가도로를 매일 차량 17만여대가 오가는 것으로 서울시교통량조사보고서에 나온다.

2016년 기준 화랑로 도로변대기측정망의 연평균 이산화질소 농도는 0.049ppm, 미세먼지(별도 언급이 없는 한 PM2.5를 의미) 농도는 28㎍/㎥를 기록했다. 대기환경기준(이산화질소 0.03ppm, 미세먼지 15㎍/㎥)을 크게 초과하는 것은 물론 담당 자치구(노원구)의 도시대기측정소 연평균 값(이산화질소 0.028ppm, 미세먼지 26㎍/㎥)도 상회한다. 노원구 도시대기측정소는 화랑로에서 4㎞ 떨어진 주민센터 옥상에 있다.

A초등학교에서 200m쯤 걸어가자 B어린이집이 나왔다. 화랑로·북부간선도로와 불과 20m 남짓 떨어진 곳이다. B어린이집 바로 앞은 화랑로에서 갈라진 좁은 골목이었는데도 냉동탑차 2대와 트럭 1대, 승용차 5대가 주차돼 있었다. 

이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 C씨는 “이곳은 큰 도로와도 가깝고, 차 방향을 돌리기 위해 골목 안으로 들어오는 차량도 많다”고 전했다.

화랑로에는 이처럼 도로 주변 150m 이내에 위치한 보육·교육시설이 32개에 이른다. 미세먼지는 계절을 타지만, 이산화질소는 대부분 자동차에서 배출돼 연중 농도가 거의 일정하다. 도로변은 1년 365일 내내 고농도 대기오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화랑로 일대 32개 보육·교육시설에 다니는 7706명의 아이들은 법정 기준치 이상의 매연에 노출된 채 어린이집과 학교를 오가는 것이다. 비단 이 지역뿐이 아니다. 전국 37개 도로변대기측정망에서 이산화질소 최고치(0.068ppm)를 보인 서울 강남대로에도 어린이집 6곳과 초등·고등학교가 1개씩 있는데 어린이집 원생들만 425명에 달한다.

미세먼지가 최고치인 청주 복대동 육거리 주변에는 무려 43개의 보육·교육시설에 9269명의 유아·청소년이 다닌다. 이곳에는 산업단지도 많아 2016년 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40㎍/㎥를 기록했다. 연중 미세먼지가 ‘나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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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연보에 빠진 서울 도로변 초미세먼지 농도

수도권에서 경유차 등 ‘도로이동오염원’은 연간 1만4500t의 미세먼지를 만들어낸다. 전체 미세먼지 출처의 27%가 도로다. 7개로 구분된 미세먼지 배출원 중 1위다. 정작 도로변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 일대 취약계층은 몇 명이나 되는지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현실도 모르니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을 리 만무하다. 우리 아이들을 매연 등 대기오염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없는 이유다.

오염실태를 확인하기 위한 자료 조사부터 정부의 무관심을 보여준다. 2011년 환경부와 각 지자체가 설치한 도시대기측정소와 도로변대기측정소는 각각 249개소, 36개소다. 이후 미세먼지가 사회 이슈화하면서 도시대기측정소는 지난해 287개소로 늘었으나, 도로변대기측정소는 37개소로 고작 1곳 늘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도로변측정소를 갖춘 데는 14곳에 불과하다. 경기도는 면적이 서울보다 16배 넓지만 측정소는 7곳에 불과하다. 강원, 경북, 전남, 제주, 세종에는 아예 도로변측정소가 없다.

도로변대기측정망의 미세먼지·이산화질소 농도는 각각 국내 도시와 교외지역의 대기질을 측정하는 도시·교외대기측정망과 국외의 유입물질을 측정하는 국가배경측정망에 비해 훨씬 높다. 도로변 대기질 정보가 충분히 수집되지 않으면 국내 대기오염 농도가 과소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환경부는 미세먼지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도시대기측정소만 2022년 505개소로 늘리겠다고 했을 뿐 도로변대기측정소 확충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국립환경과학원이 발간하는 대기환경연보에는 서울의 초미세먼지 자료가 아예 누락됐다.

과학원 관계자는 “(측정기 성능을 평가하는) 정부 형식승인을 받은 측정기 자료만 연보에 싣는데 서울시 도로변 초미세먼지 측정기는 자체 평가만 받은 상태”라며 “타 지역과 형평성을 고려해 서울시 자료는 싣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은 “서울시는 형식승인 제도 도입(2015년) 전 이미 도로변 측정소를 구축했다”며 “그때 이미 미국 대기환경청(EPA)의 승인을 받았고, 환경부 승인을 받으려면 장비를 다시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도로이동오염원이 가장 큰 배출원인데도 행정적인 이유로 정부 공식 자료집에서 정보가 빠진 것이다.

몇 안 되는 측정소 정보도 교통량 정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측정소와 교통량 수집이 따로따로 이뤄지는 탓이다. 일례로 서울 도로변 측정소 중 홍릉로는 미세먼지 농도가 두 번째로 높지만 이 도로 교통량은 수집되지 않는다. 인천 부평과 대구 평리동은 도로변 농도를 정확히 재기 어려운 학교 옥상에 측정기가 달려 있다.

윤지로·김준영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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