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고위관계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일본 정부가 망언을 쏟아내는 것과 관련, “정부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으로,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라며 “일본 정부가 과도하게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는) 지금 분위기로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기자단에 배포한 ‘한국 사법부의 강제징용 판결에 관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입장문에서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발언은 타당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못하다”면서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과격한 발언을 계속하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법부의 판단은 정부 간 외교의 사안이 아니다”라며 “사법부의 판단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30일 일본 도쿄(東京) 외무성에 이수훈 주일 한국 대사를 불러 한국 대법원이 일본의 신일철주금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최종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
지난달 30일 대법원 판결 후 일본 정부의 도 넘은 비난과 망언이 일주일째 계속됐지만 정부는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않아 왔다. 8일 만의 이 같은 대응기조 변화와 관련, 일각에서는 이 총리가 정운현 비서실장을 임명한 직후라는 시점에 주목한다.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정부의 대일 대응의 무게중심이 외교부에서 총리실로 이동한 상태고, 이날 총리 입장문은 향후 총리실에서 대일관계의 핵심 사안을 직접 컨트롤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한국인들이 일본 공사현장에서 토목 노동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
일본 측 경계심도 감지된다. 일본 내에서는 그동안 대일 강경 자세인 문재인 대통령과 달리 이 총리가 강제징용 문제 등 한·일 현안에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 총리는 지일파로 알려졌지만 어떤 (강제징용 문제 해결의) 착지점을 찾고 있는지 불투명하다”며 “비서실장에 일본에 엄격한 입장을 취할 인물을 임명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 실장은) 4일에는 페이스북에 박정희 정권 때의 국교정상화를 굴욕 외교라고 지적했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김예진·박성준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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