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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가족이 있다. 전과 5범으로 뒤룩뒤룩 도야지처럼 살이 찐 큰아들. 데뷔 영화 실패 후 백수로 놀다 다 팔아먹고 딱 목매달기 일보 직전인 영화감독 둘째아들. 두 번의 이혼 전력으로 카페에서 술장사를 하는 딸 막내. 자식 평균 나이 48세. 게다가 알고 보니 하나같이 이복형제에 이복남매. 콩가루 집안도 이런 콩가루 집안이 없다.
천명관 소설 ‘고령화 가족’은 70대 엄마의 집에 이 자식이 다 함께 들어와 살며 시작한다. 어느 날 베란다에서 엄마가 사온 삼겹살을 구워먹는다. 다들 입이 미어져라 고기를 쑤셔넣으면서도 서로 아옹다옹거린다. 그런데도 엄마에게선 예전에 볼 수 없던 활기가 느껴진다. 세상에,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다고. 동네 할멈 말대로라면 “서방은 차에 치여 죽고”, “큰아들은 여자애를 강제로 거시기 혀서 가막소를 수도 읎시 들락거린 인간 말종”이며, “딸 하나는 바람피우다 서방한테서 쫓겨나 술집에 나가고”, 그나마 대학 나온 둘째아들은 백수가 돼 “늙은 지 에미 등골 뽑아먹고” 있는데. 삼겹살을 입이 미어터져라 먹고 있는 자식을 보는 엄마의 표정은 뭐랄까, 제비새끼를 보는 흐뭇한 미소랄까, 안쓰러움이랄까.
그러니까 알겠다, 삼겹살이 주는 위안을. 삼겹살을 먹으며 알게 된다. 가족은 원래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는 것을. 엄마는 말한다. “사람은 어려울수록 잘 먹어야 된다.” 엄마는 진즉에 알았다. 바깥의 삶이 전쟁터라는 것을. 거친 삶의 광야에서 헐떡거리는 영혼을 채워 주는 것은 기름진 그 고소한 육질의 맛이란 것을. 세상에 미아가 됐다고 느껴질 때 가족은 삼겹살을 구워먹는다. 다른 사람 눈치도 보지 않고. 이것저것 고민도 하지 않고. 그렇다, 이 세상에서 나는 우발적이고 우연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존재다. 이 세상에서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연말이 다가온다. 바람 가득한 겨울벌판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다 문득 삼겹살이 먹고 싶다. 지글지글 엄마가 삼겹살을 굽는다. 삼겹살과 상추를 싸서 입이 미어터져라 씹는다.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 가는 기름진 육즙. 세상의 미아에서 구원되는 해방감. 아,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된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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