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무대 서는 17, 19세 김유진·임선우 / 두 사람 모두 일찌감치 눈여겨본 인재들 / 2017년 10월 입단 바로 코르드발레로 합류 / 지난 겨울 ‘호두까기 인형’ 주역에도 발탁 / 김유진, 국내 최연소로 주역 니키아 연기 / 임선우는 주요 조역 황금신상 역할 소화 “여드름이 안 보이게 하고 싶어서, 헤헤.” 천진하게 웃는 차세대 발레 스타들의 얼굴에는 여드름 패치가 붙어 있었다. 10대 청소년답게 해맑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면에는 굳은 심지가 엿보였다. 아직 10대인데도 대작 발레 ‘라 바야데르’에서 주요 역할이 맡겨진 원동력인 듯했다. 유니버설발레단(UBC) 코르드발레인 김유진(17)·임선우(19)가 ‘라 바야데르’에서 각각 주역인 니키아와 주요 조역인 황금신상을 연기한다. 김유진은 이 역을 국내 최연소로 맡았다. 이 무서운 10대들을 18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일찌감치 발레계에서 눈여겨본 인재들이다. UBC에 들어온 건 지난해 10월. 연수단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코르드발레로 합류했고, 지난겨울에는 ‘호두까기 인형’ 주역에도 발탁됐다. 모두가 대학 이름 하나만 보고 전력질주하는 사회에서, 이들은 학벌 대신 좋아하는 일을 택했다. 유진양은 이미 중학교 2학년 때 발레를 위해 학교를 관뒀다. 국내 1세대 스타 발레리노 이원국의 권유가 영향을 미쳤다. 학교에 가는 대신 주 7일 연습벌레로 살았다. 중·고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치렀다.
“2학년 1주일 다니고 그만뒀어요. 워낙 대단한 선생님이 ‘나한테 배워보라’고 하셔서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했어요. 정 힘들면 다시 고등학교에 가면 되니까,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어요.”(유진)
“대학 졸업 후 오는 곳이 발레단이잖아요. 4년 후 오는 것보다 바로 입단해서 경험 쌓는 게 제 춤에 도움되지 않을까 했어요. 공부하고 싶으면 서른, 마흔 넘어서 대학에 가도 돼요. 춤은 젊어서밖에 할 수 없지만 공부는 늙어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선우)
이들은 발레의 어떤 매력에 끌려 우직한 결단을 내렸을까. 선우군은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아직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다”며 “춤추기 전에 안 좋은 일, 화나는 일이 있어도 일단 발레를 시작하면 어느새 잊고 발레에만 집중하고 있더라”고 했다.
“원래 성격 자체가 엄청 내성적이고, 사람들 앞에서 표현을 잘 못하는 편이에요. 발레를 하면 할수록, 말하지 않아도 나를 표현할 수 있었어요. 계속 하고 싶었죠. 발레는 배우면 배울수록, 더 배울 게 많아져요.”(유진)
5살 때 발레를 접한 유진양은 8살 때 학원에 다녔다. 전공하기로 마음을 굳힌 건 2년 후였다. 선우군은 6살 때 자세 교정을 위해 발레를 시작했고 8살 때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12살 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를 연기한 독특한 경력도 갖고 있다. 당시 생겨난 팬들이 요즘도 선우군의 공연을 보러 온다. 이들은 어릴 때 “재능 있다는 얘기는 안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끈기는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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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은 미래가 기대되는 김유진·임선우에게 ‘발레계의 김연아’ ‘발레계의 조성진’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유진양은 “표정 연기와 아름다운 선이 피겨에서 느껴진 건 김연아 선수가 처음이어서 그분 영상을 많이 봤다”고 했고, 선우군 역시 “성진형 연주 영상은 몇 번씩 돌려봤다”고 했지만 “너무 대단한 분들이라 저희에게는 과분한 수식어 같다”며 웃었다. UBC 제공 |
“맨날 ‘못한다’ 얘기 들어도 다음날 또 나왔어요. ‘왜 안 되냐’ 얘기 들으면 그날 꼭 다 만들어놓고 집에 가고.”(유진)
“저도 연습에서 안 되는 동작을 끝까지 해보는 편이에요. 근성, 끈기가 있는 거죠. ‘끼’도 조금 있는 것 같아요.”(선우)
이번 ‘라 바야데르’는 두 사람에게 큰 도전이다. 함께하는 선배들부터가 쟁쟁하다. 수석무용수 강미선·홍향기에 더해 세계 최고 발레리나인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수석 스베틀라나 자하로바가 니키아를 맡는다. 황금신상 역시 수석무용수 강민우와 간토지 오콤비얀바, 솔리스트 리앙 시후아이가 연기한다. 이들이 ‘라 바야데르’에서 중요 배역을 맡는 건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연습은 녹록지 않았다. 나이가 어린 유진양에게는 복잡한 감정 연기가 난관이다.
“사랑 부분은 조금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요. 그런데 배신감 표현은 아직 좀 어려워요. 2막 솔로르·감자티 결혼식에서 니키아의 감정이 배신감 하나는 아닐 거예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슬픔, 여전한 사랑도 있겠죠. 이걸 관객에게 전달되게 표현하는 게 어려워요.”(유진)
“황금신상은 계속 높게 높게 뛰어야 해요. 중간에 잠깐 멈출 때도 쉬는 게 아니라 정확히 자세를 잡고 있어야 해요. 에너지 소모가 장난 아니에요. 리허설 끝나면 다리가 너무 아파요.”(선우)
선우군은 “황금신상은 인도 대표 불상이라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신상처럼 정확한 각과 절도 있는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발레 기술도 걱정”이라고 덧붙이자 옆에서 유진양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오빠 진짜 잘한다”고 말했다.
“워낙 잘하는 오빠예요. 최근에 정말 잘한다고 느꼈던 게, 오빠가 ‘춘향’에서 방자 역할을 맡았거든요. 리허설 볼 때 정말 놀랐어요. 방자 그 자체여서.”(유진)
“유진이는 큰 무대에 강한 것 같아요. 이 나이에 ‘돈키호테’ ‘지젤’ ‘라 바야데르’를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인데, 유진이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무용수로서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줄까 생각해요. 멋있어요.”(선우)
전문 무용인으로 첫발을 뗀 이들은 갈 길이 멀다. 유진양은 “미래를 얘기하긴 이르고, 당분간 춤을 추고 싶다”고 했다. 선우군이 그리는 미래는 좀더 구체적이었다.
“안무에 관심이 많아요. 안무를 하려면 춤만 알아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시대 흐름, 문학, 사회 다 알아야 해요. 책을 많이 읽는 게 그런 이유이기도 해요. 저는 그냥 서점 가서 표지만 보고 책을 집어와요. 요즘에는 ‘상냥한 저승사자를 기르는 법’, 그 전에는 이석원 작가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읽었어요. 안 될 수도 있지만 마리우스 프티파처럼 시간이 지나도 남는 명작을 만들고 싶어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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