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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한때 ‘동유럽의 파리’… 화려한 날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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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12 10:00:00 수정 : 2018-10-10 21: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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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불가리아
브란성과 페레스성을 지나 드디어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Bucharest·영어 부카레스트)에 도착했다.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 설화에 나오는 ‘부쿠르(Bucur)’라는 사람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부쿠르는 설화에 따라 왕자, 어부, 목동, 사냥꾼 등 다양한 직업으로 등장한다. 알바니아어로 아름다움을 뜻하는 ‘부쿠르(Bukur)’에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카르파티아산맥 기슭과 다뉴브강 사이에 있는 왈라키아 평원에 위치한 부쿠레슈티는 중세 이래 왈라키아 공국의 수도였다가 1861년 왈라키아와 몰다비아의 합병으로 루마니아가 탄생하면서 수도가 됐다. 1930년대에는 ‘동유럽의 파리’라고도 불릴 만큼 아름다웠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니콜라이 차우셰스쿠 통치를 거치면서 역사적 건물들이 많이 파괴됐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구 시가지 풍경.

특히 1500명의 사상자를 냈던 1977년의 대지진을 겪으면서 이전의 아름다움이 많이 사라졌다. 구 시가지는 여느 수도처럼 시끌벅적하고 수많은 사람으로 넘쳐난다. 저녁에 도착해 도시는 불빛으로 화려함을 뽐내고 있지만 공사막으로 가려진 건물들이 많아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치 않다. 천천히 시내를 걷다 허기를 느끼고 식당에 들어섰다.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 틈에 앉아 직원에게 현지 음식을 추천받는다. 가벼운 해산물을 선택하고 싶었으나 내륙이란 지역적 특성상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놀란 후 친절한 직원의 설명을 듣고 스테이크와 야채구이로 대신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현지인들을 뒤로하고 짧은 식사를 마친 후 서둘러 길 위로 나섰다.

식당을 나서 좁은 조약돌 거리를 걸으면서 1400년대 초부터 루마니아인, 오스트리아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등 다양한 인종의 상인과 장인들이 설립한 오랜 공예품 커뮤니티와 길드의 이름을 볼 수 있다. 다양한 국적과 문화가 어우러지면서 건물엔 바로크부터 신고전주의, 아르누보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건축 양식이 반영돼 있다.
구 시가지에 있는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문양의 스타브로폴레오스 교회.

돌길 모퉁이를 지날 때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듯 아트 갤러리, 골동품 상점, 커피 하우스, 식당 및 나이트클럽이 색다른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길옆으로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문양의 건물이 나타난다. 15세기에 건립됐다는 루마니아 구왕궁 유적은 부쿠레슈티에 건설된 최초의 왕궁으로 화려했던 시절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하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가는 도중 목적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광장에 차를 세웠다. 눈앞에 웅장하고 커다란 건물이 나타난다. 루마니아 의회궁전이다. 의회 궁전을 바라보는데 마침 비가 내린다. 조금 전의 평온한 날씨가 무색하게 갑작스러운 하늘의 변덕이다. 번개까지 치며 제법 굵은 비가 쏟아진다. 시기쇼아라에서 느꼈던 으스스함보다 더한 극적 연출이다. 쏟아지는 폭우에 잠시 차에서 머물며 광장에서 일어난 지난 시절을 상상해 본다.

루마니아의 공산당 지도자인 차우셰스쿠의 특별한 요구로 지어진 의회 궁전은 미국 국방부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행정 건물이다. 북한의 김일성 궁전을 참고해 만들어졌다는 이 건물을 짓기 위해 10만명의 인부와 군인 1만2000명, 건축가 700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더구나 20여개의 교회와 1만여채의 집들이 강제로 철거됐으며 약 5만7000명이 강제 이주했다고 한다.

차우셰스쿠는 의회 궁전의 테라스에서 연설하고 싶어했지만, 완공되기 전 민주화혁명이 발생해 1989년 12월 처형됐다. 그렇게 국민의 눈물과 피로 얼룩진 의회 궁전은 2005년 완공되었으며 지금은 루마니아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자 관광명소가 됐다. 물론 국회의사당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사람들은 ‘민중의 집’으로 부른다.

1984년 6월 25일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 공산주의 정부의 본부가 될 예정이었으나 오늘날엔 루마니아의 의회, 부쿠레슈티 국제콘퍼런스센터, 로메나의 현대미술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루마니아 재료로 조성된 이 건물은 최고의 장인들의 작품을 반영한다고 한다. 화려함과 호화로운 전시물을 관광하기 위하여 가이드 투어를 예약했지만 아쉽게도 갑작스러운 폭우로 차에서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아 늦은 시간과 날씨를 탓하며 부쿠레슈티를 뒤로하고 불가리아 국경으로 향한다.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보는 불가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벨리코투르노보주의 주도이며 얀트라강이 흐른다.

첫 목적지는 벨리코투르노보이다. 불가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벨리코투르노보주의 주도이며 얀트라강이 흐른다. 1878년 베를린조약에 따라 승인된 불가리아 공국은 이곳을 수도로 삼고 1879년 4월 17일 최초의 불가리아 의회에서 제정된 헌법으로 수도를 소피아로 이전한다. 그 이후 소피아는 지금도 불가리아 수도로 남아 있다. 과거에는 투르노보라고 불렀지만 1965년 도시의 역사적 가치를 기념하기 위해 ‘큰’, ‘위대한’이라는 뜻을 가진 불가리아어 형용사 ‘벨리코’를 붙여주면서 지금의 이름이 됐다.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 중 하나로, 기원전 3000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하니 역사적 도시로 볼거리가 많을 듯하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를 떠나 불가리아 국경을 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궂은 날씨로 어두컴컴해진 후 국경선을 넘는 동양인에 향한 호기심으로 몇 가지 질문만 던질 뿐이다. 180㎞ 거리이지만 국경선을 통과하고 언덕길을 오르느라 3시간이 걸려 호텔에 도착했다. 작은 골목길을 돌아 요새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의 벨리코투르노보에서 불가리아 첫날을 맞는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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